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bit.ly/ZC4Jf0

무령왕

백제의 제25대 왕
생몰년 : 462-523
재위기간 : 501-523

무령왕(武寧王)은 백제의 제25대 왕으로 이름은 사마(斯摩)이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는 제24대 동성왕(東城王)의 둘째 아들로 되어 있으나, 무령왕이 곤지(昆支)의 아들이며 동성왕과는 이모형제(異母兄弟)가 된다는 견해도 있다. 아들은 제26대 왕인 성왕(聖王)이다. 무령왕은 462년에 태어나 40세(501)에 즉위하였다. 왕은 23년 재위기간 동안 백가(?加)의 반란을 진압하고 왕권의 안정과 국력의 부흥에 힘쓰고 523년에 사망하였다. 1971년에 발견된 무령왕릉과 지석은 백제사 연구에 큰 계기가 되었다.

전문정보

백제 제25대 무령왕(武寧王)의 이름은 『삼국유사』왕력편과 『삼국사기』권26 백제본기4 무령왕 즉위년조에 사마(斯摩)로 나와 있으며, 『삼국사기』의 같은 조 세주에는 융(隆)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1971년 출토된 무령왕릉의 지석(誌石)에는 사마(斯摩)로 되어 있다.『삼국유사』왕력편에는 “호령왕(虎寧王)”이라고 적혀 있는데, 이것은 고려의 제3대 왕인 정종(定宗)의 이름인 무(武)를 피하기 위한 것이다.

『삼국유사』와『삼국사기』에서는 무령왕이 동성왕(모대왕)의 둘째 아들로 되어 있다. 그런데『일본서기』권16 무열기 4년조에는 두 가지 설이 혼재되어 있다. 즉 본문는 무령왕이 개로왕의 아들이라고 기록한 반면에, 본문에 인용된 『백제신찬(百濟新撰)』에는 무령왕이 개로왕의 아우인 곤지(昆支)의 아들이며 동성왕의 배다른 형(異母兄)이라고 되어 있다. 이 기록과 백제 왕계의 계보를 고려해 무령왕을 곤지(昆支)의 아들로 보기도 한다.(이도학, 1995)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지석(誌石)에 따르면 무령왕은 개로왕 8년(462)에 태어나 40세(501)에 즉위하였다. 왕은 즉위 후 동성왕을 살해하고 반란을 일으킨 백가(?加)를 처단하고 왕권의 안정과 국력 부흥에 힘썼다. 그는 동성왕 피살의 원인이 된 신진세력의 권한을 일정하게 억제하면서 귀족세력들의 세력 균형을 추구하였다. 그리고 지방통치를 위해서 호족이나 중앙의 유력한 귀족들이 파견된 담로(擔魯)에 왕의 자제(子弟)와 종족(宗族)을 파견한 것으로 보인다.『양서』권54 열전48 백제전에 따르면 “도성을 고마(固麻)라하였고 읍(邑)을 담로(?魯)라 하였는데, 중국의 군현(郡縣)과 같은 말이다. 그 나라에는 22담로가 있는데, 모두 (왕의) 자제(子弟)와 종족(宗族)을 나누어 거처하게 하였다(號所治城曰固麻 謂邑曰?魯 如中國之言郡縣也 其國有二十二?魯 皆以子弟宗族分據之)”고 나와 있다. 이 기사를 무령왕대의 사실로 이해하는 입장에서 보면, 무령왕은 왕권의 강화를 위해 왕족을 중용하는 정책을 실시한 것으로 보인다.(노중국, 1991) 즉, 무령왕은 과거 백가(?加)와 같은 신진세력을 중요 지방에 보내는 대신에 왕족들을 지방에 파견하여 왕권의 안정을 추구했던 것이다. 

무령왕은 재정의 안정적인 확보를 위해 수리시설을 넓히고 유민들을 귀농시키는 정책을 실시하였다.『삼국사기』권26 백제본기4 무령왕 10년조에 “봄 정월에 명령을 내려 제방을 튼튼하게 하고 중앙과 지방에서 놀고먹는 자들에게 농사를 짓게 하였다(春正月 下令完固防 驅內外游食者歸農)”는 기사가 있다. 이것은 백제가 한강을 상실한 후 수리시설의 확충과 호남평야를 개발함으로써 경제적 기반을 넓히기 위한 조치로 이해된다.(양기석, 1995) 대외적으로도 무령왕은 중국의 양(梁)으로부터 작호를 받고 고구려의 침공을 막아냈으며 가야지역에 적극적으로 진출하여 백제의 영향력을 확대하였다. 무령왕의 백제 중흥정책은 뚜렷한 성과를 이룬 것으로 보이는데,『양서』권54 열전48 백제전에 따르면 “백제가 다시 강국이 되었다(百濟更爲强國)”고 하였다. 무령왕은 재위 23년(523)만에 사망하였고, 2년 뒤에 공주 송산리 무령왕릉에 안장되었다. 무령왕 사후 아들인 제26대 성왕(聖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후 무령왕의 직계가 백제의 왕위를 계승했기 때문에 무령왕은 백제 왕실에 있어서 중시조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노중국, 1991, 「百濟 武寧王代의 集權力 强化와 經濟基盤의 擴大」『百濟文化』21.
이도학, 1995,『백제 고대국가 연구』, 일지사.
양기석, 1995, 「백제의 변천-웅진천도와 중흥」『한국사』6, 국사편찬위원회.

관련원문 및 해석

第二十五 <武>寧王 [名斯摩 卽東城第二子 辛巳立 理二十二年 南史云名扶餘隆 誤矣 隆乃<義><慈>王之太子 詳見唐<史>]
제25대 무령왕[이름은 사마이니 곧 동성왕의 둘째 아들이다. 신사년에 즉위하여 22년간 다스렸다. 남사에는 이름이 부여융이라 했으나 잘못이다. 융은 곧 의자왕의 태자로 자세한 것은 당사에 보인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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