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v.media.daum.net/v/20180218174704083#none


[뉴스 그 후]'유령 운하'에서 북 치고 장구 친 'MB의 추억'

김봉수 입력 2018.02.18. 17:47 


이명박 대통령과 송영길 인천시장이 지난 25일 경인아라뱃길 개통식에서 만났다. 사진제공=인천시

이명박 대통령과 송영길 인천시장이 지난 25일 경인아라뱃길 개통식에서 만났다. 사진제공=인천시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기왕 파는 김에 3.8㎞만 더 파자. 폭을 넓혀 운하로 쓰면 된다".


2009년 한국 사회를 현혹시킨 목소리였다. 유령 운하로 전락한 경인아라뱃길 얘기다. 무려 2조3000억원대의 예산을 투입했지만 배가 다니지 않아 엄청난 적자다. 교량과 제방도로 건설까지 3조원 넘게 들어갔다. 이명박 정부는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홍수때 물을 흘려 놓을 목적으로 파놓았던 길이 14.2kmㆍ폭 20m였던 굴포천 방수로를 기어코 더 파 한강과 연결시켰다. 폭을 80m로 넓히고 바닥을 준설해 3000톤급 배가 운행할 수 있는 운하를 만들었다. 한반대 대운하의 시범 사업으로 여기는 듯 했다. 초대형 크레인이 들어찬 화물터미널과 물류단지, 요트 거류장, 쇼핑 단지까지 조성했다.


'악마의 유혹'이었음이 드러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경인아래뱃길의 실제 물동량은 목표 대비 0.08%에 불과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개통 5년차 연 853만7000톤을 예측했지만 실제론 7000톤 정도만 오갔다. 사실 예상된 결론이었다. 시설이 충분히 갖춰진 인천항에 화물을 내려 차에 싣고 1시간이면 서울에 도착한다. 굳이 운하를 통과하느라 하루 이상 시간과 비용을 허비할 이유가 없다.


결국 경인아라뱃길은 자전거ㆍ캠핑 동호인들만 가득할 뿐 지나가는 화물선을 보기 힘든 유령 운하가 됐다. '옥빛 수질'이라는 목표와 달리 검은 색 썩은 물이 가득하다. 착공 당시 국토해양부가 발표한 "서해와 한강을 연결시켜 5000톤급 배가 오가는 운하를 조성해 물류ㆍ유통을 혁신하고 국제 관광ㆍ수상 레저 중심지를 만들겠다"는 화려한 청사진은 빛 바랜 지 오래다. 대통령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관료ㆍ관변 학자들의 초대형 사기극이었음이 명백해졌다. 3조원대의 세금 쯤은 전혀 아깝지 않고, 비판의 목소리는 우매한 '개ㆍ돼지'의 울부짖음 정도로 여기는 이들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동안 잊혀졌던 경인아라뱃길이 최근 다시 화재가 됐다. 지난달 19일 시공 주체인 한국수자원공사가 '기록물 관리' 대상인 보존 문서를 무단 파기하려다 들통났다. 수공이 파기하려던 문서 중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6월경 작성된 '경인아라뱃길 국고지원 보고서'가 들어 있었다. 1조 원 이상 손실이 예상된다는 내부 검토 보고서였다. 시민사회ㆍ환경단체의 반대를 무릅쓰고 경인아라뱃길을 밀어붙였던 그들도 '예산 먹는 하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같은 경인아라뱃길의 비극을 초래한 주인공은 누구일까? 공교롭게도 운하 사업 제안, 허가, 공사까지 모두 이명박 전 대통령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1987년 노태우 대통령 시절 굴포천 대홍수가 일어나자 건설업계를 중심으로 운하 건설 얘기가 나왔다. 서해와 연결시켜 홍수 때 물을 보내자는 아이디어가 한강 연결ㆍ운하 조성까지 확장됐다.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현대건설 회장이었다. 이후 현대건설은 1999년 민간사업자인 ㈜경인운하의 대주주로 참여해 운하 사업의 구상과 대정부ㆍ정치권 로비 등을 전담했다. 현대건설의 운하 건설 로비는 노무현 대통령 때 좌절되는 듯 했다. 2003년 사업성 검토 결과 부정적으로 나와 굴포천 방수로만 계속 공사하고 운하는 건설하지 않는 것으로 정리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집요한 시도는 결국 성공했다. 자사 회장 출신으로 '한반도 대운하'를 공약했던 이 전 대통령은 취임하자 마자 '시범 사업'격으로 경인아라뱃길을 밀어붙여 취임 1년여 만에 착공을 강행했다. '숙원 사업'을 해결한 현대건설은 6개 공구 중 가장 큰 몫인 제1공구(3289억원)를 따내는 개가를 올렸다. 또 다른 현대가인 현대산업개발도 제5공구(1523억원)를 수주했다.


2009년 5월6일. 30도를 웃도는 이른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 경인운하 건설 기공식(현장보고회) 현장에 갔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멀리서 봐도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완공되면 아마 대한민국의 격이 새롭게 높아질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삼엄한 경비와 따가운 햇볕 속에 그를 기다리느라 흘렸던 땀방울이 지금도 기억난다. 경인아라뱃길 근처를 오가다 검은 색 썩은 물이 가득 찬 유령 운하가 눈에 들어 올 때마다 'MB의 추억'이 떠오른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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