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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제7차 출전
(1594. 9. 27)


2차 당항포해전 이후 큰 전투 없이 수 개월간 소강상태가 지속되었다. 그런데 이런 소강상태에 대하여 불만을 가진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선조였다. 선조의 불만은 이순신이 나가 싸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8월 21일에는 영의정 유성룡과 대화 하면서 이순신이 일을 게으르게 한다고 말한다. 유성룡은 간곡히 이순신을 변호하지만 선조의 불만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9월 3일에는 이순신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선조의 밀지가 도착한다.

"수륙 여러 장수들이 팔짱만 끼고 서로 바라보면서 한 가지라도 계책을 세워 적을 치는 일이 없다."

이순신의 심정은 답답하기만했다. 답답하지만 왕의 밀지에 반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날의 난중일기를 보면 다음과 같이 그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여러 장수들과 함께 맹세하고 죽음으로써 원수 갚을 뜻으로 날을 보내지만 험고한 곳에 웅거하여 소굴 속에 들어 있는 적이라 경솔히 나가 칠 수는 없는 일이요, 또 더구나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만 백 번 싸워도 위태함이 없다」하지 않았는가. 종일 큰바람이 불었다. 초저녁에 불 밝히고 혼자 앉아 스스로 생각하니
국사가 어지럽건만 안으로 건질 길이 없으니 이 일을 어찌할꼬...


그래도 현장에서 거리가 먼 왕은 사정을 몰라서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바로 현장에 있으면서 다른 누구보다 현재의 상태에 대해 잘 알고있는 자가 이순신이 출전하지 않는데 대해 험담을 하고 있었으니,
바로 무능한 주제에 욕심만 많은 경상우수사 원균이었다. 사실 누구보다도 나가 싸워서 적들을 쓸어버리고 싶은 사람은 선조나 원균이 아니라 이순신 자신이었다.
 
사실 이순신도 이미 전 해 겨울에 거제도에 있는 왜군에 대한 원균의 보고를 받고 봄이 되면 거제도를 포위할 것을 검토하였지만, 군선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계획을 철회하였다. 당시 조선 수군은 전선인 판옥선을 약 100여척가량 보유하고 있어서 500여척 이상의 전선을 보유하고 있는 왜군과 전면전을 벌일 경우에는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적들이 해전을 기피하고 육지에 은거하는 상황에서는 뭍에 접근하다가 적의 공격을 받을 위험이 있었다. 왜군은 조선군에게서 노획한 화포를 포구를 중심으로 육지의 진지에 배치해 두었는데, 비록 기술상의 문제로 그들의 전선 위에서는 사용하지 못하더라도 육지에서는 사용이 가능했고 그 위력은 대단했다. 자칫 무리한 공격을 감행하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을 이순신은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만에 하나라도 조선 수군이 전멸하는 날에는 그것이 곧 조선의 멸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 때문에 이순신의 결정은 신중할 수 밖에 없었다.

선조의 밀지를 받은 몇 일 후 삼도체찰사좌의정인
윤두수가 통제영에 도착한다. 이순신윤두수가 무리한 작전을 추진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게 된다. 이순신의 불길한 예감은 맞아 떨어졌다. 9월 19일에는 비변사가 거제도 공략을 주장하였고, 누구보다도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원균마저도 자신의 인척이었던 윤두수에게 장문포(지금의 경남 거제시 장목면 장목리)를 공격할 것을 건의한다. 이에 윤두수는 자신이 주장이 되어 수군을 비롯하여 도원수 권율의 지원하에 의병장 곽재우김덕령이 이끄는 960여 명의 육군과 함께
수륙 합동작전으로 장문포 공략을 추진한다.

1594년(선조 27) 9월 27일 이순신은 조정을 등에 업은 윤두수의 명령에 따라 전선 134척과 협선 134척을 이끌고 한산도 통제영을 출발한다.

후에 영의정 유성룡
등이 선조의 재가를 받아 작전 중지 명령이 내려지기는 했지만, 명령이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작전은 전개된 상태였다.



22. 장문포해전(1594.9.29~10.4)

임진왜란 기간에
이순신이 9차례 출전해 벌인 크고 작은 해전 가운데서 가장 성과가 작았던 해전. 총 3회의 전투가 벌어졌으며 제1차 장문포해전, 영등포해전, 제2차 장문포해전으로 세분하기도 한다.

 
제1차 장문포해전(1594.9.29)

조선 수군은 칠천량을 거쳐 1594년 9월 29일에 거제도 장문포 앞바다에 이른다. 
장문포에는 왜선 117척에 1600명이상의 병력이 배치되어 있었다. 왜군들은 장문포 입구에 뗏목을 설치하여 이순신의 함대가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굳건히 막고 있었고, 그 뗏목을 방어하기 위해 장문포 입구 양 언덕에 강력한 조총진지를 구축하여 놓았다. 거기에 더불어 진지 뒤 고지에 왜성을 구축해 놓고 조선군에게서 노획한 화포들을 설치해 놓았다.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를 구축한 것이었다. 더군다나  한산도대첩과 안골포해전 이후 항상 그랬듯이 왜군은 조선 수군에 대한 반격을 자제하고 험준한 지형에 의지한 체 넓은 바다로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나온 적도 선봉 2척을 무찌르니 육지로 올라가 더 이상의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 날은 빈 배만 깨뜨리고 물러나 칠천량에서 밤을 보낸다.

영등포해전(1594.10.1)

다음날인 10월 1일
이순신원균이억기의 함대를 뺀 나머지 함대로 영등포(지금의 경남 거제시 장목면 구영리)에 있는 왜군의 진지를 공격하기 위해 떠났다. 그러나 영등포에서도 왜군은 바닷가에 배를 대놓은 채 항전하지 않았다. 해질 무렵 장문포 앞바다로 돌아와 뭍에 배를 매려 할 즈음 조선의 군선 한 척이 갯바닥에 걸렸다. 이를 본 왜군은 작은 배를 보내어 그 군선에 화공을 감행하였다. 다행히 불은 꺼졌으나 이순신은 경계를 소홀히 한 그 배의 책임자를 처벌하였다.

이후 10월 3일까지 별다른 전투가 없는 대치상황이 이어졌다.
 

제2차 장문포해전(1594.10.4)

그러다가 10월 4일에 이르러 조선군은 다시 공격을 실시한다. 
곽재우김덕령이 군사 천여 명을 이끌고 육지로 상륙을 하고 바다에서 수군이 호응하는 수륙 연합작전이 펼쳐졌다. 개전 이후 처음으로 수군과 육군이 합동으로 작전을 한 것이었다. 이 작전으로 어느정도 왜군을 혼란시키기는 했지만 지상군이 기대만큼 활약을 해주지 못하여 적군을 바닷가로 몰아내지도 못하였고, 따라서 수군도 적을 섬멸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했다. 결국 이 날의 작전도 별다른 전과도 피해도 없이 종결되었다.

성에 틀어박혀있는 왜군을 몰아내기에는 천여 명의 군사로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에 지상군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이다. 곽재우김덕령 역시 임진왜란 당시 이름을 날리던 명장들이기에 왜군들은 육지에서의 싸움도 회피하고 성에만 틀어박혀 있었던 것이다.

10월 6 일에는 선봉을 장문포로 보냈으나 왜군은 패문을 땅에 꽂아 두고 역시 응전하지 않았다. 그 패문의 내용은 "일본이 대명으로 더불어 화친을 의논하는 터이라 싸울 것이 없다."라는 것이었다. 2차 당항포해전에서 담종인에게 패문을 보내게 요청한 것처럼 자력으로 무찌를 자신이 없는 조선 수군에 대하여 명나라의 권위를 빌려서 전투를 피하고 물러나기를 바랬던 것이다. 이 날 일본군 1명이 투항을 한 것 외에는 별다른 전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결국 10월 7일에는 곽재우김덕령 등이 먼저 퇴각하였고, 10월 8일이 되자 이순신은 일대 함대 시위를 한 후 한산도 본영으로 귀환하였다.

이 전투 이후 사헌부를 비롯한 대간들은 윤두수 뿐만아니라 권율이순신 등에게도 작전실패의 책임을 물어서 탄핵하였다. 결국, 권율이순신에 대한 탄핵은 넘어가고 윤두수만 파직되는 것으로 징계는 마무리되었지만, 윤두수도 얼마 안 가서 군기와 군정을 관장하는 판중추부사에 임명된다.

어이없는 것은 이런 와중에 자행되는 원균의 행태이다. 이미 2차 당항포해전 직후에도 통제사 이순신을 무시하고 공을 독차지하려 한 전과가 있던 원균은, 자신과
윤두수의 주도하에 의미 없는 공격이 감행되었다는 데에 책임을 느끼기는 커녕 마치 자신이 시종일관 작전의 중심에 있었던 것 처럼 장계를 올렸다. 심지어는 '불붙은 함선에 타고 있던 모든 병사가 전사하였는데도 조정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어처구니 없는 모함도 서슴치 않았다. 능력도 되지않으면서 욕심만 많은 한 사람으로 인하여 조선 수군은 큰 위기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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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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