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bit.ly/1qvtr9R

<30>이순신의 리더십 (12) 이익이 있는 곳에 마음도 모인다
공정한 논공행상<論功行賞:공로를 조사하여 상을 줌>으로 부하 장수 전투의욕 고취
2012. 08. 06   00:00 입력 | 2013. 01. 05   08:14 수정
 


정읍 충무공원 내 충렬사.                  
                                                                                              

충무공원 내 정읍현감 이순신조각상.
 

정읍 충무공원 내 이순신 소개 비문.
 
‘손자병법’에 “이익으로 병사들이 전투력을 발휘하도록 유도한다(以利動之).” (作戰篇), “전투 중에 전차 10대 이상을 노획한 병사에게는 포상을 하여야 한다.”(作戰篇)라는 구절이 있다. 왜냐하면 “적에게서 재화를 얻을 경우 반드시 포상을 내린다면 병사들이 모두 욕심이 생겨 열심히 싸울 것”(作戰篇)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사람은 ‘이익을 좋아하는 존재’라는 인간관에 토대한 리더십이다. 사람이 꼭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익을 넘어서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사람의 무한한 이기적 욕망은 불을 너무나 좋아해 자신이 타 죽을지도 모르고 뛰어드는 불나방에 종종 비유되기도 한다.

“전리품, 병사에게 나눠 줄 것” 조정 설득

이순신은 매 해전 노획한 전리품 목록을 상세히 기록해 조정에 보고했으며 사소한 것들은 현장에서 부하 병사들에게 나눠 줬다. 

장계를 확인해 본다. “왜선에 실렸던 왜국의 물건은 모두 찾아내 다섯 칸 창고에 가득히 채우고도 남았으며, 왜선에 실려 있던 물건 중에 우리가 먹을 만한 쌀 300여 석은 여러 전선의 굶주린 격군과 사부들의 양식으로 적당히 나눠 주고, 의복과 목면 등의 물건도 군사들에게 나눠 줘서 적을 무찔러 이익을 얻으려는 마음을 일으키게 할까 하오나, 먼저 조정의 조치를 기다립니다.”(玉浦破倭兵狀) 

이순신은 노획한 전리품을 부하 장병들에게 나눠 줄 경우 적을 무찔러 이익을 얻으려는 마음이 생겨 차후 전투에서 더욱 열심히 싸울 것이라는 논리를 펼쳐, 조정을 설득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순신은 일본군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백성에 대해서도 후사했다. “웅천 사람으로 잡혀갔던 박녹수·김희수가 와서 얼굴을 보이며, 적의 정황에 대해 말해 주었으므로 각각 무명 1필씩을 주어 보냈다.”(을미년, 9월 23일 일기) 

정보는 승리할 수 있는 작전 계획을 세우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다. 이순신은 적에게 잡혔다가 탈출해 온 백성이나 항복한 일본인들로부터 작전에 필요한 매우 중요한 정보를 얻곤 했는데, 정보 제공자에게는 반드시 대가를 지불했다. 그러자 이순신 주변에는 일본군들의 활동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백성들이 줄을 이었다. 

“부산에서 빠져 나온 4명이 <심유경(沈惟敬)이 소서행장(小西行長), 현소(玄蘇) 사택정성(寺澤正成), 소서비(小西飛)와 함께 이달 16일에 새벽 바다를 건너갔다>는 정보를 제공하기에 양식 3말을 주어 보냈다.”(병신년, 1월 19일 일기) 비록 자발적인 방식은 아니지만 백성들은 정보 제공을 통해 나라에도 충성하고 이익도 챙길 수 있는 일거양득의 뿌듯함이 있었을 것이다.

항복한 왜인들 데리고 오면 반드시 포상 

이순신의 진영에는 항복한 왜인들도 많이 있었다. 항복한 왜인들을 데리고 오면 반드시 포상하는 이순신의 리더십이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항복한 왜인 8명과 그들을 인솔해 온 김탁 등 2명이 같이 왔으므로 술을 먹였다. 그리고 김탁 등에게는 각각 무명 1필씩을 주어 보냈다.”(을미년, 11월 26일 일기)

이익을 좋아하는 병사들의 속성을 활용한 대표적인 리더십이 공정한 포상의 시행이다. 포상도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라 전공을 세운 자를 엄선해 그에 상응하는 포상을 시행할 때 그 효과가 배가된다. 

임진년 초기 해전에서 조선 수군은 전투의 와중에도 사살된 일본군의 머리를 베는 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했다. 심지어는 이순신이 지휘하는 전라좌수군과 원균이 지휘하는 경상우수군 사이에 일본군의 머리 베는 일로 다투는 일까지 있었다. 

이순신은 제2차 출동에 앞서 부하 장병들을 모아 놓고 약속했다. 목을 베지 못해도 힘껏 싸운 자를 제1의 공로자로 삼아 포상하겠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장계를 확인해 본다. “당초 약속할 때 비록 목을 베지 못해도 죽기를 각오하고 힘껏 싸운 자를 제1의 공로자로 정한다고 하였으므로 힘껏 싸운 여러 사람은 신(臣)이 직접 등급을 결정해 1등으로 기록하였습니다.”(唐浦破倭兵狀) 

이 장계에 동명이인(同名異人)인 방답 첨사 이순신(李純信)이 1등급에 포함돼 있었는데 증거주의를 채택하고 있던 조정에서는 그의 공을 인정하지 않았다. 열심히 싸웠지만 목을 벤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순신(李舜臣)은 즉시 장계를 조정에 올린다. “방답 첨사 이순신은 변방 수비에 온갖 힘을 다하고 사변이 일어난 뒤에는 더욱 부지런히 힘써 네 번 적을 무찌를 적에 반드시 앞장서서 공격하였으며, 당항포 접전 시에는 왜장을 쏘아 목을 베어 그 공로가 월등할 뿐만 아니라, 다만 사살하는 데만 힘쓰고 목 베는 일에는 힘쓰지 않았으므로 그 연유를 들어 별도로 장계했는데, 이번 포상 문서에 홀로 순신의 이름이 들어 있지 않은 바, 권준 이하 여러 장수는 당상(堂上)으로 승진되었으나, 오직 이순신(李純信)만이 임금의 은혜를 입지 못하였으므로, 이제 조정에서 포상하라는 명령을 내리시기를 엎드려 기다리오니, 사실대로 잘 아뢰어 주소서.”(請鄭運追配李大源祠狀) 

방답 첨사 이순신(李純信)은 목 베는 일보다는 적선을 격파하고 사살하는 데 주력하라는 직속상관 이순신(李舜臣)의 명령을 가장 충실히 수행한 장수였다. 그런 이순신이 포상에서 누락되자 이를 바로잡고자 조정에 장계를 올린 것이다. 최고 리더가 구성원과 한 약속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그것은 상에 대한 믿음뿐만 아니라 지휘권에 막대한 타격을 준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리더는 인간의 이기적 욕망에도 주목

이러한 노력을 통해 이순신은 수사(水使)로서의 권위를 확보했으며, 포상에 대한 믿음을 통해 부하 장수들의 전투의욕을 고취했다. 남아 있는 장계 가운데는 여도 만호 김인영(仁英)의 포상을 청하는 장계, 의병장 성응지(成應祉), 승병장 수인(守仁), 의능(義能) 등의 포상을 청하는 장계가 있다. 이순신의 포상에 대한 공정성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사람은 타자(他者)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만물의 영장이기도 하지만 무한한 이기적 욕구를 지닌 동물류이기도 하다. 따라서 군의 리더들이 상황에 맞는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선 사람을 살신성인(殺身成仁)할 수 있는 위대한 존재로도 보아야 하지만 동시에 무한한 이기적 욕구체라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임원빈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장  전 해사 교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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