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content_id=cp020809140001


고이산성(高爾山城)


이 칭: 북관산성(北關山城), 신성(新城)

시 대: 고구려

소재지: 중국 요령성 무순시(撫順市) 고이산

규 모: 둘레 약 4km


고구려 서북 지역의 요충성으로, 최고 지방관인 욕살(褥薩)이 파견된 대성(大城)의 하나.

고이산성은 고구려의 신성(新城)에 비정되고 있다. 이 고이산성의 초축시기를 명확히 하기는 어렵지만, 《삼국사기》고구려본기에 294년(봉상왕 3) 신성에 태수가 파견되었고, 또 335년 (고국원왕 5)에 신성의 축조 기사가 보이기 때문에, 대략 4세기 초에는 고이산성의 축조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547년(양원왕 3) 7월에 신성을 수리한 기록이 있다.

환인이나 집안에서 요동으로 진출하는 길목에 위치한 성으로, 전략적 중요성이 매우 높다. 고이산성의 동쪽에는 혼하(渾河)의 지류인 무서하(撫西河)가 흐르고, 남쪽 2km에는 혼하가 흐른다. 산성의 남쪽에는 제3현토군의 치소로 추정되는 평지토성인 노동공원고성(勞動公園古城)이 있다. 고이산의 최고봉인 장군봉에서 세줄기의 산능선이 남으로 뻗쳐 두 개의 천연적인 산간평지를 형성하고 있다. 그 산 능선에 토축 혹은 토석혼축의 성벽을 쌓아 동성(東城)과 서성(西城)을 구성하고 있는데, 동성이 중심 성이다. 동성과 서성의 남쪽에는 남위성(南衛城)이 축조되어 있다. 외부 성벽의 총길이는 약 4km 정도이며, 성벽의 축조방식은 산능선을 따라 먼저 자연석을 쌓고 그 위에 흙을 채워 덮은 방식이다. 동성의 남문·서문·동문에는 옹문(甕門) 구조가 확인된다. 동성내에서는 기와·토기·철제무기·갑주(甲冑) 등이 출토되었다.
 
신성은 서북지역의 요충지이기 때문에 이 성에서 일어난 전투는 매우 많다. 4세기말 전연이 침공할 때에도 여러 차례 신성을 공격한 바 있다. 613년(영양왕 24) 수양제가 고구려를 침공할 때에도 수의 장군 왕인공이 신성을 공격하였지만 이를 지켜낸 바 있다. 645년 당태종이 고구려를 공격할 때에도 신성은 중요 공격 목표가 되었지만, 당의 장군 강하왕(江夏王) 도종(道宗)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러나 667년에 이적(李勣)이 고구려를 침공하면서 요하를 건너면서 여러 장수들에게“신성은 고구려의 서쪽 변방의 요해지이니 먼저 그곳을 빼앗지 않고는 나머지 성들도 쉽게 빼앗을 수 없다.”고 하였으며, 마침내 신성을 공격하니 성안의 사부구(師夫仇) 등이 성주를 묶고 문을 열어 항복하였다. 이후 주변의 16성이 모두 함락되었으니, 신성이 갖는 전략적 중요성을 알 수 있다.

현재 성벽이 일부 남아 있으며, 동쪽 성안의 유구로는 인공적으로 단을 지어 만든 넓은 대지가 있으며, 고구려시대의 유물이 수습되는 건물지와 목조 누각의 기단부가 조사되었다. 남위성의 남쪽 능선 정상에는 요(遼)·금(金)대의 백탑이 남아 있다.

고이산성 전경, 중국 요령성 무순시


고이산성 벽

고이산성 지형도



관련글
신성 목록  https://tadream.tistory.com/20296


Posted by civ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