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heritage.tv/hp/hpContents/vod/view.do?contentsSeq=7815&categoryType=7 
         https://www.youtube.com/watch?v=l3rwimmZ4Cs

남한산성 1부 신라 주장성의 존재를 확인하다, 남한산성 발굴



내용

신라의 삼국 통일 후, 당나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옛 땅을 직접 지배하려는 검은 야욕을 드러낸다. 이에 신라 문무왕은 8킬로미터에 이르는 주장성을 쌓고 당에 맞서 내 나라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밝힌다. 이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주장성이었지만 기록으로만 존재하고 그 실체는 밝히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2007년, 남한산성에서 초대형 통일신라 기와가 출토되었고 이 기와는 그동안 베일에 가려 있었던 주장성의 비밀을 풀 열쇠였다


남한산성 방문정보

위치: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일원 (광주, 하남, 성남)
연락처: 남한산성도립공원 031-743-6610
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 031-777-7500
주변 볼거리: 망월사, 장경사
관련 홈페이지: http://www.ggnhss.or.kr/ 
 

동영상 대본정보

신라의 삼국 통일 후, 당나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옛 땅을 직접 지배하려는 검은 야욕을 드러낸다. 신라 문무왕은 8킬로미터에 이르는 주장성을 쌓고 당에 맞서 내 나라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밝힌다. 그 주장성은 어디에 있을까? 기록으로만 존재하던 그 성은 정말 실재하는 것이었을까? 2007년, 남한산성이 그 비밀을 드러냈다.

임진왜란을 겪고난 1624년, 인조는 경기도 광주의 해발 500M 지점에 산성을 쌓는다. 네개의 문과 다섯 개 옹성, 우물만 해도 80개나 되는 거대한 산성- 서울의 남북을 방어할 이 산성의 이름은 남한산성이었다. 한강을 방어하고 수도를 방어하는 천혜의 요새였다.

실제로 병자호란 당시 인조는 이 곳에서 청나라 공격에 맞섰고. 19세기 말에는 의병항쟁의 중심거점으로도 자리했다. 그러나 그것의 결과는 참혹했다. 임금이 기거하던 이백칸이 넘는 행궁이 불타고 만 것이다. 

그 후 행궁에 방치된 건물은 폐허가 되었고, 임시방편으로 이뤄진 개보수로 산성은 점점 훼손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속에 1963년 사적에 이어, 도립공원으로도 지정되지만, 그 또한 유명무실한 상황! 무성하게 자란 잡초와 잡목으로 성벽은 나날이 붕괴되어 갔고 심지어 성벽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 곳도 있었다. 이뿐이 아니었다. 산성 위론 전선들이 거미줄처럼 쳐졌고, 임금이 기거하던 행궁엔 떡 하니 호텔이 들어섰다. 여기에, 하나둘 식당까지 가세하면서 남한산성은 점점 유원지로 전락하고 있었다. 

심광주 INT 
 관리가 너무 계획없이 진행되고 있는 그런 상황들에게 대해 안타까움을 느끼고 일찍부터 많은 사람들이 남한산성을 제대로 정비하고,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관리를 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것에 대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 남사모, 라는 단체가 성립이 된 거죠. 

학자부터 지역시민까지 모여 한 목소리를 낸 가운데 남한산성을 옛 모습대로 복원하자는 계획이 발표된다. 먼저, 안전사고의 위험이 높은 전선들이 철거되고 행궁터를 차지하고 있던 호텔도 사라졌다. 

이참에 제대로 발굴까지 해 보자는 결론이 모아지며- 1998년, 남한산성 발굴작업이 시작된다.
심광주 INT 
 발굴조사를 해야지만, 원래 성 내부의 구조가 어떻게 됐는지. 어떻게 가공이 됐는지 알 수 있고. 그것보다 중요한 건 남한산성이 인조 때 처음 쌓은 성이 아니라 신라 문무왕 때 주장성으로 추정되고 있었는데 그 주장성의 유물을 찾아야지 그걸 역사적으로 밝힐 수 있고. 그것이 발굴에 주된 목적이었습니다. 

주장성은 신라 문무왕이 당나라에 맞서기 위해 한산주에 축성했다는 성이다. 기록으로만 존재하던 그 성의 유력한 후보지로 거론된 곳이 남한산성이었다 결정적 단서는 주장성의 둘레였다. 삼국사기에 나온 주장성의 둘레는 4.360보! 지금으로 환산하면 약 8KM로 놀랍게도 남한산성의 수평둘레와 일치한다.

복원을 위한 기초단계와 더불어 주장성의 흔적을 찾는 것 또한 발굴의 주된 목적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발굴!
 
발굴은 우선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밖에 이중으로 쌓은 옹성부터 시작됐다. 흙길로만 남겨져있던 옹성구간. 그 곳에선 포루와 망루가 드러났다. 

뒤이어, 옹성의 출입시설과 계단, 배수구 등 생각지도 못했던 많은 유구가 나왔고, 이를 바탕으로 옛 모습대로 복원도 시작됐다. 복원을 위한 발굴은 별 무리 없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선시대 화폐인 상평통보와 백제 토기, 조선시대 기와 등 많은 유물이 나왔다.

이젠 초석만 남아있던 행궁터 발굴에 들어갈 차례~! 발굴은 크게 왕의 침전인 상궐지와 집무공간인 하궐지로 나눠 진행됐는데 해를 거듭하며 진행된 발굴은 2004년 4월, 마무리 될 시점에 이르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심광주 INT 
행궁 하궐지 앞마당을 파 내려는데 상상외로 확장. 유구의 성격을 확인하는 것도 그렇지만, 도대체 이게 유구의 면적이 얼마나 되는지.. 발굴양상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이미터가 넘는 벽체 규모라든가 그 다음에 벽체를 판축을 해서 쌓아올린 구조라든가.. 그런 것은 다른 데서는 전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의 양상이었기 때문에 발굴하는 저희도 당혹스러운 것이 많았죠. 

유구 발굴에 걸린 시간만 3년 여~! 4M깊이에서 드러난 발굴지는 세로 53.5M, 가로 18M에 달하는 거대 규모였다. 놀라운 건 크기만이 아니었다. 벽체를 안과 밖으로 성돌을 덧대 2M 두께로 견고하게 쌓은 것인데, 이것이 통일신라 시대의 유구로 밝혀진 것이다. 

고대하던 주장성의 흔적일까. 발굴단은 정밀 발굴에 들어갔다.
 
건물지 주변의 흙을 조심스레 거둬내며 들어가는데, 갑자기- 많은 양의 기와가 켜켜이 쌓인채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더 놀라운 건, 기와 한 장에 64CM, 무게가 20KG나 되는 초대형 기와도 있었다.
국내 어디서도 발굴된 적 없는 초대형기와. 기와는 1300년 전, 통일신라의 것으로 밝혀졌다.

대형기와가 무더기로 발견됐다는 것은 이곳에 무기 등을 보관했던 대형건물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주장성의 근거를 확인시켜주는 결정적 유물이자, 남한산성이 신라의 주장성터에 세운 것임을 확인시켜준 발견이었다. 1300년의 비밀을 간직해 온 기와의 출토.10년의 발굴은 남한산성의 축조시기를 천년이상 앞당기며 끝이 났다.

 발굴과정에서 남한산성은 장구한 역사만큼이나 많은 유물을 쏟아냈는데- 완형으로 나온 기와만 350여개! 게다가 일반 기와보다 다섯 배나 무거운 이 기와를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발굴단은 난관에 봉착했다. 

깨진 기와에 토기 편까지 합치면 무려 3만점! 상황은 심각해졌다. 이 때 또 다시 시민들이 나섰다. 기본적인 교육을 받은 봉사자들이 발굴된 유물의 정리와, 세척 등 단순 작업에 투입된 것이다. 

그러나 실전은 달랐다. 오래된 유물을 만지느라 두드러기가 나고, 손목엔 무리가 가기도 했다. 무엇보다 힘든 건 파편을 붙일 때였다.  잘못하면 완전히 다른 유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맞췄다 뗐다 하기를 수십번이었다.  
신채화 INT 
 예를 들어서 잘못했다 그러면 그걸 또 다시 떼어내는 게 쉬운 작업은 아니에요. 접합에 어떤 물질이 있는데 그게 굳어지면서 접합의 역할을 하게 되는데.. 그걸 칼로 긁어내거나 아세톤이나 물에 담궈서 떼어내는 게 쉽지 않거든요. 잘 안 되니까 두 세 번 하는 것도 있었고요. 그건 수시로 하는 일이었어요. 붙였다 뗐다... 

토기하나 맞추는데 일주일이 넘게 걸리는 건 비일비재했다. 그렇게 남한산성은 발굴조사가 전문가들의 전유물이란 인식을 깨고 발굴현장에 시민참여의 길을 열어준 시발점이 되었다.  
 
신채화 INT 
 국립중앙박물관에 갔었을 때 거기에 계신분들이 하신 말씀이 ‘우린 교과서에 있던 내용을 담당하고 있거든요’. 라고 했을 때, 우린 뭐라고 했냐면, 우린 교과서를 바꿀 수 있는  작업에 참여하고 있거든요. 라고 하는 그런 순간이 아주 짜릿했던 것 같아요.

시민들의 한 목소리로 이끌어낸 남한산성의 복원과 발굴. 처음으로 속내를 드러낸 그 곳은 남한산성이 훨씬 오래전부터 우리 곁에 있었던 것을 알려주며 또 다시 우리의 품으로 돌아왔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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