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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이름’ 요구하면 들이대는 경찰 채증 카메라
노골적으로 대담해지는 경찰 채증…인권위 권고 무시·세월호 유가족까지 채증
입력 : 2014-10-07  19:06:13   노출 : 2014.10.09  20:37:34  강성원 기자 | sejouri@mediatoday.co.kr    

“나는 여태껏 시위에 한 번도 참여해 본 적 없다. 노란 리본을 달지도 않고 내 손에는 영화티켓 밖에 없었는데 경찰의 신분증 요구에 항의하자 동의도 없이 채증을 했다. 선량한 시민이 정당한 권리를 찾는 행위조차 시위로 규정하고 범죄자로 취급받는 기분이 들었다.”

서울시 종로구 신교동에 사는 김 아무개(32)씨는 지난 8월 30일 저녁 아내와 함께 예매한 영화를 보기 위해 차가 있는 집으로 가다 겪은 ‘황당한’ 경험을 미디어오늘에 털어놨다. 필운동 회사에서 나와 불과 30m도 안 되는 거리에서 경찰이 신분증을 요구하며 길을 막았기 때문이다.  

김씨에 따르면 당시 김씨의 아내가 이 동네 주민이라며 가려고 하자 한 남성 경찰관이 김씨의 아내를 팔로 밀쳐내며 재차 신분증을 요구했다. 이에 김씨가 아내에게 함부로 손대지 말라고 항의했고, 해당 경찰관은 “손 안 댔는데 팔 댔는데”라며 반말로 조롱했다.

영화 예정 시간에 늦어 화가 난 김씨는 “경찰의 소속과 성명을 밝히면 신분증을 보여주겠다”고 했지만 경찰 기동대를 관리하던 간부는 “신분증을 확인해주면 통과해 주겠다”는 말만 반복했고, 또 다른 경찰이 뒤에서 채증을 하기 시작했다고 김씨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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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30일 서울 종로구 필운동 인근에서 시민을 채증 중인 경기지방경찰청 10기동대 소속 경찰. 사진=시민 제보 동영상 갈무리
 
김씨는 경찰의 이 같은 행동에 불쾌감을 표시하며 채증을 하지 말라고 요구했지만 경찰은 아무런 대답이나 설명 없이 채증을 계속했다. 어디 소속이냐는 김씨의 거듭되는 질문에 처음에는 ‘서울지방경찰청’이라고 했다가 다시 ‘경기지방경찰청’이라고 말을 바꾸는 등 정확한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김씨는 경찰의 이 같은 행위가 위법하다고 판단, 경찰청에 해당 기동대 간부의 소속과 성명을 알려달라는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그 결과 이 간부는 경기지방경찰청 소속의 정 아무개 경감인 것으로 밝혀졌다.

정 경감은 김씨에게 보낸 답변서에서 “당시 김씨의 아내에게 했던 조치는 신분확인 없이 통과하려는 것을 다른 방도가 없어 부득이 팔로 가로막았던 것”이라며 “통상 집회관리 시 상호대화가 시비가 되고 더 큰 다툼으로 확대되는 경우가 많아 우리 대원에 대해 대화 금지 조치를 취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자신의 소속과 성명을 밝히지 않고 불심검문을 하거나 범죄자가 아닌 시민을 상대로 동의 없이 촬영하는 것은 형법상 직권남용과 경찰관직무집행법 위반에 해당한다.

경찰청 예규인 채증활동 규칙에는 경찰 채증에 대해 ‘각종 집회·시위 및 치안현장에서 불법행위자의 증거자료 확보를 위함’, ‘불법 또는 불법이 우려되는 상황을 촬영, 녹화 또는 녹음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4월 “경찰은 ‘불법이 우려되는 상황’을 확대해석해 채증 활동이 광범위하게 이뤄지면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집회 참가자가 불법행위를 하지 않은 경우 동의를 구하지 않는 채증 활동은 초상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경찰이 영장 없이 채증을 하려면 불법행위가 행해지고 있거나 행해진 직후, 증거보전의 필요성 및 긴급성이 인정되는 경우로 제한해야 한다”며 “위법에 대한 증거수집 등 ‘경찰 채증의 필요성’과 채증 과정 중 집회참가자에 대한 ‘인권침해 예방’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조화될 수 있도록 경찰 채증 활동 등의 적정성에 대한 관리·감독을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인권위 권고 이후에도 세월호 희생자 추모집회 등에서 경찰의 무분별한 채증은 계속되고 있다. 김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4·16 세월호 참사 이후 7월 말까지 전국에서 열린 세월호 관련 집회에서 경찰이 채증한 것만 219건에 달했다.
 
▲ 지난해 12월 22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 본부 앞에서 철도노조 지도부를 검거하러 온 경찰이 조합원과 시민들을 채증하고 있다. 사진=이하늬 기자
 
앞서 경찰은 세월호 침몰 사고 직후 지난 4월 20일 정부의 더딘 구조·수색작업에 항의하며 전남 진도체육관에서 청와대로 향하던 세월호 참사 가족들의 통행을 제지하고 채증해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또한 지난달 3일에는 청와대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귀갓길을 경찰이 막고 신분증을 요구하는 등 불심검문을 벌여 논란을 빚었다. 특히 이에 항의하는 주민을 불법 채증하고 노란 리본을 착용했다는 이유로 경찰 동행에 동의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경찰의 공권력 남용과 불법 채증 활동에 대해 김랑희 인권단체연석회의 공권력감시대응팀 활동가는 6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채증의 합·불법을 떠나 집회·시위와 관련된 공간에서 광범위한 채증이 이뤄지다 보니 집회 참가자들을 비롯해 정당한 항의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경찰이 채증을 통해 사후적 처벌을 강화하고 있는데 많은 사람을 채증으로 소환해 벌금형에 처하는 등 경제적인 압박을 주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활동가는 “밀양에서는 경찰이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을 비웃으면서 채증해 힘들게 싸우고 있는 당사자들에게 큰 상처와 모멸감을 주기도 했다”며 “자신들의 채증은 정당한 공무집행이라고 하면서 정작 시민들이 경찰을 찍으면 엄청난 사생활 침해인 것처럼 촬영을 회피하고, 카메라가 있으면 말을 안 하겠다는 등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기본권을 침해하는 경찰 채증에 대한 시민들의 반발이 확산되자 강신명 경찰청장은 지난달 29일 기자간담회에서 “(경찰 채증이) 너무한 경향이 있었음을 인정한다”며 “집회·시위 현장에서 경비 경찰이 활용하는 채증 카메라는 가급적 명확한 불법행위가 있거나 경찰 스스로 절차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활용토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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