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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한 [弁韓]

위치도

삼한(三韓)시대의 정치 집단체.

진한(辰韓) 소국 연맹체에 소속되지 않은 지금의 경상도지역의 여러 정치 집단으로서 ‘변진(弁辰)’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진한과 변한은 종족적 차이로 구분되기도 하고, 낙동강 동쪽과 서쪽이라는 지역적인 구분에 의해서 나뉘어 지거나 신라세력권과 가야세력권으로 대비되기도 한다.

이 밖에도 사로국(斯盧國)의 세력권을 진한, 변진구야국(弁辰狗邪國)의 세력권을 변진으로, 또는 진왕(辰王)에게 소속된 12국은 진한으로, 그 나머지를 변진으로 간주하는 등의 여러 견해들이 있다.

[형성 및 변천]
 
『삼국지』 동이전에는 변진과 진한은 잡거(雜居)하며 언어·법속(法俗)·의식주 생활이 같고 다만 제사풍속만이 다르다고 하여, 진한과 변한은 지역적인 경계에 의해 구분되지도 않을 뿐더러 전체적인 문화기반이 동일한 것으로 나타난다.

고고학 자료를 놓고 볼 때 청동기문화 단계에서는 아직 경상도지역 내에서 진한과 변한의 구분을 암시하는 이질적인 문화 요소가 발견되지 않는다.

묘제(墓制)에 있어서도 고인돌〔支石墓〕·돌널무덤〔石棺墓〕·독무덤〔甕棺墓〕·널무덤〔土壙墓〕과 같은 서로 다른 주민 집단의 무덤 양식이 시대에 따라 공통적으로 섞여 있어 주민 구성면에서도 특별한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또한 1∼3세기까지의 와질토기(瓦質土器) 형태나 분포 상태도 공통된 양상을 나타내고 있어 3세기 이전 단계에서 이 지역의 정치 집단을 양분할 만한 문화적 요소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진한·변한의 구분은 소국의 성장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치·경제적인 관계에 근거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낙동강 하류 및 남해안 지역에는 철자원이 풍부하였으므로 변진 소국들 중에는 철 생산과 교역을 통하여 재부(財富)를 축적하고 대내적으로 읍락집단(邑落集團)의 통합에 성공하여, 인근 지역에까지 영향력을 뻗쳐 나간 유력한 집단들이 많았다. 철기유물·유적이 다량 출토된 김해의 구야국(狗邪國), 동래의 독로국(瀆盧國), 함안의 안야국(安邪國) 등이 그러한 예이다.

특히 진한과 변한은 철산지로 유명하여 마한(馬韓)·낙랑군(樂浪郡)·대방군(帶方郡)·동예(東濊)·왜(倭) 등이 모두 이곳의 철을 사갔다고 한다. 철광석은 야철 과정을 거쳐 철제 도구를 용이하게 제작할 수 있는 중간 소재로 가공되어 물자 교역의 수단으로서 화폐와 같이 사용되었다.

이 지역의 철기 보급 상태로 미루어 변진구야국을 중심으로 낙동강 하류의 다수 소국들 사이에도 경주·대구 중심의 세력권과 대비되는 일정한 세력권이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3세기 후반 진(晋)나라에 사신을 파견한 동이 제국(東夷諸國) 중 마한과 진한은 있으나 변한은 찾아볼 수 없다.

『삼국지』의, 변진에는 12개 소국 이외에 독립된 거수(渠帥)가 있는 여러 소별읍(小別邑 : 소국 정도의 세력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은 규모의 독자적인 정치 집단)이 있다는 기록 역시 당시 변진이 특정한 구심체를 정점으로 일괄적으로 파악되는 집단체가 아니었음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변진은 경상도지역의 정치 집단들 중 진한 소국 연맹체에 포함되지 않고 개별적인 세력으로 존속하고 있던 정치 집단들을 포괄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변진 소국의 대부분은 독립된 가야소국으로서 5·6세기경까지 계속 성장하였다. 변진인은 신체가 크고 머리를 길렀으며 의복이 깨끗하였다고 한다. 또한 폭이 넓은 세포(細布)를 짜고 법속이 특별히 엄하였으며, 왜와 인접한 일부 지역에서는 문신(文身)의 풍속이 있었다고 한다.

근래 김해 양동리(良東里) 등지에서 구야국(狗邪國) 시기의 토광목관묘, 토광목곽묘가 대량 발굴되어 이 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된 국제 교역의 흔적을 보여 준다. 대표적인 유물은 한경(漢鏡), 중국제 철제 솥, 유리 구슬, 수정 목걸이, 일본산 동모(銅矛) 등이다. →삼한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삼국지(三國志)』
『후한서(後漢書)』
『한국(韓國) 고대(古代)의 생산과 교역』(이현혜, 일조각, 1998)
『삼한사회형성과정연구(三韓社會形成過程硏究)』(이현혜, 일조각, 1984)
「복원가야사(復元加耶史)」상(천관우, 『문학(文學)과 지성(知性)』 28, 1977)
「삼한(三韓)의 국가형성(國家形成)」 하(천관우, 『한국학보(韓國學報)』 3, 일지사, 1976)
「진·변한(辰·弁韓) 제국(諸國)의 위치시론(位置試論)」(천관우, 『백산학보(白山學報)』 20, 1976)
「삼한문제(三韓問題)의 연구(硏究)」(이병도, 『한국고대사연구(韓國古代史硏究)』, 박영사, 1976)
「전후삼한고(前後三韓考)」(신채호, 『조선사연구초(朝鮮史硏究草)』, 1929)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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