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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가 살아온다 <16> 허왕후 오빠 장유화상 존재 오랜 논란
국제신문 2003년 1월10일 박창희기자 

허왕후의 오빠로 전해지는 장유화상(일명 허보옥)은 가야불교를 거론할 때 피해갈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과연 실존 인물일까.

실존인물로 보는 쪽은 ‘가락국기’의 기록과 가락고찰에 얽힌 각종 구비전승 자료를 들이댄다. 가야의 불교 전래를 허왕후-장유화상의 도래시기와 같이 보는 것이다.

향토사학자 허명철씨는 “옛날 인도에는 긴옷을 입고 사는 장유(長遊)족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들 중 누군가가 허왕후와 함께 가락국에 와서 불법을 전파했을 것”이라며 오늘날 장유면(長有面)이 ‘長遊’에서 비롯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가공인물로 보는 쪽은 가야에 불교가 본격 전래된 때를 질지왕 2년(452)으로 볼때, 400년 전의 개국설화에 등장한 인물의 존재는 당연히 허구라는 주장이다.

‘이야기 가야사’(청아출판사)를 쓴 역사학자 이희근씨는 “허왕후 설화는 불교적으로 윤색된 이후의 산물이며, 장유화상에 대한 자료도 기껏해야 조선 후기나 구한말의 기록”이라고 지적한다.

한편 왕후사를 세운 지 500년 뒤 그 터 주변에 장유사(長遊寺)를 창건했다는 ‘삼국유사’ 가락국기의 기록도 눈여겨 볼 대목. 이것이 맞다면 장유사는 고려초에 생겼으며 사찰 이름에서 따온 듯한 장유화상도 그 즈음의 인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질지왕이 세웠다는 왕후사가 어디에 있었는지도 쟁점이다. 허명철씨는 “자료 고증과 수십차례의 현장조사 결과 김해시 장유면 태정리(태정산)가 거의 확실하다”며 현지의 폐사지를 근거로 댄다. 송원영 김해시 문화재 전문위원도 여기엔 동의했다. 그러나 아동문학가였던 고 이종기씨는 장유면 대청리 폭포수 아래쪽이 바로 절터였다며 다른 주장을 폈다.

왕후사 건립을 가야불교의 공식 시점으로 잡으려면 왕후사터에 대한 학술적 고증이 선결과제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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