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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이순신의 리더십 (8) 지극한 정성은 하늘도 감동한다
애끓는 구국의 지성 ‘全勝 신화’를 쏘다
2012. 07. 09   00:00 입력 | 2013. 01. 05   08:09 수정

중요한 일 앞두고 꿈 자주 꿔 神人 나타나 전술 알려주기도

남해 충렬사 이순신 가묘.
 

남해 충렬사 한글 비문.
 
정성(精誠)은 우리의 전통적인 정서에 가장 부합하는 덕목이다. 우리네 어머니들이 정화수를 떠놓고 자식의 무탈과 무병, 출세를 기원하던 그 마음이 바로 정성이다. 유학에서는 정성을 ‘진실 되고 거짓됨이 없는 것’ ‘하늘의 이치 본래의 모습’이라고 설명한다. 이른바 유학에서는 아무런 사심(私心) 없이 언제나 일정하게 운동, 변화하고 있는 자연의 이치로부터 진실 되고 거짓됨이 없는 성(誠)이란 개념을 추출해 냈다. 그래서 ‘중용(中庸)’에서 “성(誠)은 하늘의 도(道)요, 성(誠)에 도달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사람의 도(道)다(誠者天之道, 誠之者人之道)”라고 한 것이다. 하늘의 이치는 언제나 진실하고 거짓됨이 없는 성(誠) 그 자체이지만 사람은 무한한 이기적 욕구의 영향을 받아 성(誠)의 상태에 머물러 있기가 어려우므로 진실 되고 거짓됨이 없는 상태에 도달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유학의 가르침이다.

이순신은 유별나게 꿈을 많이 꾸었다. 매사에 정성을 다하는 그의 간절한 염원과 소망이 잠재의식화해 종종 꿈으로 드러나곤 했기 때문이다. 이순신이 전투에 나갔을 때는 전투와 관련된 꿈을, 나랏일을 근심할 때는 나랏일과 관련된 꿈을, 어머니의 병환을 애달파 할 때는 어머니와 관련된 꿈을 꾸었다. 사심(私心) 없이 나라와 백성과 어머니를 생각하는 지극한 정성이 하늘에 통했기 때문이리라. 

꿈속에서조차 나랏일을 걱정하는 이순신의 모습을 일기에서 확인해 본다. “새벽 꿈에 커다란 대궐에 이르렀는데, 마치 한성인 것 같고, 기이한 일이 많았다. 영의정이 와서 인사하기에 나도 답례를 하였다. 임금이 피난 가신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눈물을 뿌리며 탄식할 적에 적의 형세는 벌써 종식되었다고 하였다.” 당시 영의정은 서애 류성룡이었다. 류성룡은 이순신이 의지하고 존경하는 몇 안 되는 조정 대신이었다. 병신년(1596년) 1월 일기에도 류성룡과 더불어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꿈 이야기가 보인다. 

“사경(四更)에 꿈을 꾸었는데 어느 한 곳에 이르러 영의정 류성룡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동안 둘 다 의관을 벗고 앉았다 누웠다 하며 서로 나라를 걱정하는 생각을 털어놓다가 끝내는 억울한 사정까지 쏟아 놓았다. 얼마 후 비바람이 억세게 퍼붓는데도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조용히 이야기하는 사이 만일 서쪽의 적이 급한데 남쪽의 적까지 동원된다면 임금이 어디로 가시겠는가를 되풀이하며 걱정하다가 말할 바를 알지 못했다.” 이 일기를 통해 우리는 이순신이 얼마나 나라와 임금을 위해 정성을 다했는지 그리고 류성룡을 얼마나 믿고 의지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류성룡이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자 이순신은 노심초사했다. 답답한 마음에 점을 쳤다. “일찍 들으니 영의정 류성룡이 천식에 심하게 걸렸다고 했는데 잘 나았는지 모르겠다. 척자점을 쳐 보니 ‘바람이 물결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는 괘가 나왔다. 또 오늘 어떤 길흉의 조짐을 들을지 점쳤더니 ‘가난한 사람이 보배를 얻은 것과 같다’고 했다. 이 괘는 매우 좋다.” 후원자격인 류성룡이 심한 천식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안절부절못하며 점을 쳐보는 이순신, 점괘를 보고 마음의 위안을 삼는 이순신, 이순신은 그런 사람이었다. 어찌 보면 이순신의 이런 지극정성의 마음이 그가 벌인 모든 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임진왜란을 극복할 수 있었던 토대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난중일기’에는 그가 해전을 앞두고 길흉을 점치는 광경이 종종 보이는데 그것은 요행을 바라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최선의 전투준비를 갖춘 뒤 하늘의 명(命)을 기다리는 이른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숙연한 마음, 정성을 다하는 마음의 표시였다. “새벽에 불을 밝히고 홀로 앉아 적을 칠 일로 길흉을 점쳐보았다. 첫 점은 ‘활이 살을 얻은 것과 같다’는 것이었고, 다시 치니 ‘산이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다’는 것이었다.” 이때는 갑오년(1594년) 9월 거제도 장문포의 일본 수군을 공격하기로 정해 놓은 날 아침이었다. 비록 전투를 위해 모든 준비가 완료된 상태였지만 승패의 불확실성 앞에서는 이순신 또한 점괘의 결과를 보고 조금이나마 마음의 위안을 갖고자 했던 평범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이순신은 꿈꾼 내용을 토대로 작전지시를 내릴 정도로 모든 촉각을 일본군 격멸에 두고 승리를 위해 노심초사했다. “꿈에 적의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새벽에 각 도(道)의 대장에게 알려 바깥 바다로 나가 진을 치게 했다. 해질 무렵에 한산도 안쪽 바다로 돌아왔다.” 이것은 한산도에 삼도 수군의 전진기지를 설치하고 남해 해로 차단 전략을 구사하고 있었던 계사년(1593년) 8월 25일 자 일기다. 잠을 자다 꿈속에 이상한 기미가 보이자 바로 출동 명령을 하달해 온종일 한산도 바깥 바다에 나아가 일본군을 수색하다가 해가 질 무렵에 돌아왔으니 어찌 보면 이순신의 꿈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평소 꿈과 현실이 종종 일치하는 경우가 있었으므로 이런 일이 생기게 된 것이다.

“지극한 정성에는 하늘도 감동한다”는 말이 있다. 나라와 백성과 임금을 향한 이순신의 정성에 하늘도 감동했던지 중요한 일을 앞두고는 종종 주목할 만한 내용의 꿈을 꾸었다. 13척으로 133척의 일본 함대와 대적해야 했던 명량해전을 앞두고는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이렇게 하면 지고 이렇게 하면 이긴다”고 일러 주었다. 마지막 해전이 된 노량해전을 앞두고는 자정에 배 위로 올라가 손을 씻은 다음 무릎을 꿇고 하늘에 빌었다. “이 원수 무찌를 수만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나이다.” 이순신의 이 마지막 기도는 승리를 향한 지극정성의 극치다. 노량해전의 승리를 위해 그는 자신의 목숨을 하늘에 담보로 내놓았던 것이다.

정성(精誠)에는 사심(私心)이 없다. 정성의 주체는 언제나 내가 아니라 나라와 국민과 인류다. 그래서 정성은 하늘과 통하고 하늘이 함께하는지도 모른다. 나라와 국민과 인류를 위한 지극한 정성, 국가 안보와 인류 평화의 최후 보루인 우리 군의 리더들이 늘 염두에 둬야 할 중요한 덕목이 아닐 수 없다.
 

임원빈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장  전 해사 교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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