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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성(國內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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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성지 CORRONA 위성사진(1968년)

 국내성지 ICONOS 위성사진(2004년)  2000~2003년 국내성지 발굴현황 및 평면도


1. 유적 개관

국내성지는 중국 길림성 집안시 압록강 우안의 통구분지에 위치했다. 통구분지는 남쪽으로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의 만포시와 마주보며, 북쪽으로는 백두산에서 뻗어내린 노령산맥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통구분지는 동서 길이 10km, 남북 폭 2~4km로서 압록강 중류일대에서 가장 넓은 분지이다. 또한 압록강 중상류의 수로망을 총괄할 수 있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국내성지는 이러한 통구분지의 서쪽 평지에 자리 잡고 있다. 현재 성 내부는 집안 시가지의 중심부로서 현대식 건물로 가득 차 있다. 서쪽의 통구하, 남쪽의 개울과 압록강이 천연 해자를 이루며, 북쪽의 우산은 자연 방어벽을 형성하고 있다. 국내성지의 평면은 네모꼴로서 동벽 554.7m, 서벽 664.6m, 남벽 751.5m, 북벽 715.2m로서 총 둘레는 2686m에 달한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국내성지를 금나라 황성으로 인식했다. 20세기 전반 일본학자들이 국내성지를 여러 차례 조사하며 실측 도면과 사진 자료를 많이 남겼다. 다만 1920~1930년대에 중화민국 정부가 성곽을 수리하고 성문을 신축하는 과정에서 원형이 많이 훼손되었으며, 1949년 중국정부 수립 이후 현대식 시가지를 개발하는 과정에서도 동벽과 남벽이 없어지는 등 성곽이 많이 파괴되었다.

2) 학술조사

국내성(國內城)은 20세기 초 이래 여러 차례 조사되었다. 1905년에 도리이 류죠(鳥居龍藏), 1913년에는 세키노 다다시(關野貞)가 집안(集安)일대를 처음 조사하였고, 1912년 당시 집안현성이었던 국내성의 동․서․남문을 세우고, 서역에 치․성가퀴․각루를 축조하는 등 대대적으로 수리하였다. 1936년에는 이케우찌 히로시(池內宏)와 미즈노 세이치(水野淸一)가 함께 성벽을 비교적 상세히 조사하고 실측하였다. 본격적인 조사․발굴은 1960년대부터 중국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1963년 목욕탕을 짓다가 건물터를 발견한 것을 비롯하여 1970년에는 운동장 서쪽에서 굴착작업을 하던 중 발견된 유구를 조사 하였다. 1964년 4월 20일 길림성(吉林城) 제1급 중점문물보호단위(重點文物保護單位)로 지정되었다. 1975년에는 집안현(集安縣) 청사(廳舍)의 기초홈을 파던 중에 건물터를 발견한 바 있고 특히 1975~1977년에는 성곽 전체를 정밀 조사했는데, 성벽 10곳을 절단하여 발굴한 점이 주목된다. 2000년도부터 2003년도까지 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와 집안시문물보관소를 중심으로 국내성 8개 지점에서 고고학적 조사가 실시되었는데 국내성지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사전 발굴이었으며 성벽 주변의 민가를 철거하여 원상을 복원하는 것까지 목표를 둔 조사였다. 

3) 위치와 환경

국내성(國內城)은 중국 길림성 집안시(吉林城 集安市) 압록강 우안(右岸)의 통구분지(通溝盆地)에 위치하였다. 성의 남쪽으로는 압록강이 서남쪽으로 흐르고, 서쪽에는 노령(老嶺)에서 발원한 통구하(通溝河)가 남류(南流)하여 압록강으로 흘러든다. 동쪽 6km에 용산(龍山), 북쪽 1km에 우산(禹山)이 있고, 서쪽으로는 통구하(通溝河)를 건너 1.5km 거리에 칠성산(七星山)이 있다. 서쪽의 통구하(通溝河), 남쪽의 작은 개울과 압록강 등은 천연의 垓字를 이루며, 동쪽과 북쪽의 산봉우리들은 자연적인 방어벽을 형성하고 있다. 국내성은 이와 같은 주변 자연지형을 충분히 이용하여 건설된 도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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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성 북벽1  국내성 북벽2  1930년대 작성된 성벽 단면도



 1910년대 국내성지 북벽(1910년)   1930년대 국내성지 북벽(1930년)   1970년대 발굴한 T5 성벽 단면도 



 국내성 남벽  국내성 서벽의 북쪽부분  1930년대 국내성지 서벽 전경(1937~1940년)


4) 유적의 현황과 성곽의 구조

국내성은 평원에 자리잡고 있는 평지성으로 내외벽을 장방형(長方形) 또는 방형(方形)으로 다듬은 쐐기형 돌로 반듯하게 축조하였으나 많이 파괴되었다. 성의 평면은 네모꼴로 방향은 155도인데, 동서 방향은 압록강의 물 흐르는 방향과 대체로 일치한다. 남벽의 서쪽 부분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으며, 북벽은 전체적으로 잘 보존되어 있지만 동쪽 끝부분과 서북쪽 모서리 부분이 많이 파괴되었다. 서벽은 서문을 경계로 북쪽 부분은 잘 보존되어 있지만, 남쪽 부분은 거의 파괴되었다. 또한 서쪽의 통구하(通溝河), 남쪽의 압록강과 작은 개울은 자연적인 해자를 이루고 있고, 북벽과 동벽 바깥에는 폭 10m 전후의 해자(垓字)가 둘러져 있었다. 1913년과 1936년 조사시에는 해자의 모습을 뚜렷이 관찰할 수 있으나, 현재는 거의 메워져 흔적조차 사라졌고 민가가 들어섰다. 

성벽은 지표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10~15cm 정도씩 안으로 물리면서 축조하였는데, 이러한 현상은 북벽에서 가장 뚜렷이 관찰할 수 있으며 안으로 물려 쌓은 층수가 11층이나 된다. 서벽 남단에는 4층, 동벽에는 6층 정도 안으로 물려 쌓았으며, 개축한 것으로 추정되는 서벽 북단과 남벽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관찰할 수 없다.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은 대략 세 종류로 나뉜다. 먼저 잘 다듬은 쐐기형 돌로 가지런하게 쌓은 부분인데, 고구려 시기 성벽으로 하단부에 많이 남아 있다. 북벽 하단부에 퇴물림 방식으로 축조한 고구려 시기 성벽이 잘 남아 있다. 다음으로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성돌로 불규칙하게 쌓은 부분인데, 20세기 초에 개축한 성벽으로 중간이나 상단부에 많이 남아 있다. 마지막으로 크기나 석질이 다른 성돌을 무질서하게 쌓은 부분인데, 만주국이나 중국 내전기에 수리한 성벽이다. 

1975~1977년에 성벽 10곳을 발굴하여 고구려 시기에 석축 성벽을 한 차례 이상 개축한 사실을 확인했다. 또한 석성 아래에서 토성을 발견했다고 하는데, 발굴자들은 이를 한 현도군의 군현성과 관련시켰다. 이에 대해 석성과 구별되는 별개의 토성이 아니라 석성 기초부로 파악하기도 한다. 그런데 2000~2003년도 발굴시에는 토축 부분을 확인하지 못헸다. 토축 성벽의 유무는 국내성지의 축성 시기와 관련하여 중요한 문제이므로 향후 더욱 정밀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다. 

성벽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치를 설치했는데, 1910년대만 하더라도 42기나 남아 있었다. 1975~1977년 조사할 때. 14기의 치를 확인했고, 1990년에도 북벽 중앙에서 치를 발견했다. 각 치의 크기는 길이 8~10m, 너비 6~8m이며, 거대한 화강암 석재로 기초부를 견고하게 축조했다. 또한 모서리마다 각루가 있었는데, 2000~2003년도에 동북과 서남 모서리에서 각루 유적을 발굴했다. 그리고 20세기 전반만 하더라도 성벽 위에 성가퀴가 잘 남아 있었는데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국내성지 성문의 위치와 수는 조사 시점마다 조금씩 다르게 파악되었다. 가령 1913년에는 동문 북문 남문 1개씩, 서문 2개 등 5개를 확인했지만, 1930년대에는 각 성벽마다 1개씩 모두 4개의 성문을 확인했다. 그리고 1975~1977년에는 동문 서문 2개씩, 남문과 북문 2개씩 모두 6개의 성문을 확인했고, 2000~2003년에는 동문2개, 서문 1개, 북문 4개, 남문 2개 등 모두 9개의 성문을 확인했다. 

조사 시기마다 성문의 위치와 수를 달리 파악함에 따라 간선 도로망도 다르게 설정되었다. 가령 1913년에는 동서도로 1개와 서로 엇갈린 남북도로 2개가 간선 도로망을 구성했다고 보았지만, 1975~1977년에는 동서도로 2개와 남북도로 1개가 간선도로망을 구성했다고 파악했다. 반면 북문을 여러 개 확인한 2000~2003년에는 동서도로 2개와 남북도로 3개가 간선 도로망을 구성했다고 파악했다. 

1913년에 남쪽 동문과 북쪽 서문 바깥에서 옹성을 확인했지만, 그 뒤 성문을 신축하거나 시가지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모두 유실되었다. 또한 1913년에 남쪽 서문이 어긋문식 옹성으로 확인되었는데, 역시 1920년대에 성문을 신축하는 과정에서 변형되었다가 2000~2003년 발굴시에 원형을 재확인했다. 또한 2000~2003년에 중앙 북문과 서쪽 북문 좌우에서 적대(성문 좌우의 치성)를 확인하기도 했다. 

한편 서벽 북단의 바깥쪽에서 동서 방향으로 놓인 배수로가 발견되었다. 바닥에 판석을 깔고, 2단으로 벽을 쌓은 다음, 커다란 판석으로 뚜껑을 덮었다. 현재 남아 있는 길이 16.25m, 너비 0.7~0.8m, 높이 1.9~2.1m이다. 현재 배수로는 서벽 북단의 바깥쪽에 위치해있지만, 본래 배수로 위로 서벽이 지나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배수로 안쪽에 위치한 현재의 서벽 북단이 본래 성벽이 아니라 개축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데, 이러한 서벽의 대대적인 개축은 고구려 시기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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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성 서남벽과 치 국내성지 동북모서리와 각루(1935년) 국내성지 서북모서리와 각루(1935년)



 국내성지 서북 중단의 치성(1910년)   1930년대 개축한 국내성 동문  

 
 국내성 서벽 배수구의 내부  국내성 서벽 배수구의 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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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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