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하단

남경남해부 [南京南海府]
집필자 이용범
 
5경 중의 하나이나, 유일하게 한반도 안에 두었다. 경(京)에 들어 있으나 발해의 실제적인 수도가 된 일은 없다. ≪신당서 新唐書≫에는 발해에서 신라로 통하는 교통의 요충지로 적혀 있다. 속주는 옥주(沃州)·정주(睛州)·초주(椒州)의 3주가 있다.

남해부의 정확한 위치비정은 발해사에서 어려운 문제로 손꼽히고 있다. 남경남해부의 위치비정을 처음 시도한 정약용(丁若鏞)은 이를 함경남도 함흥으로 추단한 바 있다. 그 뒤 함경북도의 종성설(鐘城說)·경성설(鏡城說), 함경남도의 북청설(北靑說) 등이 거론되어 왔으나 아직 정설은 없고 함흥설이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그 지역의 특산품으로서 남해부의 곤포(昆布:다시마)와 시(豉:메주), 옥주(沃州)의 면(緜:누에에서 뽑아낸 실) 등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 오경
 
[참고문헌]
『신당서(新唐書)』
『아방강역고』(정약용)
「渤海國の疆」(松井等, 『滿洲歷史地理』, 1915)
「北滿の二大古都址·東京城と白城·」(鳥山喜一, 『京城帝國大學滿蒙文化硏究會報告』, 1935)
『日本滿洲交通略說』(內藤虎次郎, 東洋文化史硏究, 1936)
「渤海國地理考」(和田淸, 『東洋學報』 36·4, 1954) 


옥주 [沃州]
집필자 송기호

62주(州) 중의 하나이다. 남경남해부(南京南海府)에 속하며, 수주(首州)이기도 하다. 따라서 치소(治所)는 남경남해부의 자리에 함께 두었을 것이다.
 
옥저(沃沮)·취암(鷲巖)·용산(龍山)·빈해(濱海)·승평(昇平)·영천(靈泉)의 6개의 속현(屬縣)이 있었으며, 옥저현이 수현(首縣)이었다. 한편 이곳의 특산물로는 면이 유명하였다. 이는 목면(木棉)이 아니고 뽕나무누에나 멧누에[蠶]의 고치로 만든 풀솜을 가리킨다.
 
[참고문헌]
『신당서(新唐書)』
『渤海國志長編』(金毓黻, 華文書局, 1934)
「渤海顯州之布·沃州之綿辨析」(方學鳳, 『연변대학학보사회과학판』, 1984年 4期)
「渤海史上の諸問題」(鳥山喜一, 『風問書房』, 1968)
「渤海國地理考」(和田淸, 『東亞史論叢-滿洲篇-』, 1955)


정주 [睛州]
집필자 송기호

혹은 청주(晴州)로도 표기되어 있다. 62주(州) 중의 하나로서 남경남해부(南京南海府)에 속하였다. 그 위치에 대해서는 함경북도 성진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 확실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천청(天晴)·신양(神陽)·연지(蓮池)·낭산(浪山)·선암(仙巖)의 5개 속현이 있었으며, 천청현이 수현(首縣)이었다.
 
[참고문헌]
『신당서(新唐書)』
『요사(遼史)』
『渤海國志長編』(金毓黻, 華文書局, 1934)
『渤海史上の諸問題』(鳥山喜一, 風間書房, 1968)
『渤海國地理考』(和田淸, 東亞史論叢, 1955)


초주 [椒州]
집필자 송기호

『신당서(新唐書)』에 기록된 62주(州) 중의 하나로서 남경남해부(南京南海府)에 속한다. 위치에 대해서는 함경북도 경성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 확실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초산(椒山)·초령(貂嶺)·시천(澌泉)·첨산(尖山)·암연(巖淵)의 5개 속현이 있었으며, 초산현이 수현(首縣)이었다.
 
[참고문헌]
『신당서(新唐書)』
『요사(遼史)』
『渤海國志長編』(金毓黻, 華文書局, 1934)
『渤海史上の諸問題』(鳥山喜一, 風間書房, 1968)
『渤海國地理考』(和田淸, 東亞史論叢-滿洲篇-, 1955)


출처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11769 (남경남해부)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38765 (옥주)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0899 (정주)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7063 (초주)




Posted by civ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