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32401

임진왜란을 '임진전쟁'으로? 비겁한 태도다
[역사, 그 밖의 이야기들 20편] 동아시아 공동체 성립 위해 필요한 두 가지
11.10.01 16:11 l 최종 업데이트 11.10.01 16:11 l 김종성(qqqkim2000)

▲  임진왜란의 3대 전투인 한산대첩의 주인공, 이순신. 사진은 이순신 영정의 유리필름. ⓒ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최근 '임진왜란'을 '임진전쟁'으로 표기한 교과서들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교학사와 천재교육출판사가 제작하고 국사편찬위원회 및 동북아역사재단이 검정한 이들 교과서에서는 '임진왜란'을 '임진전쟁'으로 바꿔 부르는 것과 더불어, 정묘호란·병자호란도 각각 정묘전쟁·병자전쟁으로 바꿔 부르고 있다. 
이 교과서들은 내년부터 신설되는 고등학교 동아시아사 과목의 교재로 활용된다. 이들 교과서에서 임진전쟁이란 용어가 사용된다 하여, 기존의 <국사> 혹은 <한국사> 교과서에 있는 임진왜란 표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당분간은 임진왜란이라 표기된 교과서와 임진전쟁이라 표기된 교과서가 공존하게 될 것이다. 향후 논쟁의 결과에 따라 둘 중 하나가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 

여진족(만주족)의 침략인 정묘호란·병자호란을 각각 정묘전쟁·병자전쟁으로 바꿔 부르는 데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이의가 적을 것이다. 하지만, 임진왜란을 임진전쟁으로 변경하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국민들이 한 번쯤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정묘·병자호란의 경우는 침략자가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에 비해, 임란의 경우는 침략자가 여전히 건재할 뿐만 아니라, 그 장본인이 매년 연례적으로 독도·과거사·야스쿠니 문제 등을 놓고 한국을 자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본의 침략을 왜란에서 전쟁으로 바꿔 부르는 것을 두고 한국 내에서 논란이 안 생길 수 없는 것이다.  

임진왜란은 400년 전의 사건이지만 이것이 채 잊히기도 전에 일제가 또다시 한국을 침략했기 때문에, 이것은 식민지배와 더불어 한국인들에게 여전히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이런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앞으로도 계속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학술적이고 과학적인 시각으로 임진왜란을 냉정히 따져본다면 아무래도 '왜란'보다는 '전쟁'이 훨씬 더 타당한 개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명나라·일본이 참전했을 뿐만 아니라 이 전쟁의 결과로 동아시아 국제질서가 새롭게 재편되었으므로, 난동의 뉘앙스를 풍기는 '왜란'보다는 국제성이 가미된 '전쟁'이란 표현이 훨씬 더 바람직한 용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임진전쟁' 용어 변경 바람직... 하지만 지엽적 문제일 뿐

일본과의 관계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노력은, 비록 지금 당장에는 국민 감정을 건드릴 수 있지만, 동아시아 공동체의 건설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이룩하는 데는 필수불가결한 일이다. 동아시아적 시각을 갖지 않고는 결코 동아시아 공동체를 건설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남아·아프리카·유럽·북미 등의 사례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지역별 블록화의 시도는 이미 세계적 트렌드가 되었다. 그런데도 한·중·일 3국은 상호간의 반목과 불신 때문에 이런 추세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자칫하면 이같은 낙오가 한·중·일의 동반 몰락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위험성을 고려할 때, 동아시아 공동체에 걸맞은 '동아시아적 역사인식'을 정립하는 것은 매우 긴요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임진왜란을 임진전쟁으로 바꿔 부르는 것은 시대적 트렌드에도 부합하는 일이라 볼 수 있다. 


▲  임진왜란의 3대 전투인 행주대첩의 상상도. ⓒ 장서각 디지털 아카이브

그러나 동아시아 공동체를 향한 노력이 진정으로 결실을 거두려면, 단순히 용어 몇 개를 수정하는 차원에 그치는 게 아니라 '보다 더 본질적 차원'에서 동아시아적 역사인식의 수립을 위한 노력을 경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첫째, 진정한 의미의 동아시아사 교과서라면, 동아시아 공동체의 성립을 저해하는 본질적 요인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지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날 동아시아가 반목과 불신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일본과의 전쟁을 난동 수준으로 격하하기 때문이 아니다. 진짜 이유는, 일본이 1945년 이전의 전쟁범죄에 관한 사과와 배상을 기피함에 따라 동아시아의 과거가 아직 청산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일본이 그나마 박정희 정권에게 소액의 배상을 한 것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한·미·일 삼각동맹을 결성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일본이 사과 및 배상을 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뻔뻔해서가 아니다. 독일인들은 양심이 있어서 잘못을 뉘우치고, 일본인들은 양심이 없어서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게 아니다. 독일의 경우는 잘못을 뉘우치지 않으면 안 되는 사정이 있었고, 일본의 경우는 잘못을 뉘우치지 않아도 되는 사정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전승국인 미국은 독일의 잘못에 대해서는 엄격한 데 비해 일본의 잘못에 대해서는 상당히 관대했다. 전후에 유럽에서 미국의 대리인이 된 나라는 독일이 아니라 영국이고, 아시아에서 미국의 대리인이 된 나라는 일본이다. 만약 독일이 미국의 '유럽 에이전트'가 되었다면, 미국은 나치에 대해서도 관대한 태도를 취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독일도 일본처럼 사과와 배상을 기피했을 것이다.  

미국의 '에이전트'가 지난날의 전과 때문에 주변국들한테 고개나 숙이고 돈이나 내놓는다면, 그것은 에이전트 자신의 위신뿐만 아니라 미국의 지도력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 미국은 자국의 에이전트가 과거사에 얽매어 기죽은 상태로 살기보다는 당당하게 미국의 의지를 관철시켜 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미국은 일본을 비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비호가 있기에, 전과자 일본이 과거를 참회하지 않고도 저렇게 당당하게 활보할 수 있는 것이다.

유독 동아시아에서만 지역 공동체의 설립이 늦는 것은 이처럼 일본이 미국의 비호 하에 과거 청산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 동아시아의 과거를 청산하지 않고서는 동아시아의 미래를 열 수 없다는 점, 진정으로 객관적이고 학술적인 동아시아사 교과서라면 이런 점들을 명확히 지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런 본질적 측면을 도외시하고, 임진왜란이니 임진전쟁이니 하는 지엽적 문제만 건드리는 것은 어찌 보면 비겁한 태도일 수도 있다. 진정한 의미의 동아시아사 교과서라면 동아시아 공동체의 성립을 저해하는 반역사적 현실을 과감히 비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한반도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도 '공정한 인식' 가져야


▲  임진왜란의 3대 전투인 진주대첩의 무대. 붉은 원이 있는 오른쪽 부분이 진주성. 남강이 옆에 흐르고 있다. ⓒ 네이버 항공사진

둘째, 진정한 의미의 동아시아사 교과서라면, 한국이 동아시아 공동체를 준비하기에 앞서 무엇부터 준비해야 할지를 명확히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이 동아시아 공동체를 고민하기 전에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은 당연히 한반도 공동체다. 한반도에서도 공동체를 만들지 못하면서 동아시아에서 공동체를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반도 공동체를 준비하려면 그에 걸맞은 역사인식을 정립해야 한다. 1945년 이래로 한반도를 둘러싸고 전개된 각종 사건들을 과학적이고 공정하게 해석하지 않고서는 그런 역사인식을 정립할 수 없을 것이다.  

예컨대, 한국전쟁을 과학적이고 공정하게 해석하고자 하는 노력도 교과서 안에 담아야 한다. 북한의 선공으로 개시된 이 전쟁이 한민족에게 아픔을 남겼다는 점, 이 전쟁 중에 미군과 국군이 불법적인 민간인 살상을 자행했다는 점을 인식하는 전제 하에서, 미국의 패권주의가 1945년 이후의 동아시아를 새로운 전쟁의 위기로 몰고 갔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이 전쟁이 발발했다는 점을 반드시 지적해야 한다. 주먹을 먼저 뻗은 쪽은 북한이지만, 애초에 싸움판을 깔아놓은 쪽은 미국이었다는 점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전승국인 미국이 한민족과 중국을 배신하고 전범인 일본과 손잡고 동아시아를 자기 이익에 따라 재편하려고 한 것이, 1945년 이후 한국과 중국에서 발발한 전쟁들의 근원이라는 점. 진정한 의미의 동아시아사 교과서라면 이런 점을 지적해야 한다. 이렇게 한반도 역사를 올바로 인식하지 않고서는 한반도 공동체를 세울 수 없으며 한반도 공동체 없이는 동아시아 공동체를 세울 수 없다는 점을, 동아시아사 교과서는 명확히 지적할 필요가 있다. 

우리와 남(일본) 사이에서 벌어진 문제를 공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아량이 있다면, 우리 내부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더욱 더 그러해야 한다. 집 밖에 나가서 남한테는 한없이 공정하면서도 집 안에 들어와서 가족한테는 모질게 대하는 그런 사람은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임진왜란을 임진전쟁으로 바꿔 부르는 것은 동아시아 공동체를 향한 성과다. 하지만 그것은 작은 성과에 불과하다. 동아시아 공동체를 저해하는 요소가 무엇이고 그것의 선결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명확하고 소신 있게 지적하는 역사 교과서가 진정한 의미의 동아시아사 교과서일 것이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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