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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명을 일으킨 고구려의 여걸 ´부여태후´ - 김용만" 에서 모본왕 부분만 가져왔습니다.

모본왕
2013/07/18 06:03

호동왕자를 죽음으로 이끈 대무신왕의 첫째 부인은 호동왕자가 죽은 그해에 자신의 아들 해우를 태자로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대무신왕이 일찍 죽는 바람에 어린 해우는 곧장 왕위에 오르지 못하였고, 대신 대무신왕의 아우인 해색주가 왕위에 올라 민중왕이 되었다. 그러나 해색주도 5년을 채우지 못하고 죽자 마침내 해우가 왕위에 올라 모본왕이 되었다. 그가 왕위에 오른 것은 강력한 세력을 가진 외가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권력기반이 강하고 독한 어머니에 의해 키워졌고, 어린 나이에 억지로 태자가 되었던 탓인지 모본왕은 성격이 포악하고 인자하지 못했다.

왕은 사람을 깔고 앉고, 누울 때도 사람을 베개로 베었는데 사람이 움직이기만 하면 즉시 죽였다. 신하들이 그러하지 말라고 간청하면 용서하지 않고 직접 활을 당겨 신하를 쏘아 죽였다. 백성들과 신하들은 잔인한 왕을 몹시 싫어했다. 고구려 내에서는 모본왕에 반대하는 무리들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모본왕의 잔혹한 행위는 점점 심해졌다. 언제 누가 죽을지 몰라 왕을 모시던 신하들은 늘 두려워했다. 두로란 자도 왕을 모시던 자의 한 사람으로 늘 왕에게 죽임을 당할까 걱정이 많았다. 두로는 모본왕이 죽으면 왕의 무덤에 함께 묻혀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있었다. 두로는 자신의 운명을 비관하며 통곡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사람이 두로를 불렀다.
 
“사내 대장부가 왜 우느냐, 옛 말씀에 임금이라도 나를 학대하면 원수라고 했다. 지금 왕이 포악하여 사람을 죽이고 있으니 백성들의 원수다. 원수라면 죽여도 되지 않겠느냐. 그대가 모본왕을 죽인다면, 나와 내 무리들이 너를 보호해 줄 것이다. 앉아서 왕에게 죽임을 당할 것인지, 아니면 네가 살 것인지 잘 생각해 보아라. 우리를 믿고 일을 할 수 있겠느냐?”

두로는 자신을 살게 해주겠다는 제의를 받자 마음을 다시 먹었다. 왕을 죽이기로 결심한 그는 몰래 칼을 숨겨 들고 왕 앞에 나아갔다. 모본왕은 모두들 자신을 두려워하고 있으므로, 두로가 왔을 때 아무런 경계를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두로는 거리낌없이 칼을 빼내어 왕을 죽여 버렸다.

(중략)

부여태후는 자신의 힘으로 아들을 왕으로 삼고, 스스로 왕의 권력을 가진 우리 역사상 보기 드문 여걸이라고 할 수 있다.

두로에게 모본왕을 죽이라고 지시한 사람은 부여태후의 무리임에 분명하다.

모본왕은 포악한 왕으로 알려졌지만, 그것은 혁명을 일으킨 사람들에 의해 왜곡된 모습일 수 있다. 언제나 역사는 승자에 의해 기록되는 것이고 패자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모본왕은 흉년이 들자 사람을 보내어 굶주린 사람들을 구제한 임금이었다. 게다가 서기 49년에는 장수를 보내어 후한의 우북평, 어양, 상곡, 태원을 기습하여 후한을 놀라게 했다. 지금의 북경지역인 우북평과 그 주변의 어양, 상곡을 지나 산서성의 태원에 이르는 대원정은 고구려 기마대라면 능히 행할 수 있는 작전이지만, 이처럼 신속하게 적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것은 모본왕의 대담한 결정 때문이었다. 후한은 재물을 바쳐 고구려에 화친을 요구하였고, 고구려는 이 기습작전의 효과로 막대한 재물을 얻는 성과를 올렸다. 그리고 그것은 후한으로 하여금 고구려를 두려워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업적을 가진 모본왕이었지만, 국내에 존재하는 반대세력의 기습에는 당할 수 없었다. 부여태후는 고구려 5부 가운데 한 부의 우두머리였다. 그녀는 남편의 도움 없이 스스로 권력을 잡은 것이었다.

(후략)

‘인물로 보는 고구려사’(김용만, 도서출판 창해)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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