출처 :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8475

박근혜 7시간 대처, '아이티'의  대통령과 닮은 점
[윤성한의 닥치는 대로 뉴스] 박대통령이 세월호 진실규명 요구에 책임회피를 해선 안될 이유
입력 : 2014-08-26  11:09:57   노출 : 2014.08.27  11:11:46  윤성한 논설위원 | gayajun@mediatoday.co.kr    

대통령의 위기대응 리더십을 거론할 때, 무능하고 무책임한 대통령의 전형으로 제시되는 인물이 아이티의 전 대통령 ‘르네 프레발’이다. 2010년 1월 12일 미국 남부에 위치한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에는 진도 7의 강진이 발생했다. 인구의 2%인 20만명이 사망한 충격적인 참사였다. 지진직후 대통령궁도 무너졌다. 대통령과 연락이 두절됐다. 붕괴된 대통령궁에 대통령이 매몰된 줄 알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대통령은 6일 뒤 나타났다. 르네 프레발 대통령의 부부는 지진이 일어났을 때 막 궁으로 들어가려던 순간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위기일발의 순간을 피했다. 천행이었다. 하지만 하늘이 내려준 행운은 국민이 아닌 대통령 개인의 안위를 위해만 사용됐다. 레이먼드 조셉 아이티 주재 미 대사에 따르면, 대통령 부부는 당시 안전한 섬으로 대피해 있었다고 한다.

 
중미 지역 국가 아이티의 르네 가르시아 프레발 전임. 대통령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당시 아이티는 국가적 재난상황에서 국가의 콘트롤 타워인 대통령이 스스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정부 기능은 마비됐고, 위기대응은 그만큼 늦어졌다. 그로 인해 사망자 20만 명이란 기록적인 사망자 수를 남겼던 것이다. 프레발 대통령은 국내외의 수많은 비난을 받아야 했다.

박 대통령의 ‘7시간’도 프레발 대통령의 6일과 닮은 점이 있다. 풍문에 대한 사실 확인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위기대응시스템이 작동했는지에 관한 문제이다. 7시간 동안 대통령은 공개석상에 나타나지도 않았고, 대면보고도 받지 않았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7시간 동안 청와대 경내에서 21차례의 서면보고와 유선보고를 받으며 적절한 지시를 내렸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청와대의 해명은 대통령과 청와대가 국가위기대응의 콘트롤 타워로서 제 기능을 제대로 했는지에 대한 답이 되지 못하고 있다. 국가적 대형 불상사가 급박하게 진행되는 사이에 대통령이 왜 대면보고 한번없는 안이한 판단을 하고 있었는지, 어디에서 누구와 무슨 일을 하고 있었길래, 보좌진이 대면 보고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지 구체적인 동선과 함께 설명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9시30분부터 배가 기울고 있는 상황이 TV중계를 통해 나왔다. 대통령이 한데 모아 놓고 보고에 대해 피드백을 하고, 정보를 크로스 체크 하면서 신속하고도 종합적인 판단을 내려야 할 때였다. 그럼에도 대통령에 대한 대면 보고나 긴급한 스탠딩회의조차 열리지 않았다. 정말 한가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8월 25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의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규제 개혁에 관해 발언했다. 박대통령은 세월호 유가족들의 면담 요구를 거부하고 있는 가운데 경제이슈로 국정의제를 적극 부각시키려 하고 있다. 사진 = 청와대
 
서면보고의 내용에 대해서도 대통령이 어떤 피드백이나 지시를 했는지도 소상히 밝혀져야 한다. 21차례의 보고 중에 청와대가 밝힌 대통령의 지시는 딱 두 번이다. 10시10분 국가안보실의 유선보고에 “한명도 희생되지 않도록해라”는 내용과 이날 10시30분 해경으로부터 유선보고를 받고 “특공대를 투입해서라도 승객구조에 최선을 다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어떤 판단이었기에 박 대통령이 “‘선내에 진입해서 승객들을 구조해 내라”는 구체적 지시가 아니라 “한 명도 희생되지 않도록 하라”거나 “투입해서라도...최선을 다하라”는 식의 하나마나한 지시밖에 할 수 없었는지도 확인돼야 한다. 박 대통령이 국가운영의 최고 콘트롤타워로서 적절한 기능과 역할을 수행했는지 따져봐야 할 대목이 너무 많다.

대통령의 위기대응리더십의 모범사례로 손꼽히는 칠레의 첫 여성대통령인 미첼 바첼레트의 경우는 박 대통령의 위기 대응과 판이하게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지난 4월 초 그녀는 대통령 취임 22일 만에 강도 7.6 지진의 재난사태를 맞았다. 바첼레트 대통령은 지진이 나자 새벽 2시에 TV를 통해 지진 상황을 직접 브리핑하며 국민들을 안심시켰다.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서 피해지역의 민심을 수습하는 말을 전하는 등 섬세하고 신속한 리더십 또한 보여줬다. 바첼레트 대통령은 첫 번째 임기였던 2010년도에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 임기 만료를 열흘 앞두고 칠레에 규모 8.8의 지진과 쓰나미가 일어났던 것이다. 500명 이상 숨지는 엄청난 재난이었다. 당시에도 바첼레트 대통령은 신속하고 침착한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었다. 지진 발생 1시간 만에 TV에 등장해 재난 상황과 정부의 대응을 설명했다. 바로 6개의 피해지역으로 이동해 피해주민들을 위로했다. 바첼레트 대통령은 이 같은 적절한 위기 대응 리더십으로 퇴임 뒤에 국민들의 인기가 오히려 더 올라갔으며, 2014년도 대선에서 그녀는 재선됐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사고를 직접 일으킨 것도 아닌데 무슨 책임이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유가족들이 대통령에게 책임을 지우려고 ‘생떼’를 쓰고 있다고 하는 사람들 또한 있다. 더 이상 지겨우니 ‘세월호 타령’ 그만하자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보수언론은 기소권과 수사권을 진상조사위원회에 부여하는 세월호 특별법을 요구하며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는 세월호 유가족의 개인사를 들춰내며 진상규명 요구에 흠집 내려고 안간 힘이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진에 대한 독립적인 수사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이다.

스무 살도 안 된 학생 270여명을 포함해 300여명의 국민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해경출동 직후부터 배가 뒤집히기 전까지 국가가 그들을 구해 낼 수 있는 시간이 143분, 2시간 하고도 23분의 시간이 있었다. 국가의 재난대응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정점에 박 대통령이 있었다. 그래서 박대통령은 피해갈 수 없다.

 
김장훈 씨와 고 이보미 양이 함께 부르는 '거위의 꿈' 영상이 시작되자 유가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밑도 끝도 없는 ‘도의적’책임을 대통령에게 지우자는 게 아니다. 그래서도 안 된다. 사실에 근거해서 진실규명과 그에 따른 진짜 책임을 가리자는 것이다. 다시는 반복돼선 안될 일의 진실을 규명하는 데에 ‘성역’이 존재해선 안 된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 보좌진들의 직무행위에 대해 구체적이고 투명한 조사가 필요한 이유다. 안전한 국가의 미래를 위한 일이다. 대통령이 결단하면 된다. 삼권분립이니 국회의 핑계를 대선 안 된다. 대통령이 국회에 법을 낼 권한도 있다. 대한민국은 아직도 강력한 대통령중심제 국가이다. 청와대는 유체이탈식 화법으로 ‘책임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이 자신의 직무에 떳떳했다면 피할 이유가 없다.

미드 '웨스트 윙'에서 보는 바람직한 대통령의 위기 대응 리더십

위기상황에서 대통령의 리더십이 어떠해야 하는 지에 대해 ‘시청각’으로 간접 체험할 수 있는 ‘자료’가 하나 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즐겨 보았다는 미국 드라마로 미국 백악관 대통령과 참모진의 역할에 대한 사실적으로 묘사해 에미상을 4회나 수상한 미국 정치드라마 ‘웨스트윙’이 그것이다. 웨스트윙의 시즌7 12편 ‘Duck an Cover’(고개숙여 웅크리기 : 핵폭발 상황에서 인체 보호자세란 뜻)편을 보면, 서면과 유선보고만 받았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리더십의 문제가 무엇인지 가늠해 볼 수 있다.

‘Duck an Cover’편은 심야시간에 발생한 캘리포니아의 원자력발전소의 사고를 유선보고 받고 집무실로 달려온 대통령이 비서실장과 국가안보보좌관으로부터 대면보고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원자로를 식혀주는 냉각수를 공급하는 주급수펌프가 고장났다는 내용이다. 냉각수 공급이 안돼 원자로의 내부온도가 상승해, 폭발과 핵연료의 용융이 우려되는 상황. 시간은 촉박하고, 대통령이 판단해야 할 과제는 시시각각 들이닥친다. 첫 번째 이슈는 원자로 주변 주민 소개와 대국민 브리핑. 대통령은 보고를 받자 15분 내에 TV발표 브리핑을 준비하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즉각 캘리포니아 주지사에게 주민소개를 지시한다. 다음 원자로 폭발이 일어난 것 같다는 오보를 내보내고 언론에 관련 사실을 알리고 관련내용의 보도중단을 요구할 것을 지시한다. 원자로의 압력이 계속 높아지자 방사능 증기의 방출이 필요한 상황에 이른다. 하지만 원자력발전소 주변 주민들은 모두 소개되지 않은 상황.

웨스트 윙 극중 인물 바틀렛 대통령(찰리 쉰 분)이 원자력사고에 관한 보고를 받고, 비서실장에게 15분 내로 기자회견  료를 준비하라고 지시하는 장면
 
또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 보좌진은 대통령의 결정을 요구한다. 대통령은 방출여부에 따른 각 문제점을 보좌진들에게 피드백 받으면서 최종 결정을 내린다. 하지만 방사능 증기의 일부 방출만으로 사태가 해결은 되지 않는다. 드라마의 다음 부분이 왜 대통령의 리더십이 필요한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부분이다. 참모들은 급수밸브를 고치러 기술자들을 투입해야 할 상황에 대한 판단을 대통령에게 요구한다. 기술자가 수리하다 방사능에 노출돼 죽을 수 있는 책임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참모진이 내릴 수 없는 결정이다. 대통령은 먼저 군인 등 공무원으로 대체할 수 없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참모들은 해당밸브를 수리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원자력 발전소의 직원이 아니면 고칠 수 없다고 한다고 말한다. 대통령은 고뇌를 거듭하다 기술자의 투입을 지시한다. 기술자 2명 중 1명은 방사능 노출로 죽지만 수많은 국토가 오염되고 수많은 국민이 죽음에 이르게 할 원자로 폭발의 위험은 사라지게 된다.

세월호 사건에서도 청와대 보좌진이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현장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이에 대한 통찰력 있는 판단을 해 대통령에게 결정을 요구했다면 어떠했을까. 해경이 도착하고 침몰하기전 110분 내에 대통령이 해경 요원들의 목숨이 위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더라도, 세월호 승객실로 해경인력의 투입을 결정할 수 있었더라면 300여 명의 아까운 목숨 중 상당수 사람들은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이 드라마를 본 독자들이라면 이런 의문이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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