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4111107001


6년째 세월호 유족 괴롭히는 ‘혐오표현’ “죽어줘서 고맙다니…”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입력 : 2020.04.11 11:07 수정 : 2020.04.11 11:11 


세월호 참사 희생자 고 임경빈 군의 어머니 전인숙씨가 4월 6일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김원진 기자

세월호 참사 희생자 고 임경빈 군의 어머니 전인숙씨가 4월 6일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김원진 기자


전인숙씨(48)는 ‘빨간 날’만 빼고 매일 청와대로 향한다. 경기 안산의 집에서 청와대 앞 분수대까지 꼬박 두 시간이 걸린다. 지난 4월 9일로 벌써 106일째다. 올해 설 연휴만 예외였다. 공휴일이었지만 ‘멀리서 온 사람들이 청와대를 찾을 것 같아서’ 집을 나섰다고 했다. 전씨는 매일 정오부터 두 시간 동안 1인 시위를 한다. 전씨가 든 노란 피켓에 쓰여 있는 메시지는 ‘세월호 진상규명’, 단 하나다.


그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고 임경빈 군 어머니다. 임 군은 세월호 참사 당일 오후 5시 24분쯤 구조됐다. 헬기에 탑승하지 못해 병원 이송까지 4시간 41분이 걸렸다. 임 군이 탈 수 있었던 헬기에는 김석균 당시 해양경찰청장이 탑승해 이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전씨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마스크와 장갑을 꼭 착용한다. 손 소독제도 수시로 쓴다. 1인 시위지만 행여 시민에게 누를 끼치지 않을까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럽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달라진 변화는 또 있다. 전씨는 올 초까지 “그만 좀 해라”, “몇 년째 우려먹느냐”, “징글징글하다”, “지겨워 못 살겠다”는 이야기를 면전에서 숱하게 들었다. 청와대 앞에서 ‘문재인 정권 퇴진’을 외치던 집회 참가자들이 자취를 감추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 때와 장소 안 가리는 ‘혐오’


전씨는 지난 4월 6일에도 홀로 청와대 앞 분수대를 지켰다. 전씨가 들고 있던 피켓에는 ‘내 아들을 왜 죽였는지 꼭 알고 싶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그는 “정권 퇴진 집회를 하던 ‘광야교회’ 분들이 사라지면서 막말하는 분들이 줄었다”고 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전광훈 대표가 이끈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는 청와대 앞 집회를 광야교회로 불렀다. 정치집회가 아니라 종교행사라는 취지였다.


전씨는 “예전에는 때릴 듯이 가까이 다가와 ‘죽어줘서 고맙다’ 같은 말을 하고 가는 분들이 거의 매일 있었다”고 했다. 청와대 앞 분수대 인근에는 선글라스를 쓴 청와대 경호원이 늘 수십 명씩 상주한다. 하지만 혐오표현을 제지하는 경호원은 곁에 없었다.


세월호 참사 유족들은 일상에서 혐오표현을 접하며 지낸다. 주요 통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언론보도다. 페이스북이나 온라인 뉴스의 댓글에서 심심치 않게 세월호 혐오표현이 눈에 띈다. 포털 사이트에서도 ‘세월호’를 검색하면 세월호 혐오표현은 상단에 노출된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고 박수현 군의 아버지 박종대씨(56)는 김호월 전 홍익대 광고홍보대학원 겸임교수의 혐오발언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김 전 교수는 2014년 5월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통령이 세월호 주인인가? 왜 유가족은 청와대에 가서 시위하나, 유가족이 무슨 벼슬 딴 것처럼 생난리 친다. 이래서 미개인이란 욕을 먹는 거다”라고 썼다.

6년째 세월호 유족 괴롭히는 ‘혐오표현’ “죽어줘서 고맙다니…”


세월호 참사 초기 정치적으로 전선 긋기에 쓰인 혐오표현 중 하나였다. 김 전 교수는 보수시민단체와 세월호 참사 전부터 인연을 맺고 활동해왔다. 박씨는 “유족들이 잘못한 것도 아니었다. 부당한 공격이라 참을 수 없었다”고 했다.


보상금을 둘러싼 혐오표현을 먼저 떠올리는 세월호 유족도 적지 않았다. 최성용씨(58)는 “애들 팔아서 장사한다거나, 돈에 환장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화가 치민다”고 했다. 최씨는 고 최윤민 양의 아버지다. 최씨는 “혼자 산에 올라가거나 30년 넘게 나간 조기축구회에서 운동을 하다가 막 욕을 쏟아낸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분이 안 풀린다”고 했다.


세월호 유족들이 지난해 11월 5일 오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책임자 고발 기자회견에 앞서 묵념을 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세월호 유족들이 지난해 11월 5일 오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책임자 고발 기자회견에 앞서 묵념을 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2017년 2월 국가인권위원회가 홍성수 숙명여대 법대 교수팀에 의뢰해 발간한 <혐오표현 실태조사 및 규제방안 연구>를 보면, 혐오표현을 접한 소수자 대부분은 두려움·슬픔·자살충동·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을 겪었다.


고 이창현 군의 아버지 이남석씨(55)는 차명진 전 의원의 ‘망언’을 최악의 혐오표현으로 꼽았다. 차 전 의원은 지난해 세월호 5주기 때 유족들을 지목하면서 자신의 페이스북에 “찜 쪄먹고 회 쳐먹는 것도 모자라서 진짜 징하게 해 처먹는다”라고 썼다. 이씨는 “정치인들은 본인이나 속한 정당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발언을 하기 때문에 더 악질적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김재원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세금도둑’ 발언도 당시 박근혜 청와대를 방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한 것 아니냐”고 했다.


차 전 의원은 이번 21대 총선에 미래통합당 경기 부천병 후보로 출마했다. 지난 4월 6일 국회의원 후보자 방송토론회에서 또 세월호 혐오발언을 한 뒤 당 윤리위원회에 회부됐다. 당 윤리위는 ‘제명’보다 한 단계 낮은 ‘출당 권유’ 결정을 내렸다.


유족들은 이미 지난해 차 전 의원을 명예훼손·모욕으로 고소했다. 부천소사경찰서는 차 의원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세월호 유족들은 최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의 도움을 받아 구글코리아·네이버 등에 올라온 혐오표현 삭제 요청도 하고 있다. 일부 세월호 유족들은 페이스북·트위터 등에 올라오는 혐오표현 게시물을 신고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세월호 참사 2000일인 지난 2019년 10월 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기억은 계속돼야 한다’ 추모행사. / 김영민 기자

세월호 참사 2000일인 지난 2019년 10월 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기억은 계속돼야 한다’ 추모행사. / 김영민 기자


■ 혐오표현은 모두에 ‘영향’


세월호 혐오표현이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만 할퀸 건 아니었다. 세월호 참사로 부모를 잃은 유족과 일반 시민도 혐오표현에 고통을 겪었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연구팀이 작성한 보고서 ‘재난 피해자 명예훼손 등 실태조사 및 개선방안’에는 세월호 참사로 부모를 잃은 유가족 3명의 면담 내용이 담겼다.


유가족들은 연구팀과 면담에서 “2014년 참사 당시 여야 정치인들이 모두 유가족을 갈라놓는 발언을 쏟아내 힘들었다”고 했다. 이들은 “인터넷으로 혐오표현을 접할 때보다 동네에 사는 이웃, 지인에게 혐오표현을 접할 때 고통이 더 컸다”고도 했다. “친척들에게 ‘그만하라’, ‘잊어라’는 말을 들을 때 심리적 고통이 컸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유족 중 한 명은 이웃의 부정적인 시선 때문에 이사를 한 사실도 털어놨다. 자녀도 전학을 해야 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배우자가 일했던 항만업체에서 퇴사 압력을 받고 직장을 그만둔 유족도 있었다. 해양수산부 등 관계부처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응답이 없었다고 했다. 해수부는 세월호 참사 수습을 한 주무부처였다.


세월호 혐오표현은 시민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연구진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시민 1000명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69.7%는 ‘언론에 보도된 세월호 혐오표현에 충격과 분노를 느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53.1%는 ‘세월호 관련해 자유롭게 글을 쓰거나 말을 하기 어려웠다’고도 했다. ‘일상에서 스트레스·우울·짜증·불안을 경험했다’고 답한 응답자도 39.6%나 됐다. ‘세월호 혐오표현을 한 매체를 피하려고 했다’는 응답자 비율은 57.2%였다.



세월호 재수사 ‘백서 쓰는 심정’이라던 검찰, 아직은 ‘지지부진’


세월호 재수사에 들어갔던 검찰의 첫 일성은 ‘백서 쓰는 심정’이었다. 임관혁 검찰 세월호 특별수사단장(특수단)이 지난해 11월 특수단 출범 직후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임 단장은 “형사처벌을 전제하지 않는 사안까지 조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범죄 혐의 적용이 어렵거나 공소시효가 지난 박근혜 청와대 고위 관계자나 공무원들의 부적절한 행위를 들여다보겠다는 뜻으로 읽혔다.


특수단이 출범한 지 5개월이 지났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없다. 특수단은 해경의 구조 과정을 먼저 들여다봤다. 특수단은 지난 2월 18일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 책임자인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을 비롯한 전·현직 해경 간부 11명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김 전 해경청장 등 해경 간부 6명에게 청구된 구속영장이 한 차례 법원에서 기각된 뒤였다.


해경 간부 11명의 공소장에도 새로운 사실관계는 눈에 띄지 않았다. 특수단은 세월호 참사 당시 문건 조작 혐의만 일부 새로 밝혀냈다. 특수단은 해군과 해경의 세월호 내부 폐쇄회로(CC)TV 영상녹화장치(DVR) 조작 의혹 등에서는 뚜렷한 혐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특수단은 고 임경빈 군의 헬기 이송 지연도 “혐의 적용이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는 의견을 세월호 유족 측에 전했다고 한다. 임 군은 세월호 참사 당일 오후 5시 24분쯤 발견됐다. 이용할 수 있는 헬기가 없어 병원까지 이송되는 데 4시간 41분이 소요됐다. 당시 임 군이 탔어야 할 헬기는 김 전 해경청장 등 해경 간부들 탔던 것으로 조사됐다.


특수단의 재수사는 일시 정지됐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참고인 조사 등 속도가 더뎌졌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으로 쟁점이 될 수 있는 사안의 조사는 대부분 멈췄다. 특수단은 총선 직후 다시 수사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특수단은 세월호 참사 6주기인 4월 16일 조대환 전 세월호 특조위 부위원장을 불러 조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조 전 부위원장은 세월호 특조위 설립 준비를 하던 해수부 소속 공무원 3명에게 복귀 지시를 해 특조위 조사를 방해한 혐의를 받는다.


특수단은 검찰이 한 차례 수사했던 세월호 특조위 조사방해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특수단은 기존에 검찰이 적용하지 않았던 업무방해 혐의를 세월호 특조위 조사방해에 관여한 박근혜 청와대 인사나 해양수산부 고위 공무원 등에게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지난 4월7일부터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박근혜 청와대의 대응을 확인하기 위해 국가기록원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세월호 유족 측 류하경 변호사는 “지금까지 세월호를 둘러싼 여러 의혹이 있는 옛 국군기무사령부나 국가정보원에 대한 강제수사가 없는 점은 매우 아쉽다”며 “최소한 국가기록원 압수수색으로 세월호 참사 이후 청와대의 행적을 제대로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2기 세월호 특조위’인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 조사도 난항을 겪고 있다. 현직 공무원인 조사 대상자들이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조사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참위도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조사하지 못하고 있다. 사참위는 총선 직후 검찰에 추가 수사를 요청하는 등 활동을 재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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