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40913085404633

[단독] 퇴임 1년 반 만에 설립된 'MB 기념재단'
시사저널 | 안성모 기자 | 입력 2014.09.13 08:54

이명박 전 대통령(MB)의 '철학과 업적'을 기리는 '이명박 대통령 기념재단'이 설립돼 논란이 예상된다. 퇴임한 지 불과 1년 반 남짓 지난 상황에서 전직 대통령의 기념재단이 설립된 것은 한국 정치사에서 유례없는 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경우 서거 후에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재단'과 '김대중기념사업회'가 설립됐고,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경우 퇴임한 지 12년이 지나서야 '김영삼 민주센터'라는 사단법인이 설립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우 1999년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로 출발해 지난해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으로 변경됐다.

이 전 대통령의 기념재단 설립은 이미 한 차례 여론의 도마에 올랐던 사안이다. 지난 3월2일 MB 정부에서 장·차관과 청와대 수석비서관 등을 지낸 인사 50여 명이 서울의 한 식당에서 기념재단 발기인 모임을 가진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이 전 대통령도 참석한 자리였다. 이들은 모임에서 이 전 대통령이 중점 과제로 추진한 녹색성장을 비롯해 주요 20개국 (G20) 정상회담 등을 위주로 기념사업을 진행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비판 여론이 거셌다. 당장 야당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후안무치'(얼굴이 두껍고 부끄러움이 없다)라는 비난과 함께 '도대체 무엇을 기념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기념재단이 설립되면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기념사업에 국고가 지원된다는 점도 논란을 불러왔다.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은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일"이라고 비판했고, 통합진보당은 "기념재단 추진을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여론의 반발을 의식해서인지 이후 기념재단 설립에 대한 얘기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 보였다.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 9월2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선진한반도포럼' 모임 때도 언론에서는 "기념재단 건립을 추진 중인 것"으로 보도했다. 당시 모임에 참석한 이 전 대통령은 근황을 묻는 기자들에게 "요즘 책을 쓰고 강의를 하고 있다"는 소식만 전했다. 기념재단 설립 문제는 관심의 대상에서 멀어진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시사저널 취재 결과 '이명박 대통령 기념재단'은 법인 설립을 마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법인의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정부의 설립 인허가가 8월14일에 이뤄졌고, 닷새 뒤인 8월19일 등기까지 마쳤다. 자산 총액은 6억2500만원이다. 법인 목적은 '이명박 대통령의 철학과 업적을 기리며, 그 정신을 이어받아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지구촌 공동체 동반 성장에 이바지함'으로 명시돼 있다.

이 전 대통령의 철학과 업적을 유지·계승·발전시키는 기념사업으로는 '이명박 대통령의 철학과 업적에 대한 교육·연수·연구·편찬·출판·홍보 및 국제 협력, 이명박 대통령의 기록물·자료·물품 등 사료의 수집·정리·열람 및 전시, 이명박 대통령 기념관·도서관 등 기념 시설 설립·운영'을 제시했다. 이 전 대통령이 주도했거나 역점을 두고 추진한 지구촌 의제를 활성화하는 사업으로는 '녹색성장'과 '개발도상국을 위한 개발 협력'을 꼽았다.

9월2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선진한반도포럼' 모임에 참석했다 © 연합뉴스

이사장 이재후, 이사는 류우익·이달곤 등 

재단 이사장은 이재후 김앤장 대표변호사가 맡았다. 이 변호사와 이 전 대통령의 인연은 남다르다. 이 변호사는 4·19세대 인사들의 모임인 '4월회' 회원으로 1997년부터 4년 동안 회장을 맡았다. 이 전 대통령도 1991년 창립한 이 모임의 발기인 중 한 명이다.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부터 흉금을 털어놓고 의견을 구할 정도로 서로에 대한 신뢰가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 대선 때는 이 전 대통령의 외곽 자문기구인 '국제전략연구원'(GSI) 이사장을 맡았다. 이 연구원은 MB 정권의 인재풀로 주목을 받은 곳이다. 류우익 전 대통령실장, 백용호 전 국세청장, 곽승준 전 미래기획위원장, 이달곤 전 행정안전부장관, 현인택 전 통일부장관, 남주홍 전 국정원 1차장 등이 GSI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전 대통령의 대학 동기이자 오랜 친구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이 감사를 맡았다.

이 변호사는 현재 류 전 실장과 함께 이 전 대통령의 출연 재산으로 설립된 '청계재단' 이사로 등재돼 있다. 류 전 실장도 '이명박 대통령 기념재단' 이사를 맡았다. 이 변호사와 류 전 실장이 두 재단 모두에 관여하고 있는 셈이다. MB 정권 초대 대통령실장을 지낸 류 전 실장은 이후 주중 대사와 통일부장관을 역임했다. 이들 이외에 행정안전부장관에 이어 대통령실 정무수석비서관을 지낸 이달곤 전 장관, 대통령실 정무수석비서관·국정기획비서관·고용노동부장관·기획재정부장관 등 요직을 두루 거친 박재완 전 장관, 지식경제부 제1차관에 이어 보건복지부장관을 지낸 임채민 전 장관도 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여성으로는 유일하게 한미숙 전 대통령실 중소기업비서관이 이사 명단에 올랐다.


'이명박 대통령 기념재단' 사무실 주소지인 서울 대치동에 있는 건물 © 시사저널 이종현'이명박 대통령 기념재단' 설립에 대한 비판 여론은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먼저 유지·계승·발전시키겠다는 '업적' 부분이다. 법인 목적 등을 놓고 볼 때 녹색성장과 지구촌 공동체의 동반 성장에 우선 중점을 둘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08년 8·15 경축사에서 녹색성장을 국가 비전으로 제시한 후 관련 정책을 강하게 추진했다. 또 아프리카 개발도상국 등과 개발 협력 체제를 구축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하지만 녹색성장의 경우 박근혜정부 들어 시들해졌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를 완화하고 저탄소협력금제는 6년간 시행을 미루기로 하는 등 관련 정책이 후퇴하는 모습이다. MB 정부에서 주목을 받았던 녹색성장펀드는 부진한 성적에 시장으로부터 외면당하는 신세에 놓였다. 녹색성장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4대강 사업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은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그 폐해가 심해지면서 성토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개발도상국과의 개발 협력의 경우 새마을운동 모형을 전파하는 식으로 전략이 변화하고 있다.

다음으로 재단 설립 시기 문제다. 퇴임한 지 1년 반 만에 기념재단을 만드는 것은 너무 이르다는 비판이다. 이와 관련해 MB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한 인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도 비슷한 시기에 재단이 설립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실제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재단'은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한 지 1년 8개월이 지난 2009년 10월30일 설립됐다. 시간만 놓고 본다면 이 전 대통령과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두 재단의 설립은 전혀 다른 상황에서 진행된 일이다. 재단 설립 전인 그해 5월23일 노 전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서거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노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2009년 8월18일 서거한 후에 재단이 설립됐다. '김대중기념사업회'는 2011년 9월15일 설립됐다. 김 전 대통령이 퇴임한 지 8년 넘게 지난 후다. '김영삼 민주센터'는 김 전 대통령이 퇴임한 지 12년 넘게 지난 2010년 6월10일에야 설립됐다.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는 1999년 9월1일 설립된 후 2013년 6월21일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으로 변경됐다.


퇴임 1년 반 만에 기념재단 설립, 유례없는 일

마지막으로 이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11년 9월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기념사업 지원 부문을 신설한 것을 두고 이 전 대통령의 퇴임 후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 전직 대통령은 관련 법률에 따라 여러 가지 예우를 받게 된다. 대통령 보수의 95%를 연금으로 받고 비서관 3명과 운전기사 1명을 둘 수 있다. 전직 대통령이 서거한 경우 배우자가 대통령 보수의 70%를 연금으로 받고 비서관 1명과 운전기사 1명을 둘 수 있다.

이러한 기본적인 예우 이외에 더해지는 게 기념사업 지원인데, MB 정부에서 이를 시행령에 구체적으로 명시한 것이다. 그런데 시행령에 제시된 사업 항목이 '이명박 대통령 기념재단'이 추진하겠다고 밝힌 사업 항목과 유사하다. 기념관 및 도서관 건립, 업적에 대한 사료 수집·정리 및 연구·편찬, 사료 전시 및 열람 등이 대표적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오해를 받을 소지가 큰 셈이다. 이에 대해 전직 대통령 예우 업무를 맡고 있는 안전행정부 관계자는 "시행령의 경우 기념사업의 지원 내용을 구체화한 것일 뿐"이라며 "이전에도 지원하던 것을 법에 명시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2011년 당시는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념사업이 한창 논의될 때였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이명박 대통령 기념재단'에 국고가 지원된 것은 없다. 국고의 경우 재단 설립이 아닌 기념사업에 지원되기 때문이다. 기념사업은 자기 부담 70%와 국고 30%로 진행된다. 기념사업 추진 전에 기념관이 있으면 50% 대 50%로 비율이 달라진다. 일단 안전행정부에 사업계획서가 접수되면 기념사업으로서 적절한지, 자기 부담금 확보가 가능한지 등을 판단해 국무회의에서 심의를 거쳐 결정된다. 만약 자기 부담금을 확보하지 못하면 국고 지원이 안 된다고 한다.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재단'은 550억원의 예산 중 165억원, '김대중기념사업회'는 158억원의 예산 중 75억원, '김영삼 민주센터'는 265억원의 예산 중 75억원,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은 708억원의 예산 중 208억원이 국고로 지원됐다. '이명박 대통령 기념재단'의 경우 아직까지 사업계획서를 한 건도 제출하지 않아 국고로 지원받은 예산이 전혀 없다는 설명이다. 향후 구체적으로 기념사업이 진행될 경우 이에 대한 국고 지원 여부를 두고 논란이 예상된다.

재단 설립 외부로 알리지 않는 까닭도 의문

이러한 비판과 별개로 기념재단을 왜 소리 소문 없이 조용히 설립했는지도 궁금한 대목이다. 취재진은 9월11일 등기부등본에 나온 사무실 주소지를 직접 찾아갔다.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삼성역 인근으로 이 전 대통령이 퇴임 후 마련한 사무실과 같은 블록에 위치한 오피스텔 건물이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 기념재단'이라는 간판을 단 사무실은 찾을 수 없었다. 건물 경비원도 "이 전 대통령과 관련된 사무실이 들어왔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다"고 말했다. 여러 정황을 놓고 볼 때 재단법인을 설립은 했지만 외부로 알릴 단계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달곤 전 장관은 "기념재단을 정치적인 시각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미국과 달리 우리의 경우 전직 대통령이 다시 정치 활동을 할 수도 없지 않나. 단지 잊지 않고 기념한다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전 장관은 "그리고 재단이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할 수도 없다. 사업 추진이 안 되면 국고 지원도 없다. 국민의 지지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고 설명했다.

MB 정부에서 고위 관료를 지낸 한 인사는 추석 연휴 직전 기자와 만나 "MB의 기념재단을 설립하는 데 발기인으로 동참해달라는 제안을 받고 고민 중이다"며 "현재까지(9월초) 50~60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해 6억6000만원 정도의 후원금을 모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한 사람당 1000만원 정도씩 갹출한 셈이다"라고 말했다.

재단 이사를 보면 실세가 보인다

현재 정부로부터 국고 지원을 받고 있는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회는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재단' '김대중기념사업회' '김영삼 민주센터'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등 모두 네 곳이다. 이들 사업회의 이사 구성을 살펴보면 전직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인맥 관계가 잘 드러난다. 특히 그룹 내 이른바 실세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재단'의 경우 한명숙·이해찬 전 총리와 문재인·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번갈아가며 이사장을 맡았다. 현재 이사장은 이 전 총리다. 여기에 이재정 전 통일부장관, 정연주 전 KBS 사장, 문성근 전 민주당 대표, 도종환·박남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그리고 '오월의 어머니'로 통하는 안성례 5·18인권도서관 관장이 이사로 있다.

'김대중기념사업회' 이사장은 권노갑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맡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의 오랜 참모이자 동지인 권 상임고문은 동교동계의 '맏형'으로 통한다. 이사로는 우선 김 전 대통령의 가족들이 눈에 띈다. 이희호 여사와 함께 홍일·홍업·홍걸 3형제가 나란히 이사로 등재돼 있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한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도 이사를 맡고 있다. 한 위원장은 김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현역 의원으로는 설훈·김영환·전병헌 의원이 있다. 배기선·장성민·배기운 전 의원도 이사로 등재돼 있다.

'김영삼 민주센터'에는 상도동계 인사들이 이사로 포진해 있다. 여권의 차기 대선 주자로 부상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우선 눈에 띈다. 현재 상도동계의 맏형 격인 김덕룡 전 의원과 박근혜정부 출범과 함께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이경재 전 의원도 이사로 등재돼 있다. 김 전 대통령의 가족 중에는 차남 김현철 전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이 이사를 맡고 있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은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초대 이사장을 맡다가 청와대로 들어가면서 사임해 손병두 전 서강대 총장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사로는 재선을 지낸 이정무 전 의원, 보수 논객인 조갑제 대표, 병원협회장을 지낸 성상철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 보수 학자인 류석춘 연세대 교수,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상임대표를 역임한 제성호 중앙대 교수 등이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법무부장관, 박근혜정부에서 국정원장을 지낸 김성호 전 원장도 이사로 등재돼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인사는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다.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다음 날 이사에서 사임했다.

안성모 기자 / asm@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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