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03649

새누리 "문창극 이해한다"
친일파 "이완용 이해한다"
[게릴라 칼럼] 95년 전 <매일신보>에 이완용 두둔 글 올린 '광화문인'
14.06.16 15:47 l 최종 업데이트 14.06.16 15:47 l 김종성(qqqkim2000)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  3·1운동 당시 지금의 서울 광화문광장 교보문고 옆에 있는 기념비전에서 만세시위를 벌이고 있는 한국인들. ⓒ 위키피디아백과사전

지금으로부터 95년 전인 1919년. 이 해 3~5월의 식민지 한국은 3·1운동 열기로 뜨거웠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완용을 둘러싼 논쟁도 상당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3·1운동에 대한 이완용의 망언을 비판하는 가운데, 조선총독부의 여당 세력이라 할 수 있는 친일파들이 이완용을 비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 해 4월의 경성(서울) 광화문 주변으로 가보자. 전 달에 시작된 3·1운동의 열기는 이때까지도 전국 곳곳에서 뜨거웠다. 보다 못한 이완용은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경고문을 실었다(관련기사 : 95년 전 이완용의 '망언', 문창극 발언과 똑같네). 4월 5일과 9일은 물론이고 다음 달인 5월 29일까지 이어진 세 차례의 경고문에서 나온 그의 망언 중에서 인상적인 표현들은 다음과 같다. 

"조선 독립은 허언이고 망동이다."
"무지하고 몰지각한 아이들의 망동에 부화뇌동하지 말라." 
"이 좁은 땅으로, 이 수준 낮은 백성으로 무슨 독립이냐?" 
"총독 정치 덕분에 조선 인민의 복지는 향상되었다."
"하느님도 조선과 일본이 함께 살기를 원하신다."
"일한합병은 조선민족의 유일한 활로다." 
"총독부에 요구할 게 있더라도, 여러분의 생활 및 지식수준이 향상된 뒤에 요구하라!"
"우리는 일본인에 비해 실력이 부족하니, 아량을 갖고 그들을 대하자."

이완용의 경고문은 <매일신보>는 물론이고 거리 곳곳에 게시되었다. 이를 본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이완용에게 비판과 욕설을 퍼부었다.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광화문 주변에 사는 한 사람이 이 근처를 산책했다. 이 글의 뒷부분에 가면 이 사람은 '광화문인(人)'으로 불릴 것이다. 

그가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친일파라는 점은 <매일신보>에 두 차례나 기고문을 올린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단순하게 독자 투고 형식의 글을 쓴 게 아니라 이완용의 경고문과 비슷한 기사를 <매일신보>에 실었다. 이 점을 보면, 그가 총독부의 여당 세력을 형성한 친일파의 지도자급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완용의 글을 본 뒤 기뻐한, 한 사람

▲  일제 강점기 당시의 조선총독부와 광화문광장. 1920년대 후반의 모습이다. 출처: 고등학교 <국사>. ⓒ 교육인적자원부

그는 광화문 근처의 전봇대 앞에서 사람들이 웅성대는 장면을 목격했다. 1919년 4월 15일자 <매일신보>에 따르면, 처음에 그는 '시위대가 붙인 전단지를 보려고 사람들이 모였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냥 지나치려고 했다. 

그러다가 괜한 호기심에 전봇대로 다가가 봤다. 그랬더니 반가운 이름이 그곳에 있었다. '경고문'이란 제목이 붙은 전단지의 맨 끝에 '백작 이완용, 삼가 고하다'란 문구가 적혀 있었던 것이다. 그가 본 것은 4월 4일자 <매일신보>에 실린 이완용의 3·1운동 경고문이었다. 

동지의 글을 발견한 그는 순간적으로 짜릿함과 통쾌함을 느꼈다. 이때의 쾌감을 그는 4월 15일자 <매일신보>에 소개했다. 

"이 같이 협박적인 기운이 팽배한 시점에서 오늘 이것을 본 것은 실로 의외였다. 나의 피는 끓지 않을 수 없었다. 실로 무엇이라 형언할 수 없는 유쾌함을 느꼈다."

참고로, 95년 전의 문투로 작성된 <매일신보> 기사의 문장을, 원문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현대 한국어로 바꾸었음을 밝힌다. 또 위의 인용문에 나오는 '오늘'은 1919년 4월 15일이 아니라 4월 4일~14일 사이의 어느 날을 가리킨다. 4일~14일 사이의 어느 날에 이완용의 경고문을 보고 받은 느낌을 4월 15일자 신문에 소개한 것이다.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이완용의 망언에 분노하는 상황 속에서 그는 유쾌·통쾌를 느꼈다. 거의 모든 한국인들이 3·1운동에 동조하는 '이 같이 협박적인 기운이 팽배한 시점에서' 이완용의 글이 경성 시내 한복판에 붙어 있다는 게 너무나도 신기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매일신보에 자기의 실명을 공개하지는 못했다. 너무나 유쾌·통쾌했지만 자기 신변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광화문인'이란 필명으로 <매일신보>에 위의 글을 실었다. 

이완용이 진심으로 동포를 사랑했다?

▲  1919년 4월 15일자 <매일신보>에 실린 광화문인의 글. ⓒ 조선총독부

주변의 한국인들은 이완용의 글을 보고 불쾌함을 느꼈지만, 총독부의 여당 세력인 광화문인은 정반대였다. 위의 기사에서 그는 "(이완용은) 진심으로 동포를 사랑하고 지성으로 국가의 위급을 우려하는 사람이므로, 글에 피가 있고 눈물이 있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완용의 진가를 모르지만 자기는 이완용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이완용은 매국노가 아니라 애국자라는 것이다. 

또 광화문인은 이완용이 위대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완용 백작이 모든 난관을 배척하고 이처럼 국사(國士, 한 나라 최고의 선비)적 태도를 취한 것에 대해 마음속 깊은 경의를 표하는 사람이다."   

이완용에 대한 광화문인의 극찬은 계속된다. 그는 이완용이 본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완용 백작이 솔선해서 모범을 보이게 된 것을 충심으로 기뻐한다." 

이완용이 솔선해서 모범을 보였으니 다른 지식인들도 이완용을 따라 대중을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이처럼 이완용의 망언에 대한 광화문인의 평가는 한마디로 '이해할 수 있으며 본받을 만하다'는 것이었다. 

이완용의 망언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은 광화문인은, 이완용을 비판하는 세상 사람들이 한심하게 보였을 것이다. '끝까지 다 읽어보면 이완용 백작의 진심을 알 수 있지 않은가? 왜 전체 맥락을 안 보고 사소한 문구에 집착하는가?'라고 혀를 찼을 것이다. 

광화문인은 이완용이 민족의 안전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는 점을 중시했다. 이완용이 좋은 취지로 경고문을 썼으므로 경고문 중간 중간에 한국인을 비하하는 표현이 있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봤던 것이다. 

하지만 대중을 상대로 글을 쓰거나 연설을 하는 사람 중에 나쁜 취지를 갖고 대중 앞에 서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다 좋은 취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글을 쓰거나 연설을 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여러분, 잘못된 길로 가십시오!'라는 취지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사람은 없다. 모든 필자와 연사는 '여러분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말씀을 드린다'고 말한다. 

전체 친일파의 정서를 반영한 광화문인의 글

이완용은 자신이 한국인들의 안전을 염려하기 때문에 경고문을 쓴다고 했다. 동족의 안전을 염려하는 전체 맥락이나 취지는 분명 좋은 것이다. 하지만 전체 맥락이나 취지에 가린 그의 본심도 봐야 한다. 

이완용은 한국인의 안전을 위해서는 독립을 포기하고 식민통치에 순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것이 상천(上天) 즉 하느님의 뜻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이완용의 본심이었다. 겉으로 표방한 전체 맥락이나 취지는 좋았지만, 속에 숨긴 본심은 나빴던 것이다. 광화문인은 이런 이완용의 글을 비호했던 것이다. 

▲  지금의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시위 진압을 준비하고 있는 일본군. ⓒ 위키피디아백과사전

광화문인의 글은 한 사람 명의의 글이지만, 이것은 전체 친일파의 정서를 반영하는 글이었다. 그런 글이었기에 총독부가 <매일신보>에 실어준 것이다. 이완용이 동족을 상대로 마음 놓고 망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광화문인으로 대표되는 친일파 우군이 있었기 때문이다. 총독부의 여당 세력인 친일파들이 감싸줬기 때문에 그 같은 망언을 일삼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95년 전에 이완용이 내뱉은 망언들은 결코 이완용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망언을 듣고 "이해할 수 있다! 본받을 만하다!"며 비호한 세력의 공통적인 문제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평소에 하고 싶었던 말을 이완용이 대신 해줬기 때문에 이완용을 비호한 것이다. 

따라서 망언을 내뱉은 이완용 본인만 비판할 게 아니라 "전체 맥락과 취지를 보자"며 망언을 비호하고 왜곡하는 세력도 함께 비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완용의 전체 맥락과 취지를 보자며 그의 본심을 숨겨주는 세력은 이완용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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