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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안산성

1) 학술조사

통화시 문화국(通化市 文化局)이 1983년 봄에 제1차 조사, 동년 6월에 제2차 조사를 진행하여 산성을 실측하고 촬영하였고, 1984년 11월 27일에는 통화시 인민정부(通化市 人民政府)가 시급중점문물보호단위(市給重點文物保護單位)로 공포하였다. 1985년에도 통화시 문물조사대(通化市 文物調査隊)가 산성에 대한 조사와 실측을 재차 시행하였다. 1988년과 1989년 길림성 문물고고연구소(吉林省 文物考古硏究所)에서 두 차례에 걸쳐서도 산성을 상세히 조사하고 실측하였다. 현지 주민들은 ‘고려성자(高麗城子)’라고 부르고 있지만, ‘고려성자(高麗城子)’로 불리는 다른 성과 구별하기 위해 성이 위치한 곳의 지명을 따서 ‘자안산성(自安山城)’이라고 명명하였다.

2) 위치와 환경

자안산성(自安山城)은 통화시 강동향 자안촌 협심둔(通化市 江東鄕 自安村 夾心屯)의 북산(北山) 정상에 위치하였다. 통화시(通化市) 중심지에서 4km 떨어져 있고, 산성 서남쪽은 합밀하(哈密河), 동쪽은 혼강(渾江)에 잇닿아 있고, 산성의 남쪽에서 합밀하(哈密河)와 혼강(渾江)이 합류한다. 산성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내려다 보는 형세로서 지키기는 쉽고 공격하기는 어려운 험준한 지형이다.

3) 유적의 현황과 성곽의 구조

산성의 평면은 대략 남북이 길고 동서가 좁은 장방형(長方形)인데, 남북 길이 925m, 동서 너비 300~450m이다. 성벽은 자연산세를 잘 이용하여 축조하였는데, 산세가 비교적 완만하고 평탄한 서․북 양면에 다듬은 석재로 성벽을 축조하였다. 전체 둘레는 2,773m로서 인공으로 축조한 서벽과 남벽은 대부분 파괴되어 현재 성벽 기초만 볼 수 있고, 서벽의 북단과 북벽의 보존상태는 비교적 양호하다. 성돌은 대체로 길이 38~42cm, 너비 18~20cm이다. 현재 성벽 위쪽은 10~20cm 두께의 흙으로 덮여 있고, 성벽이 만곡하는 곳에는 바깥쪽에 보조용 성벽을 여러 겹 축조하였다. 

(1) 서벽 
길이 957m로서 돌로 축조하였다. 산의 자연지세를 따라 축조하였는데, 만곡하는 곳이 많다. 만곡하는 곳의 바깥쪽에는 1~5층의 보조용 성벽을 축조하였는데, 자연석을 퇴적하는 방식을 쌓았고, 길이나 각도는 산비탈의 경사도에 따라 다르다. 서벽 북부가 가장 많이 굽었고, 남쪽 성벽은 많이 파괴되었다. 성돌은 대부분 옮겨져서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현재 조금밖에 안 남아 있어 토벽처럼 보인다. 서벽에는 성문터가 2개 있다. 

(2) 남벽 
길이 347m로서 네 성벽 가운데 가장 짧다. 성돌은 대부분 다른 용도로 사용되어 없어졌고 현재 표고 1m 정도의 토석벽이 남아 있다. 동단은 지세가 비교적 높고 잡초가 무성하여 성벽을 쌓은 흔적이 명확하지 않다. 성벽 밖은 경사가 완만한 산비탈로서 아래쪽으로 혼강(渾江)이 흐른다. 

(3) 동벽 
길이 1107m로서 가장 긴 성벽이다. 가파른 절벽의 가장자리를 자연성벽으로 삼고, 그 위에 돌을 포개어 쌓거나 낮고 움푹 들어간 곳을 돌로 메웠다. 성벽 아래로는 혼강(渾江)이 남류(南流)하다가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흘러가면서 합밀하(哈密河)와 합류한 다음, 다시 남쪽으로 흐른다. 동벽은 자안산성에서 지세가 가장 높은 곳으로 남단과 북단의 성벽 바깥에는 평대(平臺)가 여러 개 있다. 

(4) 북벽 
길이 362m로서 축조상태나 성벽구조 등 보존상태가 가장 양호하다. 외벽의 높이는 약 2m이고, 성벽 위쪽에는 20cm 두께의 흙으로 덮여 있다. 북벽 중앙에는 성문터가 남아 있다. 성문 바깥쪽은 완만하게 경사진 산비탈로서 옛길의 흔적이 역력하며, 산비탈을 비스듬히 가로질러 산 아래로 내려갈 수 있다. 북문 동쪽 100m 지점에는 돌로 쌓은 배수구가 있고, 서쪽과 동쪽 모서리에는 각루(角樓) 시설이 남아 있다. 

(5) 남벽의 내벽 
서남 모서리 정문에서 시작하여 남벽 안쪽을 따라 약 200m 정도 축조된 토벽인데 구불구불하게 동벽을 향하고 있다. 토벽의 중간 지점에는 높이 2m 정도의 원형 흙더미가 있다.


자안산성위치도(《博物館硏究》,1991-3,73쪽)
 

 

자안산성평면도(《博物館硏究》,1991-3,74쪽)               자안산성출토토가편(《博物館硏究》,1991-3,76쪽)

4) 역사적 성격

자안산성의 성격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대립되고 있다. 먼저 한의 군현 설치와 함께 축조되어 고구려 시기뿐 아니라 요금청대까지 계속 사용되었다는 의견과 한대에만 사용되었다는 견해이다. 

한 군현 치소가 일반적으로 소규모 토성(土城)인데 비해 자안산성(自安山城)은 둘레가 2.7km에 이르는 대형 석성(石城)이며, 요․금대(遼․金代) 기와편도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고구려 이래 계속 사용되었을 것으로 파악된다. 자안산성이 위치한 통화시 일원은 혼강 상류의 중심지이고, 휘발하(揮發河)에서 용강산맥(龍崗山脈)을 넘어 통구분지로 나아가거나 부이강(富爾江) 상류에서 나고하(喇咕河)를 거쳐 통구분지로 들어갈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이로 보아 자안산성은 고구려 시기에 석성을 구축되어 혼강 상류일대의 중심성으로 기능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 일대에 고구려 초기 적석묘가 상당수 분포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를 반영한다. 다만 자안산성은 지리적 위치나 규모로 보아 단순한 군사시설이라기보다는 지방지배의 거점으로도 기능하였다고 추정된다. 

따라서 자안산성(自安山城)은 소자하 상류에서 나고하를 거쳐 혼강으로 향하던 교통로와 휘발하 유역에서 용강산맥을 넘어 혼강으로 향하던 교통로 등을 공제하던 군사방어시설로서 혼강(渾江) 우안(右岸)의 호형․축선방어체(弧形․軸線防禦體)에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였다고 추정된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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