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9061

무법·테러 서북청년단의 망령이 떠도는 서울의 거리
[윤성한의 닥치는 대로 뉴스] 김구·제주도민 뿐 아니라 현직검사·기업가·고위공무원 등도 살해한 그들...서북청년단의 재등장 심각한 역사 퇴행현상, 보수진보의 문제 아니다
입력 : 2014-09-30  00:12:32   노출 : 2014.09.30  11:34:05  윤성한 논설위원 | gayajun@mediatoday.co.kr    

장면 1.

지난해 여름 서울 시청광장에서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을 규탄하는 시민들의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의 일이다. 광장에서 조금 떨어진 이면 도로에서 보수단체들의 맞불집회가 있었는데, 그 집회 옆쪽 골목에서 일군의 청년들과 한 초로의 남성 사이에서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장면을 목격했다.

실랑이와 말다툼 끝에 건물 뒤로 도망간 남성을 청년들은 쫒아가 폭력을 행사했다. 청년들이 백주대낮에 벌인 폭력사태로 일대의 분위기는 완전히 얼어붙었다. 건물 뒷편에서 폭행을 당한 남성은 저항했지만, 주변에 있던 경찰들도 말리기 힘들 정도로 청년들의 분노는 대단했다. 기자에게도 카메라를 뺏어버리겠다며 덤벼들어 신변의 위협마저 느꼈을 정도였다. 이들은 주변을 향해 “우리는 목숨을 걸고 이북에서 대한민국으로 탈출해 왔다. 무서울 게 없는 사람들”이라며 “대한민국에서 빨갱이들을 다 죽여야 한다”고 외쳤다. 극도로 흥분된 상태였다. 이 청년들은 보수단체 집회에 참석하러 온 탈북자 단체 회원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난폭한 행동은 참으로 어이없게 끝이 났다. 경찰 병력이 동원돼 상황을 정리하고 보니 폭행당한 남성도 보수단체인 어버이연합 소속 회원이었던 것이다. 소속이 다른 보수단체 회원들끼리 몰라보고 오해가 벌어져, 서로 촛불집회 참가자라고 생각해서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폭행사건이었다. 백주대낮에 벌어진 '정치폭력'의 결말치고는 참으로 어이없었지만, 보수적인 탈북단체 회원들의 생각과 행동이 어떤지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지난해 8월 서울시청 뒷편 골목에서 천으로 둘러싼 각목을 들고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장면.(탈북자단체 폭력 동영상 클릭하면 볼수 있습니다). 촬영= 윤성한 기자, 편집= 이치열 기자
 
장면 2.

지난 28일 20여 명의 사람들이 ‘서북청년단’이라고 쓰인 조끼를 입고 서울시청 앞 광장에 설치된 세월호희생자 합동 분양소에서 추모리본을 철거하려다 경찰과 서울시청 공무원들에게 제지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의 배후인 서북청년단 재건위의 정함철 대변인은 언론인터뷰에서 “겨울이 오는데도 진도 앞바다에서는 아무 성과도 없이 구조 활동을 하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국론분열의 한 중심에 서서 국민의 지탄을 받을 수도 있다”며 “그래서 이제는 중단시켜야 한다. 정부와 서울시도 유가족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나서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장면 1과 장면 2에서 보듯 한국사회에 ‘서북청년회’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서북청년회는 해방 직후 북한 체제를 피해 남으로 내려온 우익 기독교 성향의 인사들이 결성한 단체다. 해방정국에서 이승만에게 맞섰던 김구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가 소속된 단체로 알려져 있다. 이 단체가 제주도민들을 대상으로 벌인 폭력 ,강간, 살인 등의 만행은 당시 제주도민의 10%인 3만여 명이 희생된 제주 4.3사건 발발의 한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공산주의를 피해, 가족을 버리고 북에서 넘어온 이들은 생존수단의 필요성와 이념적 증오심으로 좌익척결을 내세운 이승만 정권의 지원 아래 전국에서 폭력, 암살 등 무차별적 테러를 감행했다. 하지 준장 등 미군정마저 이들의 파시스트적인 폭력 행위에 질려 해산을 명했지만 이승만 정권의 비호 아래 계속 활동하며, 좌익단체나 노조사무실 습격은 물론 공안검사, 고위공무원, 기업가를 살해하는 등 악명을 떨쳤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는 언론사에 대한 기물파괴, 대중문화공연에 대한 훼방 등 다양한 테러활동을 벌였다.

9월28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서북청년단재건위원회가 노란리본을 철거하겠다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트위터리안 s172212014-09-28
 
“서청(서북청년단) 단원들은 ‘4·3’발발 이전에 500∼700명이 제주에 들어와 도민들과 잦은 마찰을 빚었고, 그들의 과도한 행동이 ‘4·3’발발의 한 요인으로 거론되었다. ‘4·3’발발 직후에는 500명이, 1948년 말에는 1000명 가량이 제주에서 경찰이나 군인 복장을 입고 진압활동을 벌였다. 제주도청 총무국장 고문치사도 서청에 의해 자행되었다. 서청의 제주 파견에는 이승만 대통령과 미군이 후원했음을 입증하는 문헌과 증언이 있다.”(제주 4.3 위원회 백서 중)

“‘11월 9일 서북청년단원이 제주도 총무국장 김두현을 폭행치사했다. 서북청년단은 공산주의자로 알려진 그를 단지 취조할 의도였으며 죽일 생각은 없었다고 진술했다. (방첩대 정기보고 제263호, A-1)’-주한미육군사령부(Headquarters of United States Army Forces in Korea, HQ USAFIK)일일정보보고(G-2 Periodic Report)” (제주의 소리 ‘김관후의 4·3칼럼’에서 인용)

“(1947년) 9월 4일 부민초등학교 후면 노상에서 끔직한 저격 사건이 발생했다. 부산지방검찰청에서 출근하던 젊은 검사 정수복이 괴한 2명의 권총에 의해 현장에서 절명한 것이다. ‘정수복은 사상담당검사였죠. 그런데 공산당 피의자를 다루는 데 눈에 띄게 관대했어요. 민족진영과 경찰에서는 그를 좌경사상소지자로 의심해왔어요.’” (경향신문 87년 1월 14일자 청년운동 반세기 중. ‘’는 서북청년단 부산지회 손전씨 증언 일부)

“대선양조장 박경영 사장에 대한 암살은 줏대없는 재산가(당시의 대기업가)들의 좌고우면식 기회주의에 대한 경고의 본보기였다. 당시 부산지구에는 경인지구 다음으로 공장이 있어 적색노조가 활개치고 있었는데, 그 기업주들 대부분이 남로당계에 많은 자금을 지원하고 있었지만 민족진영(우익)에는 인색했다. 더욱이 박경영은 조선신문 사장을 겸하여 민전의장까지 맡고 있었으므로 서청이 좌경재벌 응징의 본보기로 (1947년) 9월 12일 저녁 그의 범일동 자택에서 권총으로 살해한 것이다.” (경향신문 87년 1월 14일자 청년운동 반세기 중)

“‘당시 좌익에서는 미소공위 축하 종합예술제를 열어 공산주의 선전에 열을 올렸어요. 만담가 신불출, 문예봉, 황철 등이 나와 날마다 수천명의 관객동원으로 기세가 드높았죠. 그놈의 열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서청 회원 70명을 2개조로 나눠 관람석에 잠입시켜, 1층에서 소란을 피우는 사이에 2층 관람석의 허원섭 동지가 다이너마이트를 던지는 작전이었죠.’ 중략....요란한 폭음, 무대배우들의 혼비백산, 좌익동원 관객들의 아우성과 출입구의 대혼잡, 습격은 대성공이었고, 좌익무대공연은 그날부터 중단되고 말았다.” (경향신문 87년 1월 14일자 청년운동 반세기 중 ‘ ’는 서북청년단 부산지회 선전부장 손 전 씨 증언 일부)

제주 4.3 당시 서북청년단의 행적.(제주의 소리 ‘김관후의 4·3칼럼’에서 인용)
 
“임일 일행이 전북신문을 찾아가 항의한 것은 당연한 일, 협상 조건으로 북한실정진상기를 게재하도록 요구했다. 편집국장 정모 ‘그런 것 못 싣는다.’ 임일 ‘이따위 신문 부서질 줄 알라.’ 그로부터 이틀 후 서청 대원들은 예고한대로 신문사 시설을 박살내 버렸다....전북신문은 피습상처에서 회복되지 못하고 끝내 문을 닫아버렸다.” (경향신문 87년 2월 4일 청년운동 반세기 중)

18세기 이탈리아의 역사학자 비코(Giovanni B. Vico:1668-1744)는 역사는 직선이 아닌 나선형으로 발전한다고 주장했다. 후퇴와 전진을 반복하며 역사는 발전한다는 것이다. 비코의 나선형 역사발전론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집권 이후 나타나는 한국 사회 민주주의 퇴행현상에 대해 너무 과민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든다. 역사는 또 전진할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전후좌우 사정도 따져보지 않고, 자신들의 흥분된 기분만 앞세워 “우리는 목숨 걸고 탈출했다. 무서울 게 없는 사람들”이라며 협박하는 탈북청년들의 집단폭력이 백주대낮에 벌어지고, 한국현대사에서 다시는 등장해선 안 될 정치테러단체인 ‘서북청년단’ 이름이 재등장하는 현상은 진보와 보수를 떠나 한반도 남쪽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섬뜩한 역사의 ‘퇴행현상’이다.

무법천지와 백색테러를 상징하는 서북청년단의 조끼는 독일의 나찌문장처럼 일부 극소수 극우인사들의 복고풍 향수 패션으로 끝나야 한다. 반드시.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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