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youtube.com/watch?v=jT-q9pVuac8http://www.youtube.com/watch?v=EXFfZOswwO0

거북선에 대한 올바른 이해 2 : 임란기 거북선의 포 설치 위치
제14회 이순신학술세미나 [이순신 正論 4 : 정진술 2] 
정진술 2012.04.25 

    [이순신 正論 4] 거북선에 대한 이해 1 : 거북선의 인원 구성  http://tadream.tistory.com/12476 
    [이순신 正論 4] 거북선에 대한 이해 2 : 임란기 거북선의 포 설치 위치 http://tadream.tistory.com/12477
    [이순신 正論 4] 거북선에 대한 이해 3 : 이충무공전서 거북선도의 이해  http://tadream.tistory.com/12486
    [이순신 正論 4] 거북선에 대한 이해 4 : 거북선의 철갑문제  http://tadream.tistory.com/12494


http://www.youtube.com/watch?v=jT-q9pVuac8 

5분10초까지

http://www.youtube.com/watch?v=EXFfZOswwO0


임란기 거북선의 포 설치 위치 논란

ㄱ) 임란기 거북선의 포 설치 위치에 대한 견해가 2층 혹은 3층으로 엇갈려 있음.
ㄴ) 거북선이 2층구조로 되어 있다고 보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2층에 포가 설치되었을 것으로 봄.
ㄷ) 3층 구조설을 주장하는 연구자들 대부분은 임란기 거북선이 3층에서 포를 쏘았다는 주장.
ㄹ) 3층에서 포를 쏘았다는 이들의 주장은 '이충무공전서' 귀선도설의 거북선 그림과는 모순됨. 
 


이충무공 귀선도설 거북선으로 본 포 위치 



ㄱ) '이충무공전서' 귀선도설의 통제영 거북선은 포혈의 총수가 72개이며 그림과 숫자가 일치.
     - 전라좌수영 거북선은 포혈의 총수가 36개이며 역시 그림과 숫자가 일치함

ㄴ) 이 사실은 2층은 물론이고 3층에도 포혈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음. 3층에서만 포를 쏘았다는 주장과는 배치.
     - 임란기 거북선과 1975년 '이충무공전서' 거북선을 서로 다른 구조로 파악하고 있는 셈.

ㄷ) 임란 승리의 주역으로 인식된 거북선이 조선후기에도 수군의 주요전선으로 유지되었던 사실을 고려해 볼 때 200년이 경과되면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화되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음.
 

임진년 해전에서 거북선의 사상자 통계로 예측 포 위치

ㄱ) 임진년 해전 거북선의 사상자 통계를 보면, 사부(射夫)의 부상자는 1명에 불과하고 격군의 사상자가 컸음.
ㄴ) 거북선의 격군들이 포를 발사하는 구멍을 통해서 적의 탄환으로부터 많은 피해를 입었을 수도 있음을 의미.
ㄷ) 만약에 격군이 배치된 2층의 방패에 포 구멍이 없었다면 이와 같은 격군의 사상자는 발생될 수 없었을 것.

구분 사부 격군
전사자 부상자 전사자 부상자
제2차 출전  
제3차 출전   2 16
제4차 출전   1 5
합계   1 2 21

ㄹ) 임란기 거북선은 격군과 화포의 발사공간이 동일한 곳이 위치했을 것으로 추측
          격군 위치(2층) = 화포 위치(2층)
ㅁ) 격군과 사부의 피해정도가 현저하게 다른 것으로 보아 그들의 활동은 서로 달랐다는 점으로 추측
격군 위치(2층) ≠ 사부 위치(3층)
ㅂ) 따라서 임란기 거북선은 2층에서 포를 쏘고 3층에서 활을 쏘았던 것으로 판단됨.
      즉 임란기 거북선의 포혈 위치는 2층 방패가 되며, 3층은 활을 쏘는 공간이었을 것으로 추정됨.
ㅅ) 이것은 '이충무공전서'의 통제영 거북선과 전라좌수영 거북선의 포 구멍의 위치와 동일.


각선도본(各船圖本)에 근거한 포 위치

조선 후기의 판옥선 즉 '각선도본(各船圖本)'의 전선도에는 2층 방패에 포혈이 보이지 않음. 이를 근거로 임란기 거북선의 포도 2층이 아닌 3층에 설치되었을 것으로 주장될 수 있음.



판옥선 3층에 설치 주장 : 김재근 교수
 
ㄱ) 선조실록 1595년3월18일 기사 : 영의정 유성룡이 이순신의 장계를 근거로 "(왜적의) 선제가 견고하고 장대하지 못하여 그 위에 대포를 안치할 수 없어서 우리나라 배에 제압된 것입니다"라고 국왕에게 보고한 기사. 여기서 '그 위'는 포판(2층) 혹은 상포판(3층) 모두로 이해될 수 있으나, 상포판으로 해석.

ㄴ) 1521년5월 서후(徐厚)가 중종에게 진언한 내용 중, "대함은 높고 가팔라서 기어오르기는 어렵게 되었고 내려다보며 제어하기에는 편리합니다."라는 기사가 포좌砲座)를 높은 곳에 설치하여 내려다보면서 방포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 

ㄷ) 상기와 같은 해석은 약간 무리한 것이 아닌가 보여짐.


그 외 기록으로 추정한 포 위치

ㄱ) 1533년 경기수사 최진립의 해유문서에는, 제1전선(판옥선)의 상하장총형차철(上下粧銃穴遮鐵)이 26개, 즉 2,3층에 총혈
 
ㄴ) 1779년(정조2년)에 편찬된 '풍천유향(風泉遺響)'에는 "통제영 1호 전선의 위아래 층에 대포(大砲)를 장착하였는데, 많을 경우에는 65좌에 이른다"라 하여, 대포를 포판(2층)과 상포판(3층)에서 모두 발사하였음.

ㄷ) 조선 후기의 그림으로 추정되는 수군조련도에는 수사(水使)이상의 좌선(座船)의 방패(2층 측면)에 포혈이 뚜렷.

수군조련도 (출처 : http://blog.daum.net/d-life/17197748


결론 

ㄱ) 따라서 조선 후기 판옥선의 총혈은 2층 방패와 3층 여장에 설치

ㄴ) 임진이 종식된 후 조총의 사용이 보편화되고 조선후기 판옥선의 승조원 직무인 화포장과 포수를 고려할 때 판옥선은 2층에서 포발사, 3층에서 조총 발사로 추정됨.
 
ㄷ) 천.지.현.황자총통과 같은 무거운 대포는 평상시 군선의 맨 아래층 무기고에 보관, 유사시에 위로 옮겨 운용.

ㄹ) 상식적으로 볼 때 전투시 효율로는 3층의 상포판에서 포를 발사하는 것이 좋겠지만, 무거운 포를 실제로 3층까지 이동하는 것은 어려운 일임. 또 조작 중에 배의 요동으로 인해 바다에 빠뜨리는 위험이 발생할 수도 있음. 이러한 점들도 판옥선이 3층에서 대포를 운용하는데 어려운 점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추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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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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