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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수도 심양, 동북지역 경제.문화.교통 중심지로 뜬다
역사의 숨결어린 요동- 고구려 유적 답사기행<26>
중부일보 2010.07.19  남도일보  2012.06.14 00:00

심양고궁의 대정전과 십왕정


금산성 소재지 심양은 요령성 성도로서 중국에서 북경, 상해, 천진, 중경 4개 직할시를 제외하고 규모가 큰 특대도시(特大城市) 가운데 하나다. 이 도시는 동북 전 지역(만주)의 경제, 문화, 교통, 금융, 상업, 무역과 비즈니스의 중심지이고 전국의 중요한 공업기지와 역사문화로 이름난 도시이기도 하다. 산하 9개 구, 1개 시, 3개 현을 관할하고 총면적은 1.3만k㎡, 인구는 760여만 명이다.

옛날 중국에서는 물줄기의 북쪽을 양(陽)이라 하고, 남쪽을 음(陰)이라고 했다. 심양을 그렇게 부르게 된 것은 이 고장이 요하강의 지류인 혼하(渾河), 옛날 심수(瀋水)의 북쪽이기 때문이라고 문헌은 전한다. 이 지역은 요하강 유역의 조기(早期)문화를 낳아 기른 중화민족의 발상지다. 현재 심양시내에 있는 신락유적지(新樂遺跡址)의 발굴과 고증에 의하면 7200년 전 신석기시대에 벌써 현지인이 대를 이으며 살아갔다 한다. 서한(西漢)시기, 즉 기원전 229년 이곳에 후성(侯城)을 세운 뒤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심양의 역사는 2300년이 가까워진다. 여기에 한(漢)나라 때는 또 현도군, 고현(高顯), 망평(望平) 등 군(郡)을 설치했고, 요나라·금나라에 이르러 심주(瀋州)를 설치하였으며, 원나라 때에 심양로(瀋陽路)로 개칭하고, 명나라 때에는 심양위(瀋陽衛)를 설치하였다. 심양은 ‘일개 왕조(王朝)의 발상지고 두 임금의 도읍지’라고도 한다. 명조 말기 1625년, 누루하치(努爾哈赤)가 후금(後金) 정권을 세우고 심양으로 도읍지를 옮겨 성경(盛京)이라 했고, 1636년에 그의 아들 황태극(皇太極)이 여기서 국호(國號)를 대청(大淸)이라 개칭하고 청나라를 세웠다. 1644년, 청나라군이 산해관을 넘어 북경을 수도로 한 후, 성경을 제2의 수도로 불렀다. 청나라 말기에는 성경에 봉천부(奉天府)를 설치하고, 민국 18년(1928년)에 이르러 심양시가 섰다. 1931년에 봉천시로 개명했다가 1945년에 다시 심양시로 민국 이름이 되돌아왔다.

심양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초기에 장비제조업을 주력업종으로 한 전국의 중공업기지로서 휘황찬란한 성과를 이루어 나라의 완전한 민족공업체계를 형성하고 국가의 경제력과 국방력을 향상시키는 데 커다란 공훈을 세웠다. 이후 발전을 거듭해 심양의 공업부류는 150가지 이상이고, 규모가 일정 기준을 넘어선 공업기업만 3천개가 훨씬 넘는다. 자동차, 디지털제어기, 광산용 중장비, 환경보호설비, 비행기제조, 로봇, 생물기술제약, 야금, 방직, 가구, 경공업, 농업기계제조, 농산물심도가공, 전자아이티제품, 소프트웨어개발 등 산업을 위주로 하는 기업들이 기계·설비·자금·종목 등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짜 맞추어 시스템을 형성하는 등 비교적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또 거듭되는 심양의 도시건설과 경제사회 발전으로 ‘국가의 환경보호 모범도시’, ‘국가의 산림도시’, ‘국내에서 경쟁력이 가장 강한 10대 도시’ 안에 들어서게 되었다.
 
심양은 또한 국내 중요한 교통요충지다. 동북에서 제일 큰 공항과 철도 코드장이 있고 심양~대련, 심양~하얼빈, 심양~산해관, 진황도~심양, 심양~단동, 심양~길림, 심양~무순 간 철도간선의 교차점이다. 철도의 밀도가 전국에서 가장 높다. 또 세 갈래 순환도로와 여섯 갈래 방사형 최고등급의 고속도로와 밀집한 도로망이 있고 전 세계 유명한 항구와 통항하고 있는 대련·영구·금주항과 모두 400km 거리 안에 있다. 심양은 이런 뛰어난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주변지역은 물론 국내 타 지역, 심지어 국제적으로도 흡인력과 방사력을 지니고 있기에 도시의 개방식 발전구도를 형성하는 데 토대를 닦아 놓았다. 현재 동북노공업기지를 부흥시키고 심양 대경제권을 건설하는 국가의 전략과 정책에 힘입어 심양시에서는 전국의 장비제조, 동북지역의 상업무역물류와 금융의 ‘3대 중심’ 건설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아울러 심양을 중심으로 주변에 전국에서 유명한 강철도시 안산, 석탄도시 무순, 석탄과 강철도시 본계, 석탄과 전력도시 부신, 석유도시 반금, 경공업과 방직도시 단동, 화학섬유도시 요양과 알곡생산기지 철령을 포함한 총 인구가 무려 2천400만 달하는 요령중부 도시와 경제구, 즉 심양대경제구 건설사업이 한창이다. 심양시에서는 도시발전공간과 구역을 넓혀 산업 프로젝트 건설과 함께 주택아파트단지, 도시기반시설, 주민복지시설 등 건설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해 금랑(金廊)구역, 장강가(長江街), 동중가(東中街), 건설대로(建設大路) 등 시가지와 혼남(渾南)개발구, 심북신구(瀋北新區) 등 여러 지역에 고층건물들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도시의 모습이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다.

동북에서 제일 큰 도시 심양


소릉(昭陵) 조감 사진


조선족과 한국인들이 모여살고 또 많이 드나드는 서탑거리가 바로 그렇다. 이 거리는 조선 말기부터 일제 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조선인들이 가난과 일제의 학정을 피해 심양으로 이주하여 지금까지 정착하여 살고 있다. 1950년대부터 이곳에 사는 조선족이 늘어났는데, 특히 1978년 이후 동북의 기타지역 조선족들이 심양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여 서탑지역은 조선족들의 문화, 교육, 상업, 예술의 중심으로 발돋움하였다. 이곳에는 전국에서 제일 먼저 설립한 조선족문화예술관이 있는가 하면 조선족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가 있고 조선족백화점, 서점 및 조선족이 경영하는 호텔과 음식점 등이 있었다. 한·중 두 나라가 수교한 후 한국인이 서탑거리에 투자하기 시작했는데 경회루, 백제원 등 큰 식당을 꾸렸는가 하면 보석욕, 사우나 등 오락 휴식장소를 많이 운영하고 있다. 정말로 민족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밤이 되면 이런 네온사인 간판들이 현란하게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서탑거리의 변화는 심양 도시변화의 축소판이다.

심양은 전국에서 역사문화로도 유명한 도시이자 우수한 관광도시로 인정받고 있다. 비교적 이름이 난 인문경관, 자연경관 등 사회 관광자원만 무려 200여 곳이나 된다. 명승고적은 고궁(故宮), 소릉(昭陵), 동릉(東陵), 신락유적지(新樂遺址)박물관, 정가와자청동단검대묘(鄭家窪子靑銅短劍大墓), 엽무대 요나라묘(葉茂臺遼墓), 영안석교(永安石橋) 등이 있다. 심양 고궁은 북경고궁을 제쳐놓고 중국에 하나밖에 없는 왕궁건축물로 역사와 예술적 가치가 높다. 청 태조 누루하치와 청 태종 황태극이 사용하던 이 궁전은 부지면적 6만7천㎡, 규모만 72만㎡로 북경의 자금성보다는 작지만 100개의 전각에 500여 실이 있는데 모두 완벽하게 보존되고 있다. 그런데 자금성보다 발길을 끄는 곳이 있다. 이 궁전의 건축예술은 중국 고대의 건축전통을 이어받고 한족, 만주족, 몽골족 여러 민족의 건축예술을 한 데 융합하였으므로 역사적 가치가 높다. 특히 이 궁전은 숭정전(崇政殿)을 중심으로 대청문(大淸門), 청녕궁(淸寧宮)에 이르기까지 고궁을 동켠, 중간, 서켠 3구역으로 갈라놓았다. 중간구역은 고궁의 주요부분인데 황태극이 국정을 돌보던 숭정전을 중심으로 주변에 비룡각(飛龍閣), 상봉각(翔鳳閣), 사선재(師善齎), 협중재(協中齎), 일화루(日華樓)를 배치하고 뒤에다 봉황루(鳳凰樓)와 청녕궁, 그리고 임금의 비와 빈들이 거처하는 동서 궁궐과 개지궁(介祉宮), 경전각(敬典閣), 적광전(迪光殿) 등 전각들을 설치하였다. 동쪽 구역은 대정전을 중심으로 좌우 양쪽에 익왕정과 팔기정을 세워놓았다. 이것은 청나라가 산해관으로 들어가기 전에 시행한 팔기제도(八旗制度)를 상징하는 것이다. 청나라 팔기제도는 여진족의 사냥제도를 모태로 한 것인데 청태종 역시 팔기 총수 중의 일원이었다고 한다.

지금 ‘인생사례(人生四禮)’-한국민속문화전시이벤트가 심양 고궁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사도세자가 수원화성을 행차할 때의 모습을 보여주는 국보 ‘화성임행도(華城臨幸圖)’의 모사도(臨摹圖) 병풍도 전시되어 있다.

복릉과 소릉은 명성이 높은 ‘산해관 밖의 세 개 왕릉’ 중 두 왕릉이다. 복릉은 청 태조 누루하치와 효자고황후(孝慈高皇後)의 능묘고, 소릉은 청 태종 황태극과 효서문황후(孝瑞文皇後)의 능묘다. 고궁과 소릉은 모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종교건축물도 심양시 인문경관을 이루고 있다. 시내에 있는 남관천주교 교회당(南關天主敎堂), 이슬람교 청진사(淸眞寺), 불교의 자은사(慈恩寺), 라마교의 실승사(實勝寺), 도교의 태청궁과 청나라 초기의 네 개 탑 등이 그러한 것이다.

장광섭/중국문화전문기자  윤재윤/요령조선문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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