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thenewspro.org/?p=6809

NCR, 한국 주교단 교황말씀도 짜깁기? 고의적 누락?
교황 주교단에 강력한 충고 일부 공식 웹사이트 공식문서에서 누락
가난한 이들을 외면하지 말라, 사제들을 외면하지 말라 경고
편집부 2014.8.30 8:40 pm  20148.30 9:57 pm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이 사라졌다. 그것도 한국의 주교들에게 아주 강력하게 충고한 말들이 교황 방한 공식 웹사이트에 배포된 공식문서에서 사라져버렸다. 주교단을 비롯한 한국 가톨릭계가 고의적으로 이를 누락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국정원이나 하는 짜깁기가 가톨릭에서 교황을 상대로 일어난 것이 아니냐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런 한국 가톨릭의 부끄러운 모습을 미국의 내셔널 가톨릭 리포터(National Catholic Reporter publications 이하 NCR)라는 영향력 있는 매체가 상세하게 폭로하고 누락된 교황의 발언 전체를 전하고 나서면서 국제적인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교황이 방한을 마치고 떠난 뒤 일부 진보 가톨릭 매체를 중심으로 이러한 의문이 제기된 바 있지 외신이 이를 상세하게 폭로하기는 처음이다. NCR은 28일 ‘Missing, tough Francis words to Korean bishops-한국 주교단에 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단호한 말씀 누락되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교황이 한국을 방문한 첫날 한국 주교단과 만나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라고 말했다며 하지만 그의 연설 중 일부 구절들이 한국주교단이 후원하는 매체 웹사이트에 배포된 공식문서에서 누락되며 교황의 가장 강력한 충고의 말 중 일부가 보도되지 않았다고 폭로했다.

한국 주교단이 교황방문을 위해 현지 언론과 해외 언론매체를 위해 열어 모든 관련행사에 관한 공식적인 기사와 사진을 제공한 ’2014년 교황 프란치스코의 방한’이라는 웹사이트에서 배포된 교황의 한국 주교단에 대한 강력한 경고, 사실은 질책의 말들이 보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NCR은 언론들의 설명요구에 한국 주교단 대변인은 실수였다고 해명했고 한국주교회의 웹사이트에 첨가 됐지만 8월말에 문을 닫게 되는 언론공개용 웹사이트에는 추가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누락된 내용들은 교황이 한국 주교단에게 “가난한 자들과의 연대는 복음의 중심에 있다”며 근본적인 복음의 임무를 잃고 심지어 가난한 자들에게 수치가 되는, “중산층” 교회가 되지 않도록 경고한 내용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의 시작과 끝에도 가난한 이들이 있다’며 이를 외면할 때 예언자적 누룩을 잃어버린 종교조직이 되는, 그래서 그저 또 하나의 ‘사교모임’이 되고 말 것이라고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NCR은 교황의 발언 중 누락된 부분을 게재하고 나섰다. 누락된 교황의 발언 부분을 보면 주교단이 고의적으로 이를 누락했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는 부분들이 많아 한국 가톨릭 주교들의 현 시대상황과 그 인식들을 엿볼 수 있다.

나아가서는 유가족들에게 양보하라는 시대착오적인, 박근혜 정권 변호적인 발언을 하는 염수정 추기경을 비롯한 세속화된, 절대 가난한 자와 고통 받는 자의 편에 서지 않고 권력의 편에 서는 한국 주교단들의 모습에서 이들이 교황의 발언을 숨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특히 교황은 ‘번영의 신학’, 중산층들과 가진 자들의 교회, 가난한 자들이 발붙일 수 없는 교회의 모습에 강력한 경고를 한 부분들은 교세 성장을 추구하는 일부 가톨릭 주교들에게는 부담스런 대목들이 아니라 할 수 없다. 교황은 이러한 ‘번영의 신학’ 또는 안일한 교회를 지향하는 일을 악마가 심는 ‘유혹이라는 가라지’로 규정하며 이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한 톤으로 질책하며 가난한 자의 편에서는 예언자적 사명을 유지하는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기를 촉구하고 있다.

두 번째로 누락된 교황이 한국 주교단들에게 경고하는 것은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부분인 ‘사제들과 가까이 있으라는 조언이었다. NCR에 따르면 교황은 이 부분에서 “형제들이여, 사제가 오늘 전화하여 만남을 청하거든 당장, 오늘 아니면 내일 전화하라”고 아주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NCR은 이는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것이며 웹사이트에도 실리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지만 한국의 상황을 들여다보면 쉽게 수긍할 수 있다. 한국에는 교황의 표현을 빌리면 가난한 자들과 함께하는 수많은 사제들이 있기 때문이며 한국의 추기경을 비롯한 주교단들은 이들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정에서, 밀양에서, 그리고 대선부정과 무효선언 정국에서, 박창현 신부나 거리의 신부 문정현 신부와 같이 결코 사회적 정의를 외면하지 않고 민중의 고통과 함께하는 사제들이 있는 반면에 권력의 편에 서서 민중의 고통을 외면하고 민중들에게 인내와 화해만을 요구하는 사제들, 즉 추기경을 비롯한 주교들이 있는 것이 한국의 실정이기 때문이다.

NCR에 따르면 교황은 주교단에게 ‘주교들은 자신들의 사제들로부터 멀리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혹은 더 나쁜 것은, 사제들이 접근할 수 없으면 안된다’고 당부했다. 교황은 ‘나는 이것을 무거운 마음으로 말한다’며 ‘형제들이여, 사제가 그대에게 전화하여 만나기를 청하면, 오늘 아니면 내일 곧장 전화하라. 본인이 그를 만날 시간이 없다면, 그에게 말하라: “이것저것, 혹은 다른 일로 인해 당신을 만날 수 없으나, 당신에게 전화하고 싶었고 내가 여기에 당신을 위해 있다.” 하지만 그들이 아버지의 대답을 최대한 빨리 들을 수 있도록 하라. 제발, 사제들을 멀리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말은 당부였지만 정의구현 사제단을 비롯한 사제들을 멀리하고 때론 비난하는 한국의 주교단들에게 교황이 강한 질책을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가 만연한 이 시대에 돌연 교황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온 ‘가난한 자들을 위한 성자’ 프란치스코 교황. 그는 물질주의와 전면적으로 대결을 선포하고 있고 한국을 방문하여 고통 받는 세월호 가족들을 비롯한 이 시대의 소외받는 자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우리들에게 종교가 서야할 곳이 어디인 줄을 자문하게 하고 갔다.

세월호의 진실을 감추려고만 하는 박근혜 정부, 교황의 간곡한 당부와 질책을 감추려하는 한국의 주교단. NCR의 기사는 이 두 집단의 다른 점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하게 만들고 있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내셔널 가톨릭 리포트의 기사 전문이다.

번역 감수: 임옥
기사 바로가기☞    http://bit.ly/1B65b31

 

Missing, tough Francis words to Korean bishops
한국 주교단에 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단호한 말씀 누락되다
Thomas C. Fox | Aug. 28, 2014 
 
Pope Francis greets Korean bishops (photo by Pastoral Visit media site)
교황 프란치스코가 한국 주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On the first day of Pope Francis’ visit to South Korea he met with the Korean bishops, telling them to be one with the poor.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한 첫날 그는 한국 주교단과 만나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라고 말했다.

However, some of his strongest advice was not reported at the time as several paragraphs from his talk were dropped in the official text distributed on the Korean bishops’ sponsored media website.

하지만 그의 연설중 일부 구절들이 한국주교단이 후원하는 매체 웹사이트에 배포된 공식문서에서 누락되며 교황의 가장 강력한 충고의 말 중 일부가 보도되지 않았다.

The Korean bishops set up website – 2014 Pastoral visit by Pope Francis to Korea – for the many hundreds of local and foreign media reporting on the Francis five-day journey through South Korea. That website, for accredited journalists, supplied official texts and photographs for all the events.

한국 주교단은 닷새에 걸친 교황 프란치스코의 방한에 대해 보도하는 수백개의 현지 언론과 해외 언론매체를 위해 ’2014년 교황 프란치스코의 방한’이라는 웹사이트를 열었다. 공인된 언론인들을 위한 이 웹사이트는 모든 관련행사에 관한 공식적인 기사와 사진을 제공했다.

In the wake of Francis’ visit, several Korean journalists noticed the discrepancies between the Francis speech, as reported in the text on the Vatican website and the texts on websites made available to the media, as well as to Koreans, on the Catholic Bishops’ Conference of Korea.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 후, 몇몇 한국 언론인들은, 한국 가톨릭 주교회의에서의 교황의 연설문이 바티칸의 웹사이트에 실린 연설문에 있는 것과 언론과 한국인들에게 공개되는 웹사이트에 실린 것 사이에 차이가 있음을 발견했다.

Asked by these journalists to explain the discrepancies, a spokesperson for the Korean bishops said the paragraphs were inadvertently dropped. The missing paragraphs have now been added to Korean bishops’ website, but not to that available to the media, a website that will shut down at the end of August.

이 차이를 설명해달라는 언론인의 질문에 대해 한국주교단의 대변인은 이 구절들이 실수로 누락됐다고 말했다. 이 누락된 구절들은 이제 한국주교회의 웹사이트에 첨가됐지만, 8월말에 문을 닫게될 언론 공개용의 웹사이트에는 첨가되지 않았다.

As earlier reported, Francis told the Korean bishops that “solidarity with the poor is at the heart of the Gospel,” going on to say, “it must penetrate the hearts and minds of the faithful and be reflected in every aspect of ecclesial life. … I pray that this ideal will continue to shape the pilgrim path of the Church in Korea as she looks to the future.”

일전에 보도되었듯이, 프란치스코는 한국주교단에게 “가난한 자들과의 연대는 복음의 중심에 있다”고 하며 이어서 “이것은 반드시 신앙인들의 마음과 가슴을 뚫고 들어가야하며 교회생활에 모든 측면에 반영이 되어야 한다. …이 이상이 미래를 위한 한국교회의 순례자의 길의 형태를 계속 만들어주길 기도한다”고 말했다.

What he said next, however, was not reported because it was dropped from the text given to the media.

그러나 그의 다음 말은 언론에 배포된 본문에서는 누락되어 보도되지 않았다

Francis spoke specifically about the difficulties a local church can have when living in prosperity, warning the bishops not to be a “middle class” church, one that loses its radical gospel mission and even becomes an embarrassment to the poor.

프란치스코는 주교들에게, 근본적인 복음의 임무를 잃고 심지어 가난한 자들에게 수치가 되는, “중산층” 교회가 되지않도록 경고하면서 지역교회가 부유하게 살아갈 때 생길 수 있는 어려움들에 대해서 특별히 말했다.

He said: I have said that the poor are at the heart of the Gospel; they are present there from beginning to end. In the synagogue at Nazareth, Jesus made this clear at the outset of his ministry. And when in Matthew 25 he speaks of the latter days, and reveals the criterion by which we will all be judged, there too we find the poor. There is a danger, a temptation which arises in times of prosperity: it is the danger that the Christian community becomes just another “part of society”, losing its mystical dimension, losing its ability to celebrate the Mystery and instead becoming a spiritual organization, Christian and with Christian values, but lacking the leaven of prophecy.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난한 이들이 복음의 중심에 있다고 말씀드렸다; 복음의 시작과 끝에도 가난한 이들이 있다. 나사렛의 회당에서 예수는 이를 초창기 자신의 사도들에게 분명히 했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 25장에서 그가 마지막날에 관해 말씀하실 때에, 그리고 모두가 심판을 받을 때 적용될 규범을 밝힐 때에도 거기에서 우리는 가난한 이들을 본다. 번영의 시기에 오는 위험과 유혹이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신비적인 측면을 잃고 하느님의 신비를 거행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대신에 그리스도교적이고 그리스도교적 가치를 지닌 그러나 예언자적 누룩을 잃어버린 종교조직이 되는, 그래서 그저 또 하나의 ‘사교모임’이 되고마는 위험이다.

When this happens, the poor no longer have their proper role in the Church. This is a temptation from which particular Churches, Christian communities, have suffered greatly over the centuries; in some cases they become so middle class that the poor even feel ashamed to be a part of them. It is the temptation of spiritual “prosperity”, pastoral prosperity. No longer is it a poor Church for the poor but rather a rich Church for the rich, or a middle class Church for the well-to-do. Nor is this anything new: the temptation was there from the beginning.

그렇게 될 때 가난한 이들은 교회에서 적절한 역할을 더 이상 갖지 못하게 된다. 이것은 개별교회들과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이 수세기에 걸쳐 수없이 겪어 온 유혹이다. 일부의 경우에는 교회들은 그렇게 중산층이 되어 가난한 이들이 그 교회의 일부라는 것에 대해 수치스럽게 느낄 지경이 되고 만다. 그것은 영적 “번영”, 사목적 번영의 유혹이다. 더 이상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아니라, 부자들을 위한 부유한 교회 혹은 잘 사는 이들을 위한 중산층 교회가 된다. 이는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유혹은 맨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다.

Paul had to rebuke the Corinthians in his First Letter (11:17), while the Apostle James was even more severe and explicit (2:1-7): he had to rebuke these affluent communities, affluent Churches for affluent people. They were not excluding the poor, but the way they were living made the poor reluctant to enter, they did not feel at home. This is the temptation of prosperity.

바오르는 자신의 첫 번째 서신에서 코린토인들을 질책해야 했고 (11:17), 야고보 사도는 훨씬 더 엄격하고 분명했다 (2:1-7): 그는 이들 부유한 공동체들, 부유한 이들을 위한 부유한 교회들을 꾸짖어야만 했다. 그들은 가난한 이들을 쫓아내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살아가던 방식은 가난한 이들이 교회로 발걸음 하는 것을 꺼리게 했으며, 가난한 이들은 편안하게 느끼지 못하도록 했다. 이것이 번영의 유혹이다.

I am not admonishing you because I know that you are doing good work. As a brother, however, who has the duty to confirm his brethren in the faith, I am telling you: be careful, because yours is a Church, which is prospering, a great missionary Church, a great Church. The devil must not be allowed to sow these weeds, this temptation to remove the poor from very prophetic structure of the Church and to make you become an affluent Church for the affluent, a Church of the well-to do – perhaps not to the point of developing a “theology of prosperity” – but a Church of mediocrity.

여러분이 잘 하고 계신 것을 알고 있기에, 제가 여러분을 책망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형제들에게 믿음의 확신을 주어야 하는 본분을 지닌 형제로서 저는 여러분께 말씀드린다: 주의하라. 여러분의 교회는 번창하고 있는 교회이고, 선교하는 훌륭한 교회이고, 커다란 교회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이들을 교회의 예언자적 구조로부터 몰아내고 여러분이 부자들을 위한 부유한 교회, 잘사는 사람들을 위한 교회가 되고자하는 유혹, 아마도 “번영의 신학”에 이를 정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안일한 교회를 지향하는 유혹이라는 가라지를 악마가 심도록 허용해서는 안된다.

Also dropped from the remarks Francis made to the Korean bishops was advice he offered to remain close to their priests. He was specific: “Brothers, if a priest phones you today and asks to see you, call him back immediately, today or tomorrow.”

프란치스코가 한국 주교들에게 한 발언으로 역시 누락된 것은 사제들과 가까히 있으라는 조언이었다. 그는 구체적이었다: “형제들이여, 사제가 오늘 전화하여 만남을 청하거든 당장, 오늘 아니면 내일 전화하라.”

These were the words that were not reported to the media and did not originally appear on the Korean bishops’ conference website.

이것은 언론에 보도되지않은 발언이며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웹사이트에 원래 실리지도 않았다.

I urge you to remain close to your priests. Close, so that they can see their bishop often. This closeness of the bishop is not only fraternal but also paternal: as they carry our their pastoral ministry, priests often need it. Bishops must not be distant from their priests, or worse, unapproachable. I say this with a heavy heart. Where I come from, some priests would tell me: “I’ve called the bishop, I’ve asked to meet him; yet three months have gone by and I have still not received an answer”. Brothers, if a priest phones you today and asks to see you, call him back immediately, today or tomorrow. If you don’t have time to see him, tell him: “I can’t meet you because of this, that and or the other thing, but I wanted to call you and I am here for you”. But let them hear their father’s response, as quickly as possible. Please, do not be distant from your priests.

여러분들의 사제들 곁에 가까이 머무를 것을 권고드린다. 가까이, 그래서 그들이 자신들의 주교를 자주 볼 수 있도록. 사제들이 목회사역을 해나갈 때 자주 필요로 하는 것은 형제로서 뿐만 아니라 아버지로서의 주교와의 친밀감이다. 주교들은 자신들의 사제들로부터 멀리 있어서는 절대로 안되며 혹은 더 나쁜 것은, 사제들이 접근할 수 없으면 안된다. 나는 이것을 무거운 마음으로 말한다. 내가 온 곳에서 일부 사제들은 내게 “주교에게 전화를 했다. 그에게 만나달라고 부탁을 했지만, 3달이 지나도록 아직도 답을 받지못했다”고 말하곤 했다. 형제들이여, 사제가 그대에게 전화하여 만나기를 청하면, 오늘 아니면 내일 곧장 전화하라. 본인이 그를 만날 시간이 없다면, 그에게 말하라: “이것 저것 혹은 다른 일로 인해 당신을 만날 수 없으나, 당신에게 전화하고 싶었고 내가 여기에 당신을 위해 있다.” 하지만 그들이 아버지의 대답을 최대한 빨리 들을수 있도록 하라. 제발, 사제들을 멀리하지 말라.

Fox is NCR publisher and can be reached at tfox@ncronline.org.

폭스는 NCR 출판인이며 연락처는 tfox@ncronline.org이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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