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fz623.com/shownews.asp?id=11744 

력사의 강, 두만강을 말한다(19) - 고구려시기 녀성파워의 이모저모
5. 당찬 시골 처녀-고구려 동천왕의 생모
김관웅  2012-9-6 9:20:23 

《삼국사기》에는 산상왕과 주통촌(酒桶村)의 시골처녀 후녀(后女)와의 기이한 로맨스가 기록되여있다.[9]
 
산상왕은 왕위에 오르기전까지 자식이 없었고 이미 언급했지만 우씨왕후는 고국천왕과도 아이를 낳지 못한 석녀(石女)였다. 그렇지만 산상왕은 자신을 왕위에 오르게 만든 우씨왕후 이외의 다른 녀인을 둘째부인으로 삼기 어려웠고 후궁도 들여앉히기 어려웠다. 산상왕은 산천에 기도하면서 아이를 낳게 해달라고 정성을 다해 빌었다.
 
그러자 3월 보름날 꿈에 천신이 나타나 계시를 내렸다.
“내가 너의 근심을 덜어줄것이다. 너의 둘째부인을 통해 아들을 낳게 할것이니 근심하지 말아라.”
 
산상왕은 꿈에서 깨여나 여러 신하들에게 말했다.
“내가 왕위를 계승할 아이가 없어서 매일 천신께 기도하였더니 지난 보름날 꿈에 나타나 나의 둘째부인에게서 아이를 낳게 해주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나는 아직 둘째부인이 없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으냐?”
 
신하들은 왕의 뜻을 알고있었으나 함부로 말할수가 없었다. 신하들은 우씨왕후를 두려워했던것이다. 잘못 서두르다가는 우씨왕후의 보복으로 목숨마저도 위태롭기때문이였다.
 
그뒤로 5년이 지나도록 산상왕은 자식을 얻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나라에서 천신을 위해 제사 지낼 때 희생으로 쓰는 돼지가 우리를 탈출해 도망쳤다. 제사를 관장하던 관리들이 말을 타고 뒤쫓아갔지만 그 돼지를 잡기란 쉽지 않았다. 관리들이 돼지를 쫓아서 주통촌에 도착하였을 때였다. 관리들은 이리저리 달아다니는 돼지를 정작 가까이 다가가 붙잡자고 하면 길길이 날뛰여 속수무책이였는데 이 시골마을의 20세쯤 된 어예쁜 처녀가 웃으면서 나타나더니 돼지를 손쉽게 제압하여 잡았다. 헐레벌떡 쫓아다니던 관리들은 그 시골처녀의 덕분에 비로소 돼지를 손에 넣었다.
 
고구려에는 제사에 쓸 돼지가 도망친 일이 여러 차례 있었다. 그중에서도 제2대왕 류리왕때 도망간 돼지가 고구려의 도읍을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옮기게 했다. 그런데 이번에 도망간 돼지도 일을 만들고말았다. 관리들이 돌아와 산상왕에게 이 사실을 아뢰였다.
“대왕마마, 저희들이 놓쳤던 돼지를 잡기 위해 그토록 애를 썼지만 막상 돼지를 잡은 사람은 주통촌에 사는 스무살쯤 되는 어여쁜 시골처녀였사옵니다. 그 시골처녀는 참으로 당차고 아름답고 신비했사옵니다.”
 
산상왕은 어떤 처녀이기에 헌헌장부들도 잡지 못하고 쩔쩔매던 돼지를 잡을수 있었을가 궁금해했다. 그리하여 산상왕은 하루 그 시골처녀를 만나려고 변복을 하고 남모르게 시종 하나만 데리고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 우씨왕후에게 들키지 않기 위함이였다.
 
주통촌의 그 시골처녀는 이런 날을 예견하고있었다. 그녀의 어머니가 임신했을 때 그 마을의 점을 치는 사람이 말하기를 반드시 왕후를 낳을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녀의 어머니는 딸을 낳자 “후녀(后女)”, 즉 왕후가 될 녀자라고 이름지었다.
 
산상왕이 자기를 만나러 온것을 안 후녀는 감히 거역하지 못하였다. 왕은 방에 들어가 그녀를 보았다. 왕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하루밤을 보내려고 하였다. 그러자 후녀는 산상왕에게 아뢰였다.
“대왕의 명을 감히 거역할수 없습니다. 하지만 만일 관계를 맺어서 아이가 생기게 되거든 부디 저와 아이를 저버리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약속을 해주십시오.”
 
아무리 대왕이라도 쉽게 몸을 허락할수 없다는 후녀의 당찬 말을 들은 산산왕은 흔쾌히 응낙하였다. 왕은 자정이 넘어서야 궁궐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넉달이 지난후 우씨왕후는 산상왕이 자기를 속이고 후녀와 몰래 만난 사실을 알게 되였다. 우씨왕후는 왕이 자기를 속이고  다른 녀자와 만난것을 참을수 없었다. 우씨왕후는 몰래 군사들을 시켜서 후녀를 깜쪽같이 죽여 없애려고 하였다.
 
후녀는 우씨왕후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남장을 하고 도망쳤다. 그러나 결국 군사들에게 들켜버리고말았다. 군사들이 후녀를 죽이려고 포위했다. 그러자 후녀는 당당하게 말했다. 
“너희가 지금 나를 죽이려는것은 대왕의 명령이냐, 아니면왕후의 명령이냐? 지금 내 배속에는 아이가 들어있으니 이는 대왕께서 남기신 혈육이다. 내 몸을 죽이는것은 허락하지만, 왕자까지 죽일 셈이냐?”
 
후녀의 단호한 말에 군사들은 감히 손을 쓸수 없었다. 황차 배속에 산상왕의 아들이 들어있다는 말에 군사들은 겁이 더럭 났던것이다. 군사들은 별수없이 돌아와 후녀가 하던 말을 우씨왕후에게 이실직고했다. 우씨왕후는 부아통이 터졌으나 아이까지 임신한 그녀를 다시 가서 죽이라고 강요할수는 없었다.
 
산상왕은 우씨왕후가 후녀를 죽이려고 했으나 죽이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더는 방임할수 없었다. 산상왕은 후녀의 집을 찾아가서 따져물었다.
“네가 지금 아이를 가졌다고 하는데 누구의 아이냐?”
“제가 평생에 저의 오라버니들과도 같이 앉아본적 없거늘 하물며 다른 남자와 무슨 일이라도 있었겠습니까? 지금 저의 배속에서 꼼지락거리고있는 이 아이는 틀림없는 대왕님의 혈육입니다.”
 
산상왕은 이처럼 당찬 후녀의 말을 믿지 않을수 없었다. 더구나 왕위를 계승할 아이가 없는 상황이라 우씨왕후도 후녀를 왕궁으로 맞아들이는것을 허락할수 밖에 없었다.
 
궁궐에 들어온 후녀는 마침내 생남을 했다. 산상왕은 천신이 자기에게 약속했던 사내아이를 얻은것이라고 크게 기뻐했다. 왕은 제사에 쓸 돼지로 인해 후녀와 만나 아이를 얻었으므로 아이의 이름을 제사에 쓸 돼지라는 뜻을 가진 교체(郊彘)라 하고 후녀를 소후(小后), 즉 작은 왕후라고 부르게 했다.
 
산상왕은 뒤늦게 아들을 얻었으므로 교체가 다섯살이 되자 태자로 삼아 왕위를 잇도록 가르쳤다. 그리고 산상왕이 죽자 227년, 교체가 열아홉살의 나이로 고구려의 제11대왕이 되니 그가 곧 동천왕(东川王, 209―248)이다. 
 
동천왕시대의 고구려는 복잡한 대외관계에 직면하게 되였는데, 이를테면 위(魏)나라의 장군 관구검(毌丘俭)이 이끄는 군사들과의 싸움에서 대패하여 수도인 환도성을 빼앗기고 동옥저로 퇴각했으나 위나라의 군사가 동옥저까지 추격해와서 많은 읍락들을 함락하고 3천여 수급을 베니 동천왕은 두만강류역의 북옥저로 도주하여 피난하였다.[10] 하기에 돼지와 깊은 인연이 있는 이 고구려의 제11대왕 동천왕은 두만강류역에 발자취를 남기기도 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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