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16842&code=116

[특별기획]홍산문화 여신상은 고대종교 유적
2008.02.19ㅣ뉴스메이커 762호

‘코리안 루트’ 1만km 대장정
동방의 신앙과 초기 문자, 한반도서 출토된 인물상도 여신 암시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공경하고 두려워한다. 이와 같은 경외사상은 곧 고대인의 종교였다. 고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종교 행사 중 하나가 제사다. 고대인의 제사 행위로는 조상에 대한 제사, 신에 대한 제사, 하늘에 대한 제사가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으뜸인 것은 인간과 가장 밀접한 혈연관계를 맺고 있는 조상에 대한 제사다. 이것은 또한 인간이 갖는 예(禮) 중에서 가장 기본으로 조상숭배사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의 주검을 묻는 무덤을 종교의 장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예의 전초이기도 하다.

동방 최초의 여신상(작은사진은 복원모형)이 발견된 요녕성 건평현 코리안루트탐사취재단. /김문석기자

동방에서 최초의 여신상은 발해 연안 북부 대릉하 유역 요녕성 건평현 우하량의 홍산문화 시기의 여신묘에서 출토된 소조 여신상이다. 이번 ‘코리아루트 대장정’ 탐사 중에 여신묘의 여신상을 직접 보았다.

인간이 모시는 제사의 대상으로 여러 가지 신이 있겠으나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신은 인간의 탄생과 안녕과 풍요를 주재하는 신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모신이다. 지모신이란 ‘대모지신(大地母神)’이라고 하여 대지를 주재하는 여신을 일컫는다. 지모신 숭상은 물론 농경사회의 대표적인 신앙이다.

여신은 고대사회 대지와 풍년 상징
 
여신은 고대 사회에서 생육을 상징할 뿐 아니라 대지를 상징하고 풍년을 상징하기도 한다. 지모신이야말로 가장 큰 생명력을 가진 신이다. 그래서 고대인들은 땅을 어머니로 생각했고, 아버지를 하늘에 비유했다. 당시 사람들은 지모신을 제사지냄으로써 만물이 소생하고 오곡이 풍성하기를 빌었다.

서요하 상류의 내몽골 적봉시 서수천 유적에서 발견된 토르소 형식의 홍산문화 시기의 소조 여인상이 있다. 그리고 요동반도 여대시 곽가촌 유적(위층)에서 출토된 소조인면에서 보이는 치켜진 눈과 튀어나온 광대뼈의 표현도 주의해서 볼 만하다.
 
한반도에서는 함경북도 청진시 농포동 유적과 옹기군 서포항 유적에서 소조 인물상이 발견되어 좋은 대조를 이룬다. 농포동 출토 인물상은 머리 부분이 깨져 없어졌으나 가슴에 팔짱을 낀 것처럼 표현하고 허리를 잘록하게 좁힌 다음 그 아래를 퍼지게 만듦으로써 여신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서포항 유적 청동기시대 문화층에서 출토된 여인상은 얼굴 부분이 깨져 없어졌는데, 유방을 표현한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넓죽한 얼굴의 아래 부위에는 구멍을 파서 입을 표시했고 굵직한 목 선이 귀밑까지 와서 귀의 표현을 가중시키고 있다. 그리고 굵은 목이 어깨로 흐르면서 가슴의 유방을 볼록하게 표현했는데, 그 수법이 매우 희화적이다.

발해 연안 북부 대릉하 유역에서는 홍산문화 시기인 기원전 4000~3000년께 이와 같은 지역에서 발견된 돌널무덤과 옥기, 여신묘와 여신상 그리고 석축제단과 임부상도 동방에서 가장 오랜 종교 유적이고 신앙의 유물이며 위대한 예술이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말하길 ‘옥은 돌 중에서도 아름다운 것(石之美者)’을 가르킨다고 했는데, ‘시경(詩經)’ 소아(小雅)에 이르기를 ‘타산지석가이위착(他山之石可以爲錯)’이라고 하였다. ‘옥은 다른 돌로 갈아야 한다’고 하였다. 이처럼 예부터 옥을 완성하는 과정을 인간의 성장 과정에 비유했고, 그 완성된 옥을 군자(君子)의 다섯 가지 덕목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리고 옥은 장식으로 예술적 가치 이외에 신분과 지위를 상징하기 때문에 정치적인 의의가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매장함으로써 영생을 기원하는 종교적인 의미도 지닌다. 그래서 발해 연안 사람(동이족)들은 무덤(주로 돌무덤)에 시신과 함께 옥을 매장한다.

 

갑골은 길흉 판단하는 점복활동
 
동북 아시아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옥은 중국 요녕성 부신시(阜新市) 사해(沙海) 유적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의 옥결(玉決이다. 일종의 귀고리다. 이와 같은 유물은 발해연안을 위시하여 중국의 동남 연안 지구 그리고 연해주와 일본에도 분포되고 있다. 발해연안에서 출토된 옥결이 가장 이른 시기다. 우리나라에서는 강원 고성군 죽왕면 문암리(文岩里) 유적에서 신석기시대의 옥결 한 쌍이 출토되었다. 그리고 경북 청도군 사촌리(沙村里) 유적에서 청동기시대의 옥결 1점이 반파된 상태로 출토된 바 있다. 

사해유적에서는 용의 형상이 출현하는데 동아시아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용의 형상이다. 옥으로 만든 용의 형상은 홍산문화 시기에 발해 연안 북부의 대릉하 유역과 서요하 유역에서 출현한다. 동방 최고의 용의 형상이 화하족(華夏族)의 본향인 황하 유역의 중원 지방을 크게 벗어난 지점인 만리장성을 넘어 한민족과 가까운 동이지역에서 형상화했다. 홍산문화의 용 모양 옥장식은 대릉하 유역에서 서남향하여 은나라 수도 은허(殷墟)에서 크게 유행했다. 한편 동남향으로 내려가 만주 지방과 한반도에서도 돌무덤의 용 모양 옥장식이 출토되었다. 이것을 우리는 ‘곡옥(曲玉)’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돌무덤에서 곡옥이 출토되는 것은 대릉하 유역의 돌무덤에서 용 모양 옥 장식이 출토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일본에서도 구주 지방과 관서 지방에서 곡옥이 출토되고 있다.

발해 연안 인류(동이족)들은 옥을 가짐으로써 영생불멸한다는 생각과 옥을 예제화함으로써 당시 고대사회의 어떤 신분상의 등급과 권력에 대한 관념을 갖고 있었다. 특히 용은 고대 농업사회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사회는 신탁(神託)으로 통치하던 사회다. 백성은 지혜가 출중하고 용맹한 사람의 출현을 갈망하고 그와 같은 인물을 추대하여 지도자로 뽑는다. 그러나 인간은 원래 부족함이 많아, 인간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 그것은 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인간이 꼭 인간을 다스리고자 할 때는 으레 한 인간에게 신령이 하강하여 그로 하여금 신을 대신하도록 했다. 이때 신탁을 위임받은 인간은 온갖 방법을 다하여 신으로 위장하고 도구를 사용해 신을 부르고 계시를 받아 자신이 신인 것처럼 행동해 신을 대신하여 집행한다. 

갑골(甲骨)이라 함은 동물의 견갑골(肩胛骨)이나 거북이의 복갑(腹甲)의 한 면에 불을 지져 다른 한 면에 나타나는 조짐을 보고 길흉(吉凶)을 판단하는 점복활동(占卜活動)을 일컫는다.

우리가 흔히 일컫는 갑골을 복골(卜骨)이라고도 하는데 영문으로는 다같이 오라클 본즈(Oracle Bones)라고 한다. 이는 일종의 종교신앙(宗敎信仰)으로, 이와 같은 행위는 고대사회에서 점복을 통하여 신을 불러들이고 신의 뜻에 따라 지배자가 지도체제나 권력 또는 권위를 장악하기 위한 통치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갑골(복골)이 출토된 유적은 발해 연안 북부지구 서요하 상류의 부하구문(富河溝門) 유적이다. C¹⁴측정 연대는 BP 5300±145년이다. 이후 하가점하층문화(BC 2000~1500)에서 갑골이 많이 발견되고 있으며, 서남향하여 은대(殷代, BC 17C~11C)에서 가장 많이 유행했다. 은상(殷商)에서는 전기에 무자갑골이 성하고, 후기에는 유자갑골(有字甲骨)이 성행한다. 이와 같은 갑골문화는 발전과 더불어 갑골문자(갑골문)가 형성되고, 마침내는 한자(漢字)로 완성되었다.

부호문자는 한자 연구에 중요 자료
 
이는 곧 종교신앙이며 바로 고대 사회의 정치다. 은상의 정치체제가 제정일치(祭政一致)임을 알 수 있다. 고조선 사회도 이와 같았으며, 신라 제2대 왕 남해차차웅(南解次次雄)은 그 대표적인 예다.

1980년대 초 경남 김해시 부원동(府院洞) 유적에서 삼한시대의 복골이 출토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는 전남 남해군 군곡리(郡谷里) 패총에서 철기시대 내지 마한시대의 복골이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이로 미루어보아 진한이나 마한 사회, 가야, 백제 초기 사회에서도 강력한 지배층이 이끄는 정치가 존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비록 문자를 대동하고 있진 않지만 갑골의 점복 재료나 방법, 점복행위 및 목적은 은나라의 갑골문화와 일치한다. 그리고 일본으로 전파되어 야요이시대에 유행했다.

문자는 고대 문명의 조건 중 하나다. 문자가 갖는 특성은 말의 기록이다. 고대사회에서는 사람과 사람, 씨족과 씨족 간 언어의 발달과 더불어 복잡해져가는 인간관계와 증대해가는 사회활동에서 말보다 어떤 기록으로서 약속이 필요했다. 고대인들은 이와 같은 충족을 얻기 위해 그림을 그려서 표현하거나 어떤 형태의 부호로 의사를 전달했다.

그림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예가 경북 울산 반구대 암각화다. 자연암 벽면에 호랑이·사슴·멧돼지 등 들짐승과 여러 형태의 인물이 새겨져 있는가 하면, 고래·돌고래·물개·거북이 등 바다동물과 배를 탄 어부가 새겨져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은 당시 인간의 행동에 대한 전달방법일 뿐 아니라 사건의 기록이요, 인간의 감정을 의화화한 대서사화다. 그것은 바로 인류의 기록이다. 
 
고대 사회에서 그림보다 비교적 발전된 전달 수단으로 인간이 사물을 기억할 수 있도록 보존 역할을 하는 일종의 원시문자인 부호문자가 있다. 부호문자는 발해 연안 북구 서요하 유역의 석붕산 유적에서 발견됐다. 소하연(小河沿) 문화 시기(BC 3000~ 2000)의 토기에 새긴 12자의 부호가 확인되었으며, 원통현 단지의 기벽에서는 7자의 부호가 확인되었다. 당시 집과 주위 환경을 도식화한 원시적인 문자로 보고 있다. 연문(連文) 형태의 부호들은 마치 당시 인류의 모종의 언어가 함축된 성문(成文)처럼 보이기도 해 한문의 기원을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소하연문화의 문자는 상형문자와 지사문자(指事文字, 상형문자에 기호를 덧붙인 글자로 上·下·大 등이 있다)의 두 가지 요소를 동시에 갖춘 부호문자로 한자의 기원을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부호문자는 대개 선사시대의 토기에 새긴 것이 많이 발견되는데, 요동반도나 한반도에서도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토기에 부호를 새긴 것이 발견되었다. 

이형구<선문대 역사학과 교수·고고학>
<후원 :대순진리회>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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