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7113


지상파 방송 변곡점이 될 SBS 지배구조 변경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 전문위원 media@mediatoday.co.kr 승인 2020.05.18 10:46


5월 연휴 직후인 지난 6일, 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SBS 최다액출자자 변경에 관련된 사전승인 심사가 3일 동안 진행됐다. TV조선과 채널A 재승인 심사 직후라 주목받지 못했지만 미디어 산업의 중요한 변곡점이 될 심사였다. 발단은 실질적인 SBS 최대주주인 태영건설의 TY홀딩스라는 지주회사 설립계획 발표였다.


TY홀딩스 설립과 SBS


현재 SBS의 지배구조는 윤석민 회장 일가가 최대주주인 태영건설(38.3%)-SBS미디어홀딩스(61.2%)-SBS(36.9%)-SBS 자회사로 구성되어 있다. 표면적 문제는 TY홀딩스라는 지주회사가 태영건설과 자리를 바꿈으로써 발생하는 SBS홀딩스 이하 방송사업부문이다. TY홀딩스를 설립하면 공정거래법에 의거하여 SBS는 미디어렙을 비롯한 12개 자회사 지분을 100% 소유해야 한다. 그러나 미디어렙은 관련법에 따라 최대주주가 40% 이상을 소유할 수 없고, 지주회사 소유 또한 금지되어 있다. 여기에 또 다른 자회사의 추가 지분 확보도 불가능하다. 게다가 태영그룹이 TY홀딩스 설립 이후 상장을 하게 되면 자산 규모가 10조 원을 넘게 되어 지상파를 소유할 수 없는 대기업이 된다. 결국 TY홀딩스 설립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SBS를 비롯한 방송사업부문을 전면 개편을 하거나 SBS를 매각하는 방법 밖에 없다.


▲ 윤석민 태영그룹 회장. 사진=SBS

▲ 윤석민 태영그룹 회장. 사진=SBS


이 때문에 방통위의 사전승인 심사는 SBS 최대주주가 태영건설에서 새로운 지주회사로 변경되는 문제를 넘어 사실상 지상파 전국방송인 SBS의 위상과 기능에 큰 영향을 미칠 중요한 결정이다. 지난 3일 간의 심사 이후 방통위 최종결정이 유보된 이유도 이와 같은 사안의 중요성 때문이기도 하다.


왜 자본은 방송사를 원했을까


그러나 이번 TY홀딩스 설립은 단지 방송만의 문제로 보기는 어렵다. 1991년 방송산업에 민간 자본의 진입이 허용된 지 약 30년이 지난 지금 “자본에게 방송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SBS의 출범은 1995년 대전, 대구, 광주, 부산 지역민방의 허가로 이어져 2000년 전후 CJ의 방송 콘텐츠 산업 진출 확대, 2008년 이후 통신 3사 대기업의 유료방송시장 진출, 2011년 종편 출범까지 한국 미디어 시장에 자본 진입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특히 SBS 이후 3차에 걸친 9개 지역민방이 출범한 시기는 1995년 지방자치 부활과 함께 1997년 공황을 거친 정치·경제적 격변기였다. 1990년대 전반기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 1997년 이후 발전주의적 신자유주의 확대에 따른 토건개발과 부동산 불패신화 같은 담론이 등장한 시기가 이 때다. 


대기업의 소비재 시장 진출과 경쟁은 방송광고 시장의 성장을 가져왔고, 지역 간 경쟁이 불붙은 지역균형발전 정책은 지자체와 토건자본의 동맹을 만들어 냈다. 이와 같은 변화에서 자본이 보도기능까지 갖춘 지상파 방송으로부터 얻을 이익은 분명했다. 태영건설을 시작으로 건설업을 주력이나 계열사로 둔 두진(청주), 호반(광주), 일진(전주), SG건설(강원), 한주홀딩스(제주)는 새로운 수익원을 유치하거나 지역과 업계 내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상파 방송에 진출했다. 지난 시기 이들이 얻어온 이익은 회계장부만으로 확인할 수 없다 경영권 승계를 위한 방송 자회사 설립, 지역 토건사업에 필요한 보도 영향력 행사, 사주 일가의 인맥 형성을 위한 이익 유출이나 배당금 인상 등 그 활용 방안은 다양했다.


얻을 것은 다 얻은 방송사업?


윤석민 회장 일가의 이번 TY홀딩스 설립은 이 같은 자본의 지상파 방송사 이용에 큰 변화가 생겼다는 징후다. 태영건설은 그 목적이 “사업부문의 전문성 강화, 지주회사 전환을 통한 지배구조 개선”이라고 밝혔으나, 정확히 말하면 그룹 계열사로서 SBS의 이용가치가 고갈됐다는 선언이다. 태영그룹은 크게 건설, 환경, 물류, 레저, 방송의 5개 부문 사업을 거느리고 있다. 이 중 현재 매출 증가율이 가장 높은 부문은 화학, 바이오, 폐수처리 등의 운영권을 공공부문으로부터 얻어내 수익을 높여온 지정폐기물 매립업이다. 이 사업의 확대와 주식 상장, 그리고 윤석민 회장의 지배력 확대를 위한 포석이 바로 TY홀딩스의 설립이다. 이를 통해 분할되는 태영건설에 대한 윤석민 회장의 지분율과 의결권을 높일 수도 있다. 지난 30여 년 간 태영그룹의 건설, 환경, 레저 사업에 SBS가 미친 효과는 경제적 이익으로만 판단할 수 없다. SBS와 관련된 법적 문제가 분명함에도 태영그룹이 TY홀딩스의 설립을 추진하는 이유는 SBS로부터 얻는 이익보다 주식 상장과 지배력 확대로 얻는 이익이 더 크다는 판단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결국 자본, 특히 건설자본에게 지상파 방송사는 방송시장의 변화 뿐 아니라 모기업 전체의 사업전략 변화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태영그룹의 TY홀딩스 설립에 따라 SBS 등 방송사업부문이 처한 딜레마는 지난 30년 동안 민간자본이 방송사를 통해 누려왔던 이익의 유효기간이 끝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SBS만의 문제가 아니다. 광고 수익이 줄어들고 성장하는 영상콘텐츠 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지상파 방송과 유료방송을 건설·부동산·운수 등 자본이 계속 소유할 이유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 서울 목동 SBS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서울 목동 SBS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자본은 방송에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


방송산업 구조와 노동시장이 달라지고 지상파 방송이 지배적 지위를 누리지 못하는 미디어 산업 변화는 방송의 공공성이라는 상투적인 용어를 전혀 다른 관점에서 보도록 요구하고 있다. 미디어 콘텐츠에 투자할 여력이 있는 기업에게 방송을 하나의 사업부문으로 허가하고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요청해 온 규제기관의 역할은 임계점에 도달했다. 방송사업이 다른 사업부문의 이익과 사주의 위신을 위한 부대사업이 아니라 중장기 투자 전략을 가진 핵심부문으로 키울 ‘미디어 자본’이 필요할 때다. 이러한 자본을 행한 규제기관의 역할은 고용 안정성과 노동조건 향상, 그리고 노동자가 신뢰할 수 있는 경영진의 구성이다. 


태영건설의 TY홀딩스 설립 관련 방통위 사전승인 심사는 그래서 언론개혁의 중요한 분기점이다. 언론개혁은 정치적 독립과 보도의 공정성에만 그치지 않는다. 공영방송 또한 미디어 산업이라는 거대한 시장 내 행위자다. 방송을 부대사업 정도로 생각하는 자본이 진입한 시장에서는 공민영 모두 비정상적인 경쟁과 각자도생의 편법에만 몰두하게 된다. TY홀딩스 설립 허가는 자본에게 지상파 민영방송이란 수많은 계열사 중 하나일 뿐이며, 그 유효기간이 끝나면 언제라도 포기할 수 있는 부속품일 뿐임을 의미한다. 이번 심사가 한국 미디어 시장에 던지는 중요한 신호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자본은 방송으로 어떤 이익을 낼 것인가”가 아니라 “자본은 방송에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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