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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산산성 [城子山山城]
김진광 북국발해탐험, 박문사, 2012.6.17

성자산산성 성벽 노출부

 
산성 성벽 축조열


성자산산성 전경(하룡촌에서, 동→서)

성자산산성(城子山山城)은 연길시에서 동쪽으로 10㎞ 떨어진 장안진(長安鎭) 마반촌(磨盤村) 산성리둔(山城里屯) 서성자산(西城子山) 위에 있는데, 산 위에 축조된 고성으로 인해 예로부터 성자산이라고 불렀다.

성자산은 대체로 말발굽모양으로, 동쪽과 동북쪽에 골짜기가 있고, 골짜기에는 각각 작은 개울이 흘러간다. 서북쪽에는 산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는데, 이것이 성자산의 주봉으로 해발은 390m이다. 그 남쪽에도 하나의 산봉우리가 있다. 동쪽 산봉우리는 해발이 277m이다. 동남쪽에도 산봉우리가 있다. 이 4개의 산봉우리 사이에는, 두 곳의 골짜기를 제외하고, 모두 산등성이와 연결되어 4개 봉우리·두 개 골짜기·네 곳의 산기슭·3개의 대지를 이룬다. 대지는 사방이 산기슭인 지역의 중간에 있고 대지는 모두 완만한 경사지로 산성 서북쪽·중간과 동남쪽에 있다.

산의 동쪽과 남쪽은 산세가 험준하고, 서쪽과 북쪽은 약간 완만하며, 서쪽은 흘러내린 산등성이와 접해 있고, 북쪽은 작은 하구에 이웃해 있다. 동쪽과 남쪽 산비탈 아래에는 장도철로(長圖鐵路)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다가 다시 북쪽으로 뻗어 있다. 남쪽으로는 부르하통하가 있는데 철로를 따라 흘러간다. 동남쪽으로 1㎞ 떨어진 곳에는 해란강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흘러 부르하통하로 유입된다. 부르하통하 남안과 해란강 양안은 충적분지이다. 동남쪽으로 2㎞ 떨어진 해란강 서안에는 2기의 고성이 있는데 발해시기에 축조하여 요금시기까지 사용된 토성이다. 산 북쪽은 협곡으로 골짜기 안에는 작은 시내가 있는데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 부르하통하로 들어간다. 북쪽으로는 높은 산등성이로 산등성이 윗부분 동쪽부분에는 고성지가 있다. 유지의 동쪽 비탈에는 산을 오르고 내려가는 "지(之)"자형 길이 있다.


성자산산성평면도

성자산산성(城子山山城)은 이러한 우월한 성자산의 지세를 이용하여 쌓았다. 산성은 불규칙한 타원형이다. 성벽은 서남쪽 산봉우리가 성 안쪽으로 뻗어 들어온 것을 제외하고 그 나머지 부분은 모두 산봉우리와 산등성이의 뒤쪽에 축조하였으며 둘레 길이는 4,454m이다. 성벽은 돌로 축조한 이후에 흙으로 덮었다. 기단부의 너비는 5~7m, 높이는 1~3m이다. 동쪽·동북쪽·서쪽·동남쪽은 모두 성문지가 있다. 동남쪽 문을 제외하고 모두 옹성이 있다. 서문 밖에는 토축 성벽이 있는데 "∧" 형태이다. 성벽 방향은 205°이며 30m를 뻗어나간 후에 방향을 105°로 바꾸어 다시 40m를 뻗어 나간다. 동남쪽 문 안에도 약간의 성벽 흔적이 있는데 역시 "∧" 형태이다. 그중에서 한쪽 담장은 방향이 100°이며 40m를 뻗어 나간다. 다른 한쪽 담장은 방향이 190°로 40m를 뻗어 나가며, 25m지점에 출입구가 있는데 너비는 1m이다.

성안 중간에 있는 대지에는 궁전지가 있다. 궁전지 기단은 계단식으로 모두 9개의 섬돌이 있는데 그 중에서 6개의 섬들이 비교적 분명하다. 섬돌은 동남에서 서북방향으로 일자로 배열되어 있으며 거리는 각각 12.5m·22m·22.5m·19m·22m·15m로 일정하지 않다. 초석의 배열은 대체로 장방형이다. 초석은 장방형으로 크기가 일정하지 않으나 대체로 비슷하다. 그 중에서 1개는 길이가 60㎝, 너비는 50㎝이며 두께는 15~28㎝이다. 궁전지에는 또한 청회색의 베무늬기와와 도기잔편 등이 흩어져 있다. 현지인들이 궁전지 부근에서 "병마안무사지인(兵馬按撫使之印)"을 수습하였다고 한다.

궁전지에서 동남쪽으로 200m 떨어진 곳에 많은 붉은색 그물무늬 또는 새끼줄무늬 기와편들이 흩어져 있는데 이것은 집안시 환도산성에서 출토된 동일 유형의 기와와 서로 같다.

성안의 서북쪽 대지에는 많은 기와편들이 흩어져 있는데 모두 청회색이며 지압문 암키와와 물결무늬 구적(勾滴)이다. "남경로구당공사지인(南京路勾當公事之印)"은 바로 이곳에서 수습된 것이다. 성 안의 동남쪽 대지에도 약간의 기와편들이 흩어져 있는데 수량은 많지 않다. 성 안의 사방이 산기슭에 연결된 곳에도 기와편들이 흩어져 있는 것은 이곳에도 건축지가 있었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여러 해 동안 성자산산성에서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그중에는 기와·청동기·철기·자기·도기와 옥기 등이 있다. 기와는 3가지로 나뉜다. 한 종류는 고구려의 그물무늬·자리무늬·새끼줄무늬 암키와이다. 두 번째는 발해시기의 지압문 암키와이다. 세 번째는 요금시기의 것으로 가장자리에 물결무늬를 하고, 그 위에 톱니 또는 매화무늬를 한 막새기와이다. 청동기는 종류가 매우 많다. 주로 청동도장[銅印]·청동거울[銅鏡]·동전(銅錢) 등이 있다. 청동도장(銅印)은 동하국(東夏國)의 "남경로구당공사지인(南京路勾當公事之印)"·"병마안무사지인(兵馬按撫使之印)"과 "구당공사지인(勾當公事之印)"이 있다. 청동거울에는 "장수부귀(長壽富貴)"·"덕부장수(德富長壽)"의 명문이 있는 네모난 거울[方鏡]이 있다. 이밖에 동겁마(銅砝碼)·작은 청동인물상·작은 청동토끼·청동바둑알[銅相棋子] 등 청동제품들이다.

철기로는 고구려 철제 솥·금대의 철제 화살촉·등자·수레바퀴·철제 도끼·철제 창 등이 있다. 도기는 고구려 한식제량관(漢式提梁罐)과 발해 요금시기의 회도편이 있다. 수습된 도기편은 모두 그릇 밑 부분과 구연부분이며 그릇 밑 부분은 모두 바닥이 평평하다. 구연(口沿)은 대체로 2종류로 나누는데 하나는 원순절연(圓脣折沿)이고, 다른 하나는 원순권연(圓脣卷沿)이다. 자기에는 백자편이 있는데 모두 가마에서 구워낸 작은 자기 접시들이다. 위에서 서술한 유물이외에도 다듬이돌[捶衣砧板]이 출토되었고 돌출된 둥근 테두리가 조각된 초석·숫돌·돌절구·옥대·원앙노리개·마노노리개 등이 있다.

성벽의 수축방법과 출토유물로 분석하면, 성자산산성은 아마도 고구려시기에 축조되어 발해·요금·동하국(東夏國)시기까지 사용되었으며, 동하국 시기에 행도남경(行都南京)의 치소가 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사료의 기록에 근거하면, 동하국 국왕 포선만노(蒲鮮萬奴)가 성자산산성에 거주하였으며, 1233년 몽골의 포로가 되어 멸망하였다고 한다.

성자산산성은 정식 발굴이 이루어지지 않아 전체적인 상황은 아직 분명하지 않지만, 연변지역 역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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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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