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가야

6가야 - 위키
출처 : http://ko.wikipedia.org/wiki/%EA%B0%80%EC%95%BC#6.EA.B0.80.EC.95.BC 
* "가야 - 위키" 중 6가야 부분만 가져왔습니다.
 
가야를 완전히 병탄한 뒤 신라는 창녕일대의 하주정(下州停:比子伐停)을 다라국이 있던 합천으로 옮겨 대야주(大耶州)를 설치했고 통일후에는 강주와 삽량주를 설치했다.

신라말기에 전국에 군웅이 할거하자 옛 가야땅에도 토호들이 신라에 반기를 들었다. 이들은 옛 가야의 소국들의 후예임을 자처했는데 뜻밖에도 이전 가야와 무관했거나 이전에 가야에는 속하지 않았던 고령군[20]과 벽진군의 가야인 공동체까지 거주지역에서 새로운 가야 소국을 세워 일어섰다. 이 "후가야"는 이총언이나 왕봉규등의 두각을 드러낸 인물들도 있었음에도 중심세력을 형성하지 못한 채 개별적으로 존재하다가 후백제와 고려에 흡수되어 고려 전기까지 자치세력으로 해당지역을 지배해 나갔다.

후삼국 통일 후인 940년 고려 태조는 통일한 영토의 행정체제를 제편하는 과정에 이 "후가야"세력을 위해 가야연맹의 금관가야를 제외하고 5가야의 명칭을 개정했는데 옛 안라국인 아라가야, 함창일대의 고령가야, 반파국이었던 대가야, 벽진군의 성산가야또는 벽진가야, 옛 고사포국이었던 소가야가 그것이다. 그런데 그중에 고령가야와 성산가야는 지역상 원래의 가야소국들과는 무관하지만 가야유민세력을 중심으로 가야의 후예임을 자처했고 그것이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이에 더해 금관가야까지 가야연맹은 삼국유사등을 통해 6가야로 와전(訛傳)되어 전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현재 가야라 하면 엉뚱하게도 이 6가야가 일반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6가야 - 엔하위키 미러

출처 : https://mirror.enha.kr/wiki/%EA%B0%80%EC%95%BC#s-2
* "가야 - 엔하위키미러" 중 "2. 제국설과 연맹설의 차이"에서 6가야 내용만 가져왔습니다.

다들 금관가야, 대가야, 안라가야 등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XX가야로 불린건 태조 왕건이 가야지역 일대 호족들에게 XX 가야라는 명칭을 부여하면서 옛 가야시대 이름인양 와전된 것이다. 삼국유사의 기록을 참조해보면,


가락기 찬에 이르기를

"한줄기 붉은 끈이 드리워지며/둥근 달 여섯 개가 떨어졌네./다섯은 각기 제 고을로 돌아가고/하나가 이 성에 머물렀네"

라고 했다. 그 하나가 수로왕이 되고 나머지 다섯은 각기 5가야의 임금이 되었으니, 금관국이 이 다섯 가운데 들어가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본조의 사략에는 금관까지 아울러 그 수에 넣고 왕명을 기록했으니 잘못 된 것이다.

아라가야와 고령가야와 대가야와 성산가야와 소가야이다. 또 본조 사략에는 이렇게 기록되었다.

"태조 천복 5년 경자(940)에 다섯 가야의 이름을 고쳐 1은 금관, 2는 고령, 3은 비화로, 나머지 둘은 아라와 성산으로 했다.

실제로는 XX국이라는 명칭을 썻으며 그 이름에 대해서는 삼국유사, 일본서기, 삼국지 위지 동이전 등의 중국 역사서들에 각각 다르게 등장한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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