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bit.ly/1AfSD8I

견훤은 과연 반신라적인 인물인가?
최승우 2001.09.11.19:02

흔히 궁예와 견훤은 반신라적인 행동을 하였고 왕건은 친신라적인 행동을 하였기에 왕건은 삼한을 통일 할 수 있었고 견훤과 궁예는 멸망하게 된것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결론부터 말해서 견훤은 궁예와는 달리 반신라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인물이었다.궁예는 신라의 수도 경주를 멸도(滅都)라고 부르고 신라에서 항복한 자들을 모두 죽였다는 기록이 있어 궁예를 반신라적인 인물로 보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하지만 견훤은 궁예와는 달리 반신라적인 인물이 아니었다.오히려 친신라적인 인물에 가까웠다.그렇다면 견훤이 반신라적인 인물이었다는 종래에 견해는 무엇때문에 생긴것일까? 
 
견훤이 반신라적인 인물이었다는 견해를 뒤받침해주는 가장 큰 자료는 견훤이 경주에 침공하여 경애왕을 죽이고 비빈을 겁탈했다는 기록이다.그런데 여기서 견훤의 경주침공에 대해 몇가지 의문이 생긴다. 
 
첫째,견훤은 경주를 함락시키고 왜 신라를 병합치 않았는가? 
 
둘째,견훤이 왕으로 세운 경순왕은 왜 아무런 저항없이(특히 정통성문제에 관해) 끝까지 신라의 마지막왕으로 그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셋째,경애왕은 왜 포석정에서 연회 도중 습격을 받아 죽었는가? 

견훤은 신라침공 후 신라를 병합치 않고 김부를 경순왕으로 내세운 후 회군하여 버렸다.이것은 견훤의 경주침공이 신라병합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왕의 교체를 목적으로 한듯한 행동이었다.이것에 대해 우선 경주침공당시(927년)에 신라내부의 상황에 대한 것을 먼저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신라는 신덕왕에 이르러 김씨가 아닌 박씨가 왕이 되는 큰 변화를 겪게 된다.이는 신라내부의 큰 혼란을 가져오게 되고 이로 인해 신라정부는 김씨세력과 박씨세력으로 분열되게 된다.이를 뒷받침해주는 기사로 박씨왕대에 잦은 천재지변에 관한 기사라든가,제사를 자주지냈다는 기록이라든가 영묘사에 까치집과 까마귀집이 각각 34집 40집이 었다는 기록이(이 기록은 영묘사가 왕실과 깊은 관계를 맥고 있는 절임을 감안할 때 왕실내에 분열을 암시하는 기사로 여겨진다.) 있는데 이는 박씨왕의 집권으로 신라내부가 분열을 겪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신라정부의 분열이 심화되면서 급기야는 김씨세력중 강경파가 후백제와 손을 잡게 되는 사태까지 생기게 된다.이것을 뒷받침해주는것 중 하나가 세번째 의문인 경애왕이 포석정에서 연회를 베풀다 죽은 것이다.경애왕이 아무리 망국기에 왕이었다지만 적군에 군대가 경주지역 근처까지 점령했는데도 불구하고 연회를 베풀며 놀다 죽인것은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다.경주침공직전에 후백제군이 경주근처인 고울부를 점령하였는데 이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연회를 베풀다가 죽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물론 고려에 원병을 청했다고는 하지만 그것만 믿고 안심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은 신라정권내부에서 후백제를 도와주지 않았다면 있기 힘든일이다. 
 
그리고 두번째 의문인 견훤이 경애왕을 죽인후 많은 왕위계승권자중(대부분 박씨)에 김씨인 김부를 경순왕으로 세웠고 견훤에 의해 추대된 경순왕이 그후 아무런 반대도 겪지않고 신라왕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김씨세력이 후백제와 결탁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다시말해 견훤이 경주를 침공한건 친고려적인 성향을 가진 신라귀족파(주로 박씨왕들과 관련된 세력)제거하고 친후백제파 귀족들을 옹립하기위한 행동이었던 것이다.이것은 신라가 고창전투나 운주성전투로 고려가 크게 우세하였을 때도 항복하지 않다가 견훤이 고려에 항복하자마자 고려에 투항한 것을 보아 경순왕이 이끄는 신라정부가 친후백제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견훤이 비빈들을 겁탈했다는 기록이 문제가 되는데 이것은 조작된 기사일 확률이 높다. 
 
견훤의 신라정부에 대한 인식은 최승우가 지었다는 후백제의 외교문서 "대견훤기고려왕서"에 잘 나타나 있는데 그곳에는 견훤과 왕건이 모두 신라에 대해 존왕(尊王)의 의(義)를 내세우며 서로에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이것을 보면 견훤의 신라인식태도가 왕건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를 보았을 때 견훤이 경주침공 후 비빈들을 겁탈했다는 내용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조작된 기사일 가능성이 높다.비빈을 겁탈했다는 내용 역시 패자인 견훤을 깎아내리기 위해 조작된 여러기사중 하나일 가능성이 있다. 

지금까지에 내용을 보면 견훤은 존왕의 의를 내세웠던 만큼 신라정부에 적대적인 태도를 지니지 않은 인물이다.그가 경주를 침공했던것은 친고려적인 박씨세력을 제거하고 친후백제적인 김씨세력을 돕기 위한 것으로 결코 반신라적인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오히려 박씨왕조가 고려에 원병을 보낼정도로 후백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한 것이 견훤이 경주를 침공하게 한 이유중 하나로 보인다.왕건 역시 신라와 동맹을 맺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신라지역호족에 귀부를 받아들여가면서 세력을 넓혔다.이것은 직접적인 공격만 없었지 신라에 대한 압박이나 다름없다.그런데 어찌하여 왕건은 친신라주의자고 견훤은 반신라주의자란말인가?너무나 치우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견훤 역시 반신라적인 인물이 아니며 오히려 왕건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신라정부에 우호적인 인물인데도 우리는 한쪽면만 보고 견훤을 반신라적인물로 매도하고 그것이 후백제의 한계인 것처럼여기고 있다. 이것은 역사를 기록된 것만 믿고 기록속에 왜곡된 진실은 무시하는 행동으로 역사를 바르게 알아야 할 우리가 경계해야 할 행동인 것이다. 

<최승우> 올림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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