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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가 살아온다 <21> 제4부 가야의 힘과 미 ⑤ 노래하는 가야토기
국제신문  박창희기자 

3세기말의 귀달린항아리. 이때부터 도질토기가 시작된다

3세기말의 대변혁

서력기원 3세기말, 낙동강 하류역(域)에서 대변혁이 일어난다. 앞 시기에 보이지 않던 도질토기(陶質土器)가 등장하고, 순장 기마용 마구와 같은 북방문화 요소가 나타나는 것이다. 김해 대성동 29호분에서 확인된 사실이다.

이 가운데 귀달린항아리, 즉 양이부호(兩耳附壺)라 불리는 토기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이전의 것과 달리, 쇳소리가 날 정도로 단단한 도질토기였기 때문.

“양이부호는 중국 서진대(西晋代)의 것으로 일본의 고고 유물과 비교해보면 기원 280년대 전후일 것으로 여겨진다. 한반도에서는 낙동강 하류역에 가장 일찍 나타나고 있다. 도질토기의 시작 신호로 보아도 될 것이다.”(부산대 신경철 교수·고고학)

도질토기는 1천도 이상의 고온에서 구운 회청색의 토기로, 이전의 와질토기(일명 김해식토기, 1~3세기에 나타남)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도질토기의 등장에 대해서는 기원전후 와질토기가 제작될 때 함께 나왔다는 견해, 와질토기에서 발전했다는 견해, 낙랑군이 멸망한 4세기초로 늦춰보는 견해 등 다양한 의견이 제기돼 있다.

신 교수의 가설도 그러한 주장 가운데 하나이나, 양이부호보다 앞서는 도질토기를 발견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상당한 공감을 얻었다. 김해 대성동 고분을 발굴한 신 교수는 이를 금관가야 성립과 연계시키고 있다.

* 글씨가 잘 안 보이므로 참고하세요.
   고령 - 대가야 그릇받침
   함안 - 화염형투창고배 
   고성 - 소가야 그릇받침
   김해 - 굽다리접시
   일본 - 스에무라, 오바데라 - 스에키 토기

절대연대 논란

가야토기는 도질토기 출현 이후 낙동강 서안에서 주로 생산된 것을 말한다. 가야토기의 압축파일을 풀어보면 가야사의 시공간이 어렴풋하게나마 보인다. 토기양식의 분포권으로 편년(編年)과 영역을 설정하는 것이다. 물론 논란이 있다.

신경철 교수와 박천수(경북대 고고인류학) 교수는 최근까지 절대연대를 놓고 첨예한 ‘토기논쟁’을 계속하고 있다.

신 교수는 가야토기를 6단계로 편년한다. 1단계는 ‘김해형 목곽묘’(대성동 29호분) 출현시기, 즉 양이부호가 등장하는 3세기말이다. 이어 대성동 고분군 축조중단 시기를 4단계로 보아 4세기 3/4분기로 설정한다. 이는 경주 월성로 가-29호분의 토기들을 근거로 했다.

반면, 박천수 교수는 신 교수보다 절대연대를 50년 정도 올려 잡고 있다. 박 교수는 일본 고분연대의 연구성과를 추출하고 국내 고고학 자료를 비교 검토했다. 그는 백제 무녕왕릉과 고령 지산동 39호분에서 각각 출토된 용봉문 환두대도를 동일형식이자 동일시기의 것으로 본다.

실례로 기원 400년 광개토대왕 비문의 경자년, 즉 고구려 남정 전후 시기의 영남지역 고분인 경주 황남동 고분(3, 4호분)과 동래 복천동 고분(21, 22호분)에 대해 신 교수는 5세기 2/4분기, 즉 430년대로 보지만, 박 교수는 4세기 후반대로 파악한다.

경북대 이희준(고고인류학) 교수는 신라고분에서 나온 마구(馬具)를 대상으로 절대연대를 도출하고 있는데, 박 교수의 견해와 비슷하다.

부산대와 경북대의 토기 편년이 다른 것이다.

토기 편년에서의 50년 시차는 아주 큰 문제다. 금관가야의 멸망과 한반도 도질토기의 일본 전파 등이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가야지역에서 아직 기년(紀年)을 말해주는 비석 등이 발견된 예가 없어 절대연대 논란은 한동안 계속될 수밖에 없다.

토기로 본 영역

토기 분포권을 통한 영역설정 또한 학계의 ‘뜨거운 감자’다.

신경철 교수는 금관가야 전성기에는 낙동강 하류역은 물론 서부경남, 심지어 영산강 유역까지도 금관가야의 정치연합에 가담한 것으로 본다. 신 교수는 일본에서 출토되는 초기 스에키가 영산강 유역의 토기와 유사하다는 것을 근거로 삼는다.

부산시립박물관 홍보식 학예연구관은 ‘외절구연고배’라 불리는 토기를 주목한다. 이 토기는 4세기 후반~5세기 초의 짧은 시기에 나타나며 김해·부산지역에서만 발견되고 있다.

이를 근거로 홍 학예연구관은 “외절구연고배의 분포범위는 금관가야의 최대 영역을 나타낸다. 그 범위를 보면 동으로는 철마-해운대, 북으로는 낙동강, 서로는 창원 가음정동-도계동-진해 웅천으로 연결되는 지역이 된다”고 주장한다.

이와관련, 그는 4세기 이후 김해세력은 외절구연고배와 노형토기가 분포하는 부산의 복천동 세력까지 포괄했을 것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대가야의 영역에 대해 박천수 교수는 “대가야 양식의 토기는 고령 지산동 35호분 단계인 5세기초에 성립하며, 고령을 중심으로 합천 거창 함양 남원 장수 진안 구례지역에 6세기 중엽까지 넓은 분포권을 형성한다”고 말한다.

같은 방법으로 김형곤 창원대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아라가야(안라국)는 5세기를 지나면서 함안분지를 중심으로 그 외곽 지역인 칠원 창원 진동 군북 의령권까지 직경 35㎞의 영역을 설정할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함안지역의 특징적 토기인 화염형투창고배가 김해, 경주를 비롯, 일본 긴키지방(오사카)에서도 다수 출토되고 있는 현상도 주목된다. 화염형투창고배는 굽다리부에 불꽃모양(火焰形)의 굽구멍(透窓)이 뚫린 독특한 형태의 토기다.

이주헌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4세기때 함안양식 토기문화의 전개와 화염형투창고배의 상호관계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고구려 신라 백제보다 더 풍성하고 다양한 토기를 남기고 사라진 가야. 최근 활발한 발굴조사 덕에 ‘말하는 가야토기’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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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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