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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억기[李億祺,1561~1597]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경흥·온성부사를 역임하면서 북방의 경비에 만전을 기했고 임진왜란 때 당항포·옥포 등지에서 크게 승리했다. 이순신이 원균의 참소로 하옥되자 무죄를 변론했고 칠천량 싸움에서 전사했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경수(景受)이다. 아버지는 심주군(沁洲君) 연손(連孫)이다. 어려서부터 무예에 뛰어나고 용맹하여 17세에 사복시내승(司僕寺內乘)이 되고 그 후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역임하였다. 21세 때 경흥부사(慶興府使)를 역임하였는데 이는 당시에도 파격적인 인사였다. 북방의 여진족이 두만강을 건너 남하하자 전투가 벌어졌고 이들을 물리쳐 공을 세웠다. 26세 때 온성부사(穩城府使)로 임명되었다. 1587년 여진족이 경흥 부근으로 침입하여 큰 피해를 입게되자 당시 경흥부사였던 이경록과 조산만호 이순신이 체포되자 이억기는 이들을 변호하였으며 이때 이순신과 인연을 맺기시작하였다.

1591년(선조 24) 32세 때 순천부사를 거쳐 전라우도수군절도사(全羅右道水軍節度使)가 되었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李舜臣)과 협력하여 당항포·옥포해전에 출정하여 크게 승리하였다. 이순신이 원균(元均)의 참소로 하옥(下獄)되자 이항복(李恒福)·김명원(金明元) 등과 함께 무죄를 변론하였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원균 휘하의 좌익군(左翼軍)을 지휘하여 용전하다가 칠천량(漆川梁) 싸움에서 원균과 함께 전사하였다. 전투에 패하게 되자 패전한 장수로서 바다에 투신 자결을 선택하였다. 선무공신(宣武功臣) 2등에 완흥군(完興君)으로 추봉되고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여수 충민사(忠愍祠)에 이순신과 함께 배향되었다. 시호는 의민(毅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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