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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대탐험] 3.평지토성 국내성-하고성자성 - 경기신문" 중 "◇하고성자성" 부분만 가져왔습니다.

◇하고성자성(下古城子城)

 
[고구려대탐험] 3.평지토성 국내성-하고성자성
고구려문화유적탐사단  |  webmaster@kgnews.co.kr 승인 2008.01.04      

대륙 어디를 가든지 높은 산 위에는 보기에도 육중한 돌로 견고하게 성벽을 쌓은 고구려 산성이 아스라이 보이고, 그 아래 펼쳐진 넓은 분지에는 고구려 평지성(平地城)이 자리잡고 있다. 

높은 산들은 자연스럽게 북에서 불어오는 삭풍을 막아줌으로써 아늑하고 양지바른 기후조건을 마련해주었으며 땅까지 비옥해 오곡을 재배하기에 적합했다. 고구려 초기의 도읍으로 추정되는 하고성자성과 제2도읍인 국내성 등은 평지성으로서 교통의 요지이자 생산력이 높은 지역으로 경제력과 군사력을 키우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경제·군사 요충지 700년 역사 초석 놓다 

◇하고성자성(下古城子城)

환인 홀승골성(오녀산성)에서 승합차를 타고 서쪽으로 3㎞ 가량 달리다보면 다리가 나오는데 이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쪽으로 돌아 혼강을 따라 1㎞쯤 가다보면 육도하자향(六道河子鄕) 하고성자촌(下古城子村)이 나온다. 이곳이 바로 나합성(喇合城)과 함께 고구려 초기의 대표적 평지성이었던 하고성자성터이다.

혼강 서안의 평지에 자리잡은 하고성자성은 동남으로 환인과 3㎞ 떨어져 있고, 북으로는 육도하자향과 3㎞ 가량 떨어져 있다. 성터는 혼강 수면보다 5m 높고, 주변 지면보다 약 1m 가량 높다. 문물자료에 의하면 흙으로 쌓은 토성인 하고성자성은 동벽이 226m, 서벽 264m, 북벽 237m, 남벽 212m이며 면적은 5만㎡에 달한다.

이 성에는 원래 동쪽 담과 남쪽 담의 중간에 두 개의 문이 있었는데 동문은 이미 홍수에 떠내려가 없어지고 남문은 분명하지 않다. 특히 성벽이 혼강과 접하고 있어 일찍이 홍수에 의해 유실됐고 그나마 남아 있는 성벽도 성터 위로 마을집들이 마구 들어서 자취를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다만 서북쪽 귀퉁이에 토성의 기단부 흔적과 마을 안에 성터임을 알리는 표지석만이 남아 있어 이곳이 하고성자성터였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이곳은 수원(水源)이 풍부하고 교통이 편리하다. 오늘날에도 이 마을이 벼와 잡곡이 많이 나는 부유한 마을인 것을 보면, 고대에도 생산력이 높은 지역이었으리라는 것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마을 안에는 두 개의 넓은 길이 십자로 교차되고 있는데 성안에 원래 있던 길을 약간 발전시킨 것 같다. 고구려는 평상시 평지성에 거주하다가 적이 침입하면 산성으로 들어가 방어하는 도성체계를 가지고 있었던 점을 감안 할 때 하고성자성이 평상시에 거주하던 평지성이고, 이곳에서 4㎞쯤 떨어진 홀승골성이 전쟁시에 거주하던 산성이었음을 알 수 있다.



▲ 세월과 함께 사라진 하고성자성터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추수(秋收)가 끝난 황낭한 겨울 밭에 목동의 손에 이끌린 양들이 먹이를 찾아 이동하고 있다./장문기기자 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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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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