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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정치
 
위만조선의 관명(官名)으로는 박사(博士)·대부(大夫)·상(相)·대신(大臣)·장군(將軍)·비왕(裨王) 등이 보인다. 이들 관직 모두의 구체적인 성격은 분명하지 않다.

그런데 이러한 관직을 갖고 있으면서 독자적인 세력 기반을 지닌 자들이 있었다. 한나라에 대한 외교 정책에서 왕과 의견이 맞지 않자 휘하의 2천 호를 이끌고 한반도 남부지역으로 이탈해 간 조선상(朝鮮相) 역계경(歷谿卿) 같은 이가 그런 예이다. 한나라와 전쟁 중 전선을 이탈하여 수도가 함락되는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이계상(尼谿相) 삼(參) 등 세 명의 ‘상(相)’도 그러한 이들로 추측되는데, 상은 일정한 세력 집단의 대표로서 중앙정부에 참여한 이들이 지닌 관직의 이름으로 여겨진다. 당시 위만조선에는 여러 명의 상이 있었는데, 이름으로 보아 다수가 고조선 인이었다. 상의 휘하에 있던 집단에 대해선 왕실의 통제력이 어느 정도 미쳤겠지만, 적어도 각 집단 내부의 일은 자치적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역계경 등의 집단적인 이탈행위가 가능했다는 점이 바로 이를 말해준다.

왕도 기본적으로는 그러한 집단들 중에서 가장 큰 집단의 장이었고, 위만조선 왕실의 경우 중국계 유이민 집단이 그 직할 집단이었던 것이다. 국가의 주요 결정은 이들 상들이 참가한 회의체에서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 자연 왕권은 강력하지 못하였고, 중국식 제도에서 비롯된 관직명이 부분적으로 보이지만 관료 조직은 발달하지 않았으며, 정치 조직의 기본적인 틀은 자치집단들의 연맹체와 같은 것이었다.

유력한 수장 휘하에서는 촌락이 여러 개 귀속되어 있었다. 단 수장이 사적으로 지닌 우월한 경제적·군사적 힘이 이들 촌락을 규합하는 데 일정한 작용을 하였다는 점에서, 수장은 이미 지배계급으로서의 위치를 확보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들 유력한 수장들을 통합하여 성립한 것이 위만조선이며, 위만조선의 왕권하에서 수장들은 ‘상’으로 상당한 자치권을 지닌 세력 집단을 대표하였다. 고조선의 중심을 이룬 이들 집단의 외곽에는 피복속 촌락 공동체들이 존재하였다. 이러한 구조는 삼국 초기의 정치 구조와 연관성을 지닌다.

단군왕검

단군왕검은 고조선 사회의 제주이자 군장으로, 단군은 대제사장적인 성격을 많이 담고 있으며 왕검은 국가를 통치하는 대군주의 의미를 띠고 있다고 해석한다.[9] 즉 제정일치의 지도자이다.[10] 방언의 분포와 비교언어학적으로 살펴볼 때에도 제사장과 정치적 지도자를 함께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11]

단군 신화

단군 신화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내용이 가장 오래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서도 《단군고기》가 인용되었다. 《삼국유사》의 설명은 《고기(古記)》에 기록된 단군의 건국과 전해 내려오는 내용을 근거로 하고 있으나, 《고기》의 원본은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단군신화의 내용은, 환인의 서자인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거하였으며, 그 아들인 단군이 요임금과 같은 시기에 나라를 세웠다는 것이다.

이는 왕권의 정통성과 국가의 존엄성을 수식하려는 당시 사람들의 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고조선의 왕은 매년 그의 조상신인 천신께 제사를 지냈을 것이다. 그때 베풀어진 의식은 단군 신화의 내용을 재현하는 형태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 제의에 고조선을 구성하던 모든 집단의 장들이 참여해 정치적 통합을 강화하고 결속력을 높였을 것이다. 곧 단군 신화는 고조선 당대의 정치이데올로기였고, 그 제의는 정치적 집회의 기능을 지닌 것이었다.[출처 필요]

참성단

참성단(塹星壇)은 오늘날 인천광역시 강화군 마니산 꼭대기에 있으며, 상고시대 단군이 쌓았다고 알려진 제단이다. 마니산에 참성단을 쌓아 하늘에 제사를 지내게 된 것은 강화의 생김새가 천하의 요새이기 때문이며, 예로부터 마이(摩利)·혈구(穴口) 등은 하늘과 인연이 깊다고 전해온다. 또 개국신화의 등장인물인 우사(雨師)와 운사(雲師)도 마니산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전해지는데, 이들은 환웅의 권속이므로 단군이 참성단을 설치하여 하늘에 제사지낸 뜻을 짐작케 한다.


주석
 
[9] 이병도, 《한국사대관》, 1983년, 20쪽.
[10] 이병도, 〈고조선 연구〉, 1975년.
[11] 정호완, 〈단군왕검의 형태론적 풀이〉, 《한글》 제219호, 한글학회, 1993년 3월, 5쪽 ~ 32쪽.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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