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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가 살아온다 <33> 제6부 깨어나는 가야 '김해 대성동 전시관 화제'
국제신문  입력: 2003.06.12 20:30  박창희기자

금관가야인이 되살아났다. 지금부터 1천6백여년전, 김해 예안리 및 대성동에 살았던 무사와 여자다. 무사들은 철갑옷에 창과 환두대도를 들고 있다.

김해시는 대성동 유물전시관 개관을 앞두고 최근 금관가야인 5명(남자 무사 4명, 여자 1명)을 복원, 전시관에 들여놓았다. 이 중 여자는 랜티큘러(영상변화 표시장치)로 제작돼 생동감을 주고 있다. 이같은 복원은 국내 처음이다.

예안리 19호분 인골을 토대로 복원된 남자무사 2명은 북방계 형질로, 코가 오똑하고 얼굴이 갸름한 미남형이다. 발굴 당시 부장품으로 미뤄 상위계층의 무사로 추정된다. 반면 예안리 41호분의 남자 2명은 코가 옆으로 퍼져 낮고 눈에 쌍꺼풀이 져 있어 남방계 형질의 특성을 보여준다. 이들의 평균키는 167.4㎝로 남방계가 상대적으로 작다.

복원작업을 맡았던 한서대 부설 ‘얼굴연구소’ 조용진 소장은 “예안리의 가야인은 북방계·남방계가 반반씩 섞여 있어 주민 형질특성 및 변화과정을 보여준다”며 “편두(이마 부위를 납작하게 하는 풍습)를 한 사람은 대체로 남방계였다”고 설명했다.

 
랜티큘러로 복안(復顔)된 ‘금관가야 여자’도 관심거리. 대성동 57호분 목곽묘의 주인이었던 이 여자는 키 149.7㎝에 이마가 넓고 이목구비가 얼굴 아랫쪽으로 처져 있다. 때문에 전형적인 한국인의 모습과도 다소 차이가 난다.

30대 초반으로 추정된 이 여자는 발굴 당시 좌측 손 부위에 평소 사용한 생활도구로 여겨지는 자그마한 칼들을 놓아두고 있었다.

복안 작업을 한 동아대 김재현(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골반 상태로 보아 1~2회 출산경험이 있고, 다리근육이 발달해 생전에 육체노동에 종사했던 것 같다. 치아를 보면 발육기에 영양이 부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 금관가야인은 내달 10일부터 시민들과 만난다.

/ 박창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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