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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산산성

1) 학술조사

1920년대에 야기 쇼사부로(八本奘三郞)가 답사하였으나 불탑(佛塔)만 확인하고, 산성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없이 ‘심양(瀋陽) 남쪽 40리의 탑산(塔山)에 있다’는 《성경통지(盛京通志)》의 기록만 인용하고 있다. 1994년 미카미 츠키오(三上次男)가 와타나베(渡邊三三) 등과 함께 답사한 바 있으며, 1992년에도 하야시 나오키(林直樹) 등 일본학자 일행이 남문 부근에서 붉은색 기와편을 확인한 바 있다. 1945년 이후 중국학자들에 의해 개략적인 조사가 여러 차례 이루어졌다.


2)위치와 환경

탑산산성(塔山山城)은 심양시(瀋陽市) 중심가에서 남쪽으로 30km 떨어진 소가둔구 진상둔(蘇家屯區 陳相屯) 동쪽의 탑산(塔山) 위에 위치하였다. 탑산(塔山)이라는 명칭은 정상에 자리잡은 석탑(石塔)에서 유래하였는데, 채석장(採石場)으로 사용되고 있어 본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서남쪽 3km 거리에 진상둔역이 있으며, 역과 산성 사이에는 태자하(太子河) 지류인 사하(沙河)가 서류(西流)하고 있다. 탑산(塔山)은 요동평원 한가운데에 솟은 산으로 동북~서남 방향으로 기다랗게 놓여 있다. 산의 남쪽 경사면에 산성이 자리잡고 있는데, 북쪽은 산을 등지고 남쪽은 평지를 향해 가슴을 활짝 편 듯한 형세이다. 북쪽이 남쪽보다 높고 중앙에는 작은 분지가 형성되어 있는데, 분지 중앙에는 명대(明代)의 안녕사(安寧寺)라는 절이 있다. 북벽 바깥쪽의 산비탈은 경사가 가파르며, 그 아래로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다. 

탑산(塔山)은 요하유역(遼河流域) 전체지형으로 보아 요동평원(遼東平原)에서 천산산맥(千山山脈) 산간지대로 진입하는 길목에 해당한다. 서북 방면으로는 요동평원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지만, 동남쪽으로는 10~20km 정도 평지가 전개되다가 천산산맥(千山山脈)의 지맥(支脈)들이 나타난다. 이들 천산산맥(千山山脈) 지맥(支脈)들은 사하 남안․북안(沙河 南岸․北岸)을 따라 동남에서 서북방향으로 기다랗게 뻗어있으며, 그 사이로 천산산맥(千山山脈) 산간지대로 진입하는 교통로가 발달되어 있다. 특히 사하(沙河)를 거슬러 동남쪽으로 15km 정도 가면 본계 변우산성(本溪 邊牛山城)이 있는데, 여기에서 본계(本溪)를 거쳐 압록강 일대로 진입하는 주요 교통로가 시작된다. 이처럼 탑산(塔山)은 요동평원 한가운데에 솟은 구릉성 산이면서 요동평원과 천산산맥 경계지대의 서북쪽에 위치하였다. 탑산은 요동평원을 가로지르는 교통로의 중간거점이자 요동평원에서 천산산맥 산간지대로 진입하는 교통로의 출발점인 것이다.

본계 변우산성과 심양 탑산산성 위치도


3)유적의 현황과 성곽의 구조

성벽은 산비탈의 중앙분지를 감싸고 있는 산등성이를 따라 축조하였다. 평면은 둥그스름하여 원형에 가까우며, 총둘레는 1km를 약간 넘는다. 

심양 탑산산성 평면도

성벽 축조방식에 대해서는 토석혼축설과 토축설 등 두 가지 견해가 있다. 미카미 츠키오(三上次男)는 무순 고이산성(撫順 高爾山城)처럼 돌을 층층이 쌓아 벽심(壁芯)을 구축한 다음, 흙으로 성벽 본체를 축조하였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리고 왕우랑․왕굉북(王禹浪․王宏北)도 돌덩이를 쌓아 올려 기초부를 구축한 다음 황토를 판축하여 성벽을 쌓아 올렸다고 보았고, 이문신(李文信)을 비롯한 중국학자들은 대부분 토축성벽으로 분류하고 있다. 지금도 성벽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동남 모서리의 성벽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잔고는 1m이고, 기단부의 너비 3m이다.

탑산산성 전경


4)역사적 성격

탑산산성(塔山山城)은 요동평원과 천산산맥 경계지대 서북쪽에 자리잡은 요동평원 한 복판의 산상에 위치하였다. 서남쪽에는 요동성(遼東城)이 자리잡았던 요동시(遼東市)가 있고, 동북쪽에는 신성(新城)으로 비정되는 무순 고이산성(撫順 高爾山城)이 나온다. 서북쪽으로는 가장 북쪽의 요하 도하로(遼河 渡河路)인 신민 고대산~심양로(新民 高臺山~瀋陽路), 동남쪽으로는 가장 위쪽의 요동평원~압록강로(遼東平原~鴨綠江路)인 본계~봉성로(本溪~鳳城路) 등으로 이어진다. 탑산산맥(塔山山脈)은 요동평원을 가로지르는 교통로 및 요하~요동평원~압록강(遼河~遼東平原~鴨綠江)을 잇는 교통로의 중간 거점인 것이다. 

탑산산성의 축조시기를 추정할 만한 명확한 자료는 없으며, 개모성 관련 문헌기록도 7세기에 처음 출현하고 있지만, 탑산산성 축성법이 고구려의 요동진출 이후 출현한 것이라는 점을 근거로 5세기 초 이후로 비정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탑산산성의 축조시기는 고구려의 요동지역에 대한 지방지배 및 군사방어체계의 정비와 관련해 비정할 수 있을 것이다. 
 
탑산산성(塔山山城)은 요동평원상의 전략적 거점이면서 본계~봉성로(本溪~鳳城路)를 봉쇄하던 군사중진이었다. 그리고 요동성(遼東城)과 백암성(白巖城)이 본계~봉성로(本溪~鳳城路)의 남쪽 진입로를 봉쇄하였다면, 탑산산성(塔山山城)은 동남쪽 15km에 위치한 변우산성(邊牛山城)과 함께 북쪽 진입로를 봉쇄하였다고 추정된다. 탑산산성(塔山山城)은 요동평원~압록강에 구축된 입체적 군사방어체계를 구성한 군사방어성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백암성(白巖城)이 6세기 중반에 개축(改築)된 사실을 고려하면, 탑산산성(塔山山城)은 늦어도 6세기 초에는 축조되었다고 여겨진다. 

한편, 탑산산성(塔山山城)은 둘레 1km 전후로서 대형산성 보다 한 등급 아래인 중형산성으로 분류되지만, 성 내부에는 주거용 공간이 비교적 넓은 편이다. 성벽 안쪽의 분지형 경사면 전체에 계단상 대지가 조성되어 있을 뿐 아니라 대지 곳곳에서 건물초석과 함께 고구려 시기의 전형적인 붉은색 기와편이 대량으로 발견되고 있다. 탑산산성(塔山山城)도 다른 고구려산성처럼 군사방어뿐 아니라 지방지배를 위한 거점성으로 기능하였던 것이다. 특히 645년 당군(唐軍)이 개모성(蓋牟城)을 함락하고 1만명 이상을 노획하고 10만석이나 되는 식량을 획득하였다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중요한 지방거점성이었다고 추정된다. 다만 당군(唐軍)이 요동성(遼東城)을 함락한 다음 노획한 인구나 식량에 비해 규모가 적다는 점에서 요동성보다 적어도 한 등급 낮은 지방관의 치소(治所)로 추정된다. 당(唐)이 고구려를 멸망시킨 다음 개모성(蓋牟城)에 개모주(蓋牟州)를 설치한 것도 이를 반영한다. 

탑산산성(塔山山城)은 요동평원(遼東平原)에서 본계(本溪)를 거쳐 압록강으로 진입하는 전략적 요충지를 방어하는 군사중진이면서 심양(瀋陽) 부근을 지배하기 위한 지방거점성이었던 것이다.

탑산산성 북벽(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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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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