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joongang.joins.com/article/068/15017068.html?ctg=

둥글고 반듯하고 … 남한산성 돌 모양 왜 다를까
[중앙일보] 입력 2014.06.20 01:27 / 수정 2014.06.20 01:30

통일신라 옥수수알 형태 돌 쌓고 조선시대 큰바위 사이 깬 돌 끼워
1300년 축성 기술 곳곳에 남아 
11번째 세계문화유산 등재 눈앞

남한산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눈앞에 두고 있다.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은 25일까지 카타르 도하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제38차 세계문화유산위원회에서 남한산성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세계유산위원회(WHC)의 자문기구인 이코모스(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는 지난 4월 남한산성에 대해 세계유산 ‘등재 권고’ 판정을 내린 바 있다. 남한산성이 최종 등재되면 한국의 11번째 세계유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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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은 주로 굴욕의 역사현장으로 알려져 있다. 1636년(병자호란) 음력 12월 14일 인조가 남한산성에 들어갔다가 47일 만에 걸어 나와 청나라 태종에게 항복했다.

남한산성은 또 다른 중요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통일신라 때부터 1300여 년간 이어져 온 성 축조기술과 무기발달사가 담겨 있다. 유네스코가 남한산성의 역사적 가치를 높게 평가한 것도 그래서다.

남한산성 성곽(11.76㎞)을 쌓은 돌의 모양과 크기는 일정하지 않다. 성벽 위아래 돌 모양이 다른 곳도 있다. 시대별로 쌓은 돌의 형태가 달라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남한산성은 통일신라 문무왕(672년) 때 쌓기 시작했다. 당시 이름은 ‘주장성’이었다. 이때 쓰인 돌은 옥수수 알갱이처럼 둥그스름하고 황토색을 띤 화강암이다. 크기는 축구공만 하다. 이 같은 형태의 돌은 남한산성 주변에서 보기 힘들다. 역사학자들은 “남한산성 주변에는 편마암이 많지만 이보다 더 단단한 화강암을 포천이나 문경 등지에서 운반해 사용한 것 같다”고 주장한다.

이런 형태의 성벽은 주로 지화문(남문)에서 우익문(서문) 주변에 있다. 둥근 돌이 기초부터 성벽 위 여장(女墻)까지 쌓여 있는 곳도 있다. 여장은 성벽 위에 몸을 숨겨 총이나 활을 쏠 수 있게 만든 시설이다. 여장엔 일정한 간격을 두고 사각형의 구멍이나 ‘ㄷ’ 자가 하늘을 본 형태의 홈이 있다. 모두 조선시대에 만든 것이다. 사각형의 구멍(총 안)은 총포를 쏘기 위해 만든 것으로 가로·세로 25㎝ 크기다. 통일신라 때 것은 조선시대 이전에 훼손돼 흔적이 없다.

좌익문(동문) 쪽 성벽의 돌은 이보다 훨씬 크고 모양은 사각형이다. 거의 편마암을 썼다. 성벽의 기울기는 수직에 가까울 정도로 가파르다. 성벽 두께는 통일신라 때보다 얇아졌다. 이런 모양의 성벽은 인조 때부터 본격적으로 쌓은 것이다.

병자호란 이후 남한산성의 모습은 크게 변했다. 청나라의 포(사거리 4㎞)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자 대대적인 증·개축을 했다. 인조 16년부터 정조 때까지 150여 년간 계속됐다. 5개의 옹성(성문 밖에 이중으로 쌓은 성벽)과 외성(2.71㎞)이 이 시기에 지어졌다. 외성은 바위처럼 큰 돌 사이에 작은 깬 돌을 끼운 형태로 쌓여 있다.

경기도는 남한산성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 트레킹 코스를 개발할 계획이다. 관광객들이 산성과 행궁(임금의 임시거처) 등을 쉽게 체험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하자는 차원이다. 또 성벽 전문 해설가를 고용해 관광객의 이해를 돕기로 했다. 남한산성의 문화재와 역사 관련 공연·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남한산성 박물관 건립도 추진키로 했다.

경기문화재단 노현균 팀장은 “문화유산 훼손을 최소화하면서도 관람객들이 남한산성의 문화적 가치를 쉽게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윤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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