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하천 20년, 방향 잃은 물길 2부] 3. 독한 인내로 살아난 일본의 강
구마강 은어 다시 볼 수 있게… 이 작은 댐 허무는 데 5년
박진국 기자 입력 : 2015-07-26 [23:02:11] | 수정 : 2015-07-27 [11:38:06] | 게재 : 2015-07-27 (5면)

▲ 천천히 철거되고 있는 일본 규슈 구마모토 현 사카모토 촌의 구마강에 위치한 아라세댐. 은어 등 생태계 보호를 위해 1년에 2개월씩 5년에 걸쳐 철거가 진행된다. 김백상 기자

국내 하천 행정에선 '조급증'이 엿보인다. 4대강에는 3년여 만에 22조 원짜리 물길이 준공됐다. 전국 곳곳의 하천과 계곡에선 3~4개월 만에 사방댐이 지어져, 계곡이 인공 장벽으로 변하기도 한다. 
 
물론 수년 동안 제자리를 맴도는 하천 정비 공사도 흔하다. 이 역시 일단 착공부터 했다가. 예산 확보에 차질이 생긴 경우가 대부분이다.
 
철거 중인 구마모토 현 아라세 댐, 3년째 공사에도 절반도 못 허물어 
지자체가 생태 고려해 인내심 발휘. 건설보다 3배 느린 속도로 해체 중 
22조 투입해 급조된 4대강과 대조적 

일본의 물 행정은 근본적으로 접근법이 다르다. 생태계 지속성이 목표이다 보니, 꼼꼼하게 계획을 세우고 생태계 영향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사업이 진행된다. 한번 공사가 끝나면 다시 할 필요가 없어, 장기적으론 효율적인 행정이다. 

■은어를 위해 서서히 무너지는 댐 

일본 규슈 구마모토 현 사카모토 촌의 구마강 하구 쪽에 위치한 '아라세 댐'을 찾았다. 2012년 9월 일본 최초로 댐 철거작업이 시작된 곳이다. 어느덧 3년이 지났지만, 댐의 육중한 형체는 여전히 남아있다. 생태계 영향을 최소화하려다 보니, 아직 절반도 채 허물지 못한 것이다.

아라세 댐은 1954년 3월 준공됐다. 수력발전을 위한 콘크리트댐으로 폭 210m, 높이 25m에 총 저수량만 1천여 만t이 넘는다. 당시 일본은 지금처럼 신중한 공사를 하지 않았다. 이 큰 댐을 짓는 데 불과 1년 10개월이 걸렸다. 

곧 문제가 발생했다. 사카모토 촌의 주요 산업은 은어잡이였는데, 댐 건설로 물길이 막혔다. 은어가 더는 올라오지 않았다. 온갖 치어들도 종적을 감췄고 굴, 모시조개도 사라졌다. 또 댐 상류로 퇴적토가 쌓이고, 홍수피해도 커졌다. 댐이 초래한 생태계 변화가 예상보다 컸던 것. 그 결과 50여 년 동안 구마강 하구 2만여 명 주민은 5천여 명으로 줄었다. 

결국 2010년 구마모토 현은 댐 가동을 정지하고, 2012년부터 철거를 시작했다. 그나마 성과라면 아라세 댐을 통해 "성급한 결정이 물 생태계에 엄청난 혼란을 가져온다"는 교훈을 배운 것이다.

철거작업은 신중하다. 5년간 공사가 진행돼, 2017년에야 철거가 완료될 예정이다. 짓는 것보다 철거하는 작업이 3배 가까이 느린 셈이다. 은어가 돌아올 수 있도록, 또 구마강 생태계에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겨울철 2개월만 공사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매년 생태계영향평가도 진행하고 있다.

지역 환경운동가 츠루 쇼오코 씨는 "철거가 시작되고 물길이 흐르자 1년여 만에 은어가 돌아왔다"며 "첫 번째 댐 철거 사례이자, 후손들에게 강을 돌려주는 일인 만큼 성급하게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재생 기간 10년 하천, 느리고 온전하게 

기타큐슈 시 야와타니시 구의 바치 천은 4.2㎞의 도심하천이다. 일본 안에서도 생태복원에 성공한 대표 사례로 손꼽힌다. 재생 기간만 10년 가까이 걸렸다. 서울 청계천 복원 사업 기간이 준비과정을 포함해도 3년도 안되는 것과는 비교된다. 

바치 천은 붕어가 잡히는 자연하천이었지만, 1953년 홍수피해를 입으면서 콘크리트 치수사업이 벌어졌다. 하천은 생태가 사라진 도시 배수로로 바뀌었고, 생활하수와 오폐수 유입도 이뤄졌다. 기타큐슈 시가 도시화될수록 악취와 오염은 심해졌다. 

재생이 시작된 건 1995년 정부의 하천재생사업으로 선정되면서부터다. '바치 천 르네상스계획'이라고 이름 붙여진 재생사업은 처음부터 주민참여를 기본으로 했다. 하천주변 주민 모임, 시민 공모로 선발된 모임, 공무원으로 구성된 모임 등이 모두 모여 아이디어를 내놓고, 계획을 세우고, 사업 주체가 되었다. 

시민들의 발언권과 감시권이 강화되자, 하천 살리기에 대한 지역 사회의 호응도 더욱 뜨거워졌다. 인근 병원의 환자들이 하천 관리 요원을 자처하기도 했고, 기숙사 부지를 재생사업 용지로 내놓는 기업도 등장했다. 시민참여로 효율성과 성과를 중시하는 관의 '조급증'도 견제될 수 있었다.

하천정비공사는 2007년에야 끝났다. 이후에도 지역사회와 관의 생태하천 관리는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 결과 지금의 바치 천엔 치어들이 떼를 지어 다니고 있고, 하천 옆 수풀 사이론 반딧불이들이 날아다닌다. 최대현 한국강살리기네트워크 사무처장은 "바치 천이 변화한 걸 보면 부산도 생태하천의 희망을 품어볼 수 있다"며 "하나의 재생 사업을 하더라도 차분하고 꼼꼼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본 규슈=특별취재팀 riv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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