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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루부-소노부-절노부-순노부-관노부

5부족은(5부) 부여의 경우와 같이 고구려 형성에 주축이 된 씨족집단이었다. 5부족의 명칭은 소노부(消奴部)·계루부(桂婁部)·절노부(絶奴部)·관노부(灌奴部)·순노부(順奴部)이다. 

처음에는 5부족 중 가장 우세한 소노부에서 왕위를 계승하였으나 6대 태조왕(太祖王) 때부터 계루부의 고씨(高氏)가 왕위를 이었으며, 절노부는 왕실과의 혼인을 통하여 왕비족으로 고정화되었다. 전왕족(前王族)인 소노부, 왕족인 계루부·절노부의 대가(大加)에게는 고추가(古雛加)라는 특별 칭호를 주었는데, 이들의 세력도 막강하였다. 

가. 계루부

내부(內部)·황부(黃部)라는 별칭이 뜻하는 바와 같이 고구려 5부의 중심을 이루었다. 처음에는 소노부(消奴部)에서 왕위를 차지하다가 AD 53년 즉위한 제6대 태조왕(太祖王) 때부터 왕위교체가 이루어졌다. 

태조왕의 왕위계승은, 포악한 군주로 이름난 모본왕(慕本王)이 근신에 의해 살해된 다음 모본왕에 태자가 있었음에도 제쳐두고 방계인 제2대 유리왕의 왕자 재사(再思)의 아들인 7세의 태조왕을 옹립하였다는 점과, 계루부의 초대왕인 그에게 건국의 시조에 해당하는 ‘태조’라는 왕호와 ‘국조(國祖)’라는 별호를 주어, 그로부터 정통왕(正統王)을 이으려 하였다는 점으로 미루어 정치적 역학관계가 작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부터 왕족인 계루부의 대가(大加)들은 고추가(古鄒加)라는 특별 칭호를 가지게 되었고, 고구려 5부의 중추적인 세력이 되었다. 

나. 소노부

부족은 부여의 경우와 같이 고구려 형성에 주축이 된 씨족집단이었다. 5부족의 명칭은 소노부(消奴部)·계루부(桂婁部)·절노부(絶奴部)·관노부(灌奴部)·순노부(順奴部)이다. 

처음에는 5부족 중 가장 우세한 소노부에서 왕위를 계승하였으나 6대 태조왕(太祖王) 때부터 계루부의 고씨(高氏)가 왕위를 이었으며, 절노부는 왕실과의 혼인을 통하여 왕비족으로 고정화되었다. 전왕족(前王族)인 소노부, 왕족인 계루부·절노부의 대가(大加)에게는 고추가(古雛加)라는 특별 칭호를 주었는데, 이들의 세력도 막강하였다. 

고국천왕(故國川王)은 왕위의 형제상속제를 부자(父子)상속제로 바꾸었으며, 5부족제도를 5부의 행정구역으로 개편하였다. 지방 행정구역 역시 5부로 나누어 각 부의 밑에는 여러 성(城)이 딸려 있었다. 각 부의 장을 욕살(褥薩)이라고 하였으며, 성의 장을 처려근지(處閭近支) 또는 도사(道使)라 하였다. 

위지(魏志)에 따르면 소노부는 종묘(宗廟)를 가지고 있고, 따로 영성사직(靈星社稷)을 모시고 있었으며, 197년(산상왕 1) 고국천왕(故國川王)이 죽고 그의 둘째 아들이 산상왕(山上王)으로 즉위하자 산상왕의 형 발기(拔奇)가 불복하고 난(亂)을 일으켰을 때 소노부는 발기편을 돕다가 발기가 패하고 죽자 3만여 구(口)가 고구려 부족연맹에서 이탈하여 공손강(公孫康)에게 신속(臣屬)하였다 

다. 절노부

왕위가 세습되었던 계루부(桂婁部)와 대대로 혼인관계를 맺어 부족장인 적통대인(適通大人)은 고추가(古鄒加)라는 귀족의 칭호를 받아 계루부·소노부(消奴部)와 함께 세력이 강한 부족의 하나였다. 후에 5부가 수도의 행정구역으로 변함에 따라 북부 혹은 후부(後部)로 개칭되었다. 

라. 순노부

《삼국지》등 중국기록에서만 발견되는 순노부는 《삼국사기》에 보이는 환나부(桓那部)와 동일한 실체로 파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환나부 출신의 인물들이 1세기 무렵인 태조 때부터 패자(沛者)·우태(于台) 등 높은 관계(官階)를 수여받고 활발하게 활동한 사실로 미루어볼 때, 이 무렵에 이미 고구려 5부의 하나로 편입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환나부는 다른 부와 마찬가지로 계루부(桂婁部) 왕권의 통제를 받으면서도 대내적인 자치권을 행사하였다.

그러나 3세기 중엽 이후 중앙집권적인 국가체제를 정비하면서 5부의 명칭도 방위명(方位名)으로 개칭되면서 그 성격도 왕도(王都)의 행정구역으로 변질되었는데, 이때 순노부는 동부(東部)로 변경되었다.

순노부는 이 밖에도 좌부(左部)·상부(上部)·청부(靑部)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한편《한원(翰苑)》에 인용된《위략(魏略)》에는 내부(內部:계루부)가 비록 왕족이지만 그 서열은 동부, 즉 순노부의 아래라 하였는데, 그 까닭은 나라에서 동쪽을 으뜸으로 섬기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종래에는 이것을 순노부가 국가적 제의(祭儀) 행사에서 특별한 위치에 있었던 사실과 연관시켜 해석하기도 하였다.

마. 관노부

관노부는 알려진 기록이 극히 드문데 고구려는 원래 5부족이 연합하여 이루어진 나라로, 소노부(消奴部)·절노부(絶奴部)·관노부·계루부(桂婁部)·순노부(順奴部)가 있었다. 이 중 소노부와 계루부가 가장 세력이 강하였고, 관노부는 세력이 가장 약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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