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이신왕[久尒辛王,?~427]  

백제의 제19대 왕 
재위기간 420년~427년

성은 부여(夫餘)이고 이름이나 시호 등은 전해지지 않는다. 백제 18대 전지왕(腆支王, 재위 405~420)과 팔수부인(八湏夫人)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구이신왕(久尒辛王)에 대해서는 사서(史書)들에도 거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서 자세한 행적이 확인되지 않는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도 전지왕의 맏아들로 태어났으며 전지왕이 죽은 뒤에 왕위에 올라 재위 8년째 되는 겨울 12월에 죽었다는 내용만 전해진다. 그리고 《송서(宋書)》에도 430년 중국 남조(南朝) 송(宋)나라의 문제(文帝, 재위 424~453)가 구이신왕의 뒤를 이어 백제의 왕위에 오른 비유왕(毗有王)이 전지왕의 작호(爵號)를 계승할 수 있게 했다고 기록하고 있어서 구이신왕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는 구이신왕의 재위기간이 비교적 짧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삼국사기》에는 비유왕 3년에 상좌평(上佐平) 여신(餘信)이 죽자 해수(解須)를 상좌평으로 임명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구이신왕의 재위 기간에도 전지왕 때인 408년에 상좌평으로 임명되었던 여신이 재상으로서 군정(軍政)과 내정(內政)을 총괄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여신은 전지왕의 이복동생이므로 구이신왕에게는 숙부가 된다.

그리고 《송서》 ‘백제전(百濟傳)’에는 송나라 문제가 425년에 백제의 왕이 해마다 사신을 보내온 사실에 관해 언급했다는 기록이 전해지는데, 이는 구이신왕 때에 백제가 남조의 송나라와 긴밀한 외교관계를 유지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것은 당시 중국 남북조의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맺으며 백제를 향한 남진정책을 추진했던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구이신왕은 왕위에 오른 지 8년 만인 427년에 죽었으며, 그의 맏아들인 비유왕이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그런데 《삼국사기》에는 비유왕이 구이신왕의 맏아들이라고 기록하면서 그가 전지왕의 서자라는 이야기도 있으며 어느 것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는 내용도 전하고 있다. 곧 비유왕이 구이신왕의 아들인지 이복동생인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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