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01056
'성난 진중권의 시간', 기대 저버린 손석희의 신년토론
[게릴라칼럼] 왜 언론개혁 토론이 아니라 살풀이마당이 돼야 했을까
20.01.02 14:37 l 최종 업데이트 20.01.02 20:39 l 하성태(woodyh)
▲ 1일 열린 JTBC <신년토론>의 한 장면. ⓒ JTBC
"(노유진의)<정치카페> 같이 할 때도, 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똑같아요. <알릴레오> 할 때나 그거 할 때나. 근데 갑자기 막 까시니까. 좀 당혹스럽네요. (손석희 앵커가 '좀 서운하신가봐요'라고 묻자) 네, 서운해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아니요. 제가 볼 때 그때는 그래도 나았는데, 저는 가만히 있는데 유 이사장님이 너무 먼 길을 가시는 거 같아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저는 똑같이 하는데, 진 교수가 이상한 데로 가신 거예요, 내 입장에서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손 앵커가 "처음에 나누고 들어가려고 했는데 막판에 이 이야기가 나오네요"라고 참견을 하자 유 이사장은 "나올 건 결국 나와요"라며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위 대화에 토론의 핵심이 담겨 있었다. <노유진의 정치카페>는 박근혜 정부 시절 유시민과 진중권, 고 노회찬 의원이 함께했던 팟캐스트였다. 과연 두 사람 중 누가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고, 누가 이상한 곳으로 가버렸을까. 실제로 "이상한 데"로 가버린 것은 과연 누구일까.
진 전 교수와 유 이사장의 출연 예고로 관심 속에 방영된 1일 JTBC <신년토론>은 위 질문에 답하는 2시간 동안의 여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두 분이 며칠 전부터 '장외' 설전을 해왔다"는 손 앵커의 말마따나, 적지 않은 언론이 지난해 연말 페이스북을 통해 쏟아내는 진 전 교수의 주장을 '유시민 vs. 진중권 구도'로 소비해왔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토론 전반이 그랬다. '한국 언론, 어디에 서 있나'란 주제임에도 진 전 교수는 작정한 듯 유 이사장의 유튜브 채널 <알릴레오> 등을 사사건건 걸고 넘어졌고, 특유의 공격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반면 유 이사장은 "제가 바로 답하면 토론이 엉망될 거 같아서"라며 일부를 제외하고 직접적인 논쟁은 피해갔다.
그런 유 이사장도 어쩔 수 없었을까. 방송 말미, 한 시민의 질문에 답하며 "(언론 수용이) 양극화가 돼 있다. 대중들은 뭔가에 화가 나 있다"고 설명을 이어간 진 전 교수에게 유 시민 이사장은 웃으며 이런 촌평을 남겼다.
"허허허. (대중이 아니라) 진 교수가 화나 계신 거 같은데."
"제가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습니다"
▲ 1일 열린 JTBC <신년토론>의 한 장면. ⓒ JTBC
실제로 성난 '진중권의 시간'이었다. 진 전 교수는 물 만난 듯 본인이 준비해온 발언들을 마음껏 풀어나갔다. 그렇게 '조국 사태'를 주요 화두 삼아 '레거시 미디어'(전통적인 언론)을 전적으로 옹호한 진 전 교수는 토론 15분 여 만에 이런 발언을 이어갔다.
"얼마 전에 서초동 집회를 하는데 제가 정말 충격을 먹었던 건, JTBC 기자가 보도하는데, JTBC가 어떤 곳입니까. 탄핵의 중요한 키였던 노트북을 보도한 그런 언론사인데, 옆에서 기자가 보도하는데 물러가라 JTBC가 난리가 났더라고요. 아예 보도를 못하게 막는 군중들을 보면서 제가 충격을 받았거든요.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저는 유시민 이사장님의 책임이 상당히 크다고 봐요. 예를 들어서 <알릴레오> 있잖아요. 굉장히 왜곡보도를 많이 합니다. 제가 보다보다 못해서 몇가지 가지고 나왔거든요. 왜냐면 저랑 관계가 된 일이기 때문에. 제가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 게, 내가 왜 학교를 왜 그만 둬... 둬야 했는지. 이게 이해가 안 되고요, 이 상황이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이걸 제가 반추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교육부가 동양대 최성해 총장의 학력 위조를 확인한 직후 사직서를 제출한 진 전 교수는 상당수 책임을 유 이사장에게 돌리는 듯한 발언을 이어갔다. 진 전 교수는 눈가가 촉촉해졌고, 고개를 묻거나 말을 더듬기까지 했다. 본인의 사직과 관련한 진 전 교수의 발언은 또 있었다.
"너무 급하세요. (조국 사태를 비롯해) 결론에 이르려면, 좀 더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각적으로 짚어보고 종합적으로 추론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뭐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평소 제가 알던 진 교수 답지 않게 되게 건너뛰세요. 그렇게 토론하면 토론하기 진짜 어렵거든요. 그건 건의 드리고." (유시민 이사장)
"말씀드리죠. 결론이 성급하다고 했는데, 결론 이미 났고요. 그래서 제가 지금 학교를 나왔어요. 결론만... 결론의 문제가 아니라 그 임팩트를 나는 몸으로 다 (당)하고 있는데 왜 결론을 아직도 못 내세요? (유 이사장이 "저는 결론을 못 냈어요"라고 하자) 저는 당했습니다."(진중권)
자칫 유 이사장의 <알릴레오>와 그 시청자들의 왜곡과 최 총장을 향한 불신이 자신의 사직으로 이어졌다고 읽힐 수 있는 듯한 격앙된 반응이었다. 이날 진 전 교수는 최성해 총장과 관련된 내용은 추후 설명하겠다고 했으나 실제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 대신 조 전 장관의 딸과 단독 인터뷰를 진행한 <김어준의 뉴스공장>이나 '동양대 표창장' 위조 논란에 대해 방송한 MBC < PD수첩 >의 편향성을 지적했다. "야바위 수준"이란 표현과 함께.
"또 < PD수첩 > 같은 경우도 저는 굉장히 실망을 했는데, 이게 한학수 PD잖아요. 저랑 옛날에 황우석 때 같이 욕먹던 그분인데 제가 전화를 하려고 그랬는데 딱 보니까 벌써 정리가 됐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냥 포기를 해버렸습니다. 뭐냐 하면 동양대에서 표창장이 위조되지 않았다라고 믿는 교수는 하나도, 그러니까 동양대에서 표창장이 위조되지 않았다고 본 사람은 당시에 딱 둘이에요. J 교수하고 K 교수거든요.
모든 동양대 교수들은 다 위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하필 동양대 교수 딱 두 분을 접촉했는데 그 두 분이야. 이런 우연의 일치가. 당시에 다른 입장을 가졌다는 것은 내가 다른 입장을 가졌다는 걸 알았잖아요. 그러면 어떻게 된 건지 나한테는 연락을 한번 해야 되잖아요. 나한테 연락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처음부터 딱 정해 놓고 이렇게 갔다라는 것이고요. 그다음에 굉장히 장난을 많이 쳤는데 거의 야바위 수준이거든요."
음모론에 대하여
▲ 1일 열린 JTBC <신년토론>의 한 장면. ⓒ JTBC
그러니까, <유시민의 알릴레오> 등 뉴미디어 못지않게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이나 MBC < PD수첩 > 역시 조국 사태나 최성해 총장, 동양대 표창장 이슈와 관련해 현실을 왜곡하고 대중을 선동했고, 대중들이 이걸 믿는 것이 문제라는 주장이었다. 이와 관련, 진 전 교수가 언급한 J 교수, 즉 동양대 장경욱 교수는 방송이 나간 직후 진 전 교수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장문의 글을 본인의 페이스북에 게시하기도 했다.
<유시민의 알릴레오>을 두고 '음모론', '유 이사장의 망상', '전체주의 선동'이라 규정한 진 전 교수. 그는 "선동에 세뇌된 사람들이 멀쩡한 레거시 미디어를 공격하면서 기레기라고 하고 있어요. 아셔야 됩니다"라며 유 이사장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심지어 스탈린과 히틀러의 언어에 비유하기까지 했다. 물론 반박도 있었다. 강하게 격돌한 쪽은 유 이사장이 아니라 정준희 한양대 겸임교수였다.
정 교수가 "최성해 총장의 말씀은 다 옳았나요? 그걸 보도한 언론은 다 옳았나요?"라고 묻자, 진 전 교수는 "디테일은 틀렸지만 그분이 말한 실체 표창장이 왜곡됐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답했다. 이어 아래와 같은 논쟁이 오갔다.
"왜곡됐다는 확신은, 그것은 판결의 문제로 넘어갔기 때문에..." (정준희)
"판결의 문제가 아닙니다." (진중권)
"어떻게 확신하시는데요?" (정준희)
"제가 아니까요." (진중권)
이어 진 전 교수는 "예를 들어 표창장에 들어간 프로그램이 아예 열리지도 않았어요"라며 본인의 경험을 얘기했고, 정 교수는 "왜 확신하시는지 모르겠는데 뭐 때문에 검찰보다 더 확신하시는지 모르겠다"고 맞받았다. 진 전 교수가 언급한 동양대 장경욱 교수가 구체적인 반박에 나선 것도 바로 이 대목이었다.
과거 유 이사장이 <알릴레오>에서 비평한 <경향신문> 기자와 관련된 논쟁 중 유 이사장과 정 교수에게 "만나 봤습니까?"라며 언성을 높인 것과 함께, 이날 진 전 교수의 태도가 도드라진 대표적인 장면 중 하나였다. 이어 진 전 교수는 이런 논지를 펼쳤다. 정 교수가 "그것도 음모론"이라고 꼬집은 발언은 이랬다.
"(레거시) 언론은 옛날부터 계속 그랬어요. 피의사실 공표가 그랬고, 최순실 때를 생각해 보세요.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얌전한데, 왜 이 시점에 그런 지적이 나오느냐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봅니다. 감시의, 카메라의 눈은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가 언론, 하나가 검찰인데, 조국을 무죄로 만들기 위해 검찰하고 언론을 공격하며 협잡꾼으로 몰아가고 있거든요."
JTBC 신년토론의 목적
▲ 1일 열린 JTBC <신년토론>의 한 장면. ⓒ JTBC
"우리나라 사회가 종교적 대립이나 이념적 대립을 통해서 실제로 강하게 테러나 사적 복수나 이런 방식으로 나타나는 사회가 아직까진 아닙니다." (정준희)
"잘 생각해 보세요. 전세계에서 여당 지지자들이 서초동에 몇 십만이 모이고, 야당 지지자들이 광화문에 몇 백만이 모이고. 이런 나라 없습니다." (진중권)
"숫자는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손석희)
"네네. 몇 십만이 모이고." (진중권)
"진 교수는 그걸 특이한 현상이고 부정적으로 보시는데, 저는 긍정적으로 보거든요." (유시민)
이날 토론을 상징하는 장면 중 하나였다. 이렇게 대중을, 현 정부를, 검찰과 전통 언론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진 전 교수와 유 이사장은 완전히 갈렸다. "야당 지지자들이 광화문에 몇 백만 모인다"는 진 전 교수의 말실수를 손 앵커가 바로잡긴 했지만, 이렇듯 제일 격양된 이는 진 전 교수였다. 그 와중에 정 교수는 언론학자 관점에 입각해 팩트 위주로 발언을 이어나갔고, 이창현 교수 역시 마치 사회자처럼 언론에 대한 주제들을 잡아나갔다.
"일반적으로 토론자가 진보 대 보수로 나뉘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습니다. 1년 동안 언론의 역할을 두고 같은 진보진영 내에서도 스펙트럼이 갈리고 그래서, 본인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면 다 진보진영이구나 이렇게 생각하실 분들이 나와 계시긴 합니다." (손석희 앵커)
손 앵커의 토론 소개 발언 중 일부다. 실제 그랬다. 유시민, 진중권 두 사람 외에 정준희 교수나 이창현 국민대 교수 모두 언론에 대한 불신이나 '유튜브, 기존 언론의 대안이 될 수 있나'와 같은 본래 주제에 대해 큰 틀에선 동의하는 지점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주제와 관련해 기존 저널리즘적 관점에서 대부분의 유의미하고 경청할 만한 발언은 대부분 이 교수나 정 교수의 입에서 나왔다. 바로 이런 해결책들.
"부정의 저널리즘의 시대에서 벗어나서 긍정의 저널리즘이라고 얘기하는데요. 이런 것들은 이른바 솔루션 저널리즘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래서 이제는 조직의 해결사를 자처하지 말고, 언론이 삼성의 해결사 될 거 아니잖아요. 검찰의 해결사 될 거 아니잖아요. 청와대의 해결사 돼서는 안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국민의 해결사로 언론이 다시 거듭날 때 레거시 미디어도 의미가 있고 1인 미디어도 살아난다라는 생각이 저는 듭니다." (이창현 교수)
"그래서 저는 협력 저널리즘이라고 제안을 하는 건데요. (중략) 직업적 저널리스트들이 정보를 취소하고 길을 잡아가는 그런 역할을 하고 하지만 이들은 그러나 진리의 담대자가 아니기 때문에 수많은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나 의견들에 대해서 그것들의 길을 잡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역할을 직업적 저널리즘들이 하고. 사실은 그 직업적 저널리즘이 그러나 확정된 사실을 만들어내거나 진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과정상에 있다라는 것을 인정하고 대중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방식으로 저널리즘을 해나가는 것이 저는 방송 방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고요."(정준희 교수)
진 전 교수의 경우도 대중의 선동이나 유튜브의 양극화 등 문제제기가 없진 않았으나, 날선 태도와 선동적인 언어로 일관하며 발언의 의미를 스스로 잃고 말았다. 정 교수가 '멸칭'이라 꼬집은 '조국기 부대'와 '태극기 부대'의 발언이 대표적이었다. 그런 진 전 교수의 직접적인 공격에 유 이사장은 한발 물러서는 자세를 취했고.
"JTBC 신년토론회의 목적이 무엇일까? 대규모 셀럽 동원을 통한 시청률 확보? 신년 의제 선정이 공론장의 가치 회복과 정녕 무관한 것은 요즘 통제되지 않는 트랜드라고 치자. 그러면 이 찬란한 말싸움의 결과는 무엇을 남길까? 확증편향의 심화? 편가르기의 심화? 더욱 말 안하기의 심화?"
방송 직후, 심용환 역사학자가 본인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공감한다. 실제 이날 토론을 보고 언론개혁이란 본래 주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가 얼마나 됐을까.
진행자인 손석희 앵커는 인사말에서 "유시민 이사장이 출연하는지 몰랐다"던 진 전 교수의 주제와 무관한 토론을 방치했고, 결과적으로 이날 토론은 최근 동양대에서 사직한 진 전 교수의 '살풀이 한마당'으로 전락해 버렸다. 균형 잡힌 시간을 견지하려고 노력하던 이창현, 정준희 두 언론학자가 없었다면 어쩔 뻔했나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진 전 교수의 이날 발언들은 동양대 사직 후 연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적은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유 이사장을 향한 격한 언사 역시 이미 예견됐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날 JTBC <신년토론>은 2일 '정치개혁 토론'과 함께 앵커직 사임을 발표한 JTBC 사장 손석희가 마지막으로 진행하는 토론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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