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bp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11044 
* 내용상 환인지역만 가져오고 제목을 내용에 맞게 고쳤습니다.

고구려 유적 졸본성과 국내성
신현수의 만주기행 두 번째 - 고구려·백두산 순례 <2>
굳이 무덤 안까지 공개할 필요가 있을까?
부평신문  |  webmaster@bpnews.kr [278호] 승인 2009.02.10  17:08:14

▲ 천연요새인 졸본성을 둘러싸고 있는 산과 숲이 병풍과 같다. 며칠 전부터 출항시간이 늦어진다는 전화가 여러 번 왔다. 8월 1일 제1국제여객터미널(연안부두)에 밤 10시에 모였는데 결국 다음날 새벽 3시쯤 출항했다. 안개 때문이란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자연 앞에 인간은 한없이 무력하다.

하기야 지난 번 기수들은 배안에서 24시간 대기만 하다가 결국 도로 내렸다니 그나마 떠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판이다. 칠흑 같은 밤바다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배에서 내 비추는 불빛만 우리 탄 배를 따라온다. 밤새 맥주만 들이킬 수는 없는 일, 잠을 청하기 위해 새벽 4시 넘어서 선실로 내려갔다.

중국 영구항까지 25시간의 항해, 아! 인간에게 잠이 없었다면… 

8월 2일. 아침에 일어났는데 도착시간까지 남은 시간이 참으로 아득했다. 물론 25시간의 항해 자체가 만만치 않았지만 그래도 7시에 떠났다면 저녁 먹고, 술 한 잔 하고,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예정 항해시간의 반 정도는 가줘야 하는 건데 워낙 늦게 출발했고, 늦게 잠자리에 든 터라, 아침 먹으러 일어났는데 출항한 지 대여섯 시간 밖에 안 지났으니 이 노릇을 어이할꼬. 

아침 먹고 나니 멀미까지 시작되려는 모양이었다.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간사해 어젯밤 아니 오늘 새벽 술 먹을 때까지만 해도 배 여행의 참맛은 이거야 어쩌고 하던 내가, 화장실을 몇 번이나 들락거리면서 속에 있는 것을 다 게워내고 난후에는, 이제 다시 배 여행은 안하리라 결심했는데 아마 그 굳은 결심도 물결 잔잔해지면 곧바로 잊어버릴게 뻔했다. 뱃멀미는 피할 곳이 없다는 게 치명적이다.

배에서 내릴 수가 없으니 그냥 견뎌야한다. 또 자고 일어나 점심을 먹고 났더니 속은 약간 편해졌지만 가는지 그냥 떠있는지 배는 역시 진척이 없다. 갑판에 올라가 사진도 몇 장 찍어보지만 그래도 낮 두시, 시간은 남아돈다. 육지에서는 늘 시간 때문에, 시간 없어서, 종종거렸으면서 정작 시간이 남아도니 시간을 주체를 못하고 있다. 술 먹고, 밥을 두 끼나 먹고, 두 숨 자고, 오바이트를 하고, 갑판에 올라가 사진을 찍고 했어도 영구항까지는 아직 반도 못 왔다. 

어쨌든 중국 가는 배안에는 인터넷도 없고, 그러니 확인해야 할 메일도 없고, 전화기도 물론 로밍도 안 걸어놓고 그냥 꺼놓았으니 전화도 올 리 없고 문자메시지도 올 리 없건만, 그래서 여행 떠나기 전 내심 내가 진정으로 바라던 상황,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된 상황이었건만 막상 그런 상황에 놓이자 자꾸만 전화기를 넣어두던 오른쪽 뒷주머니가 궁싯거린다. 얼씨구, 간헐적으로 진동이 느껴지기도 한다. 아, 나는 이미 인터넷·메일·문자메시지 중독자 맞다. 

함순례의 시집 ‘뜨거운 발’을 읽는다. 여행 때 읽으려고 아껴 두었다. 순례는 순례가 쓴 시에도 나오지만 임수경도 닮고, 은희경도 약간 닮았는데 그의 첫 시집을 읽어보니 순례도 천생 시를 쓸 수밖에 없는 여자다. 천생 시를 쓸 수밖에 없다는 건 무슨 뜻인가? 할 말이 많아 가슴 속에 담아두면 병이 된다는 거다. 아프지 않으려면 쓰는 수밖에. 이번 시집에서 난?‘숲’이 좋다. 

오래된 편지를 읽습니다. 당신에게로 갔다가 우리 속에 놓여진 편지 당신을 만나 즐겁다, 쓰여 있군요. 행복해요, 라고도요. / 가까이 있으면 자랄 수 없다는 듯 간격을 두고 발끝 세운 나무들처럼 큰 바람이 일렁일 때나 사르락 손 내미는 이파리처럼 멀어졌다가 가까워졌다가 / 곁눈질로 골똘했지요. 이따금 새들에게 눈 맞추는 건 헛김나는 일이어서 나는 그만 아득해져 혼자 말갛게 익어가는 산감이 되었더랬지요. / 그런데 묘목을 심은 첫 자리 뱀처럼 얽혀 있는 우리의 뿌리를 만납니다. 나의 밑둥 썩은 감꼭지 핥고 있는 이가 바람이려니 했더니 당신이었군요. / 벌거숭이 산길에 가위눌리는 일도 끝이지 싶네, 내게로 온, 오늘 문득 층층이 허물 벗은 골짜기 따라 우거진 숲을 읽습니다. 

어쨌든 순례의 시가 나를 몇 시간 구원했다. 그런데도 시간은 밤 9시, 엠피쓰리로 김광석도 듣고 임지훈도 듣지만 시간은 밤 10시, 자자. 자는 수밖에 없다. 아, 인간에게 잠이 없었다면 이토록 견디기 힘든 시간들을 어이 보냈을까? 

8월 3일. 새벽 두 시 반쯤 열쇠를 반납하라는 선내방송 때문에 일어났다. 새벽 세시쯤 도착한다더니 예정대로였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참 긴 시간이었다. 시계를 돌려놓아서 그렇지 우리 시간으로는 새벽 4시다. 1시간쯤 출국수속을 밟고 영구항을 빠져나왔다. 사실 이번 여행을 하기 전에는 중국에 영구항이라는 게 있는 줄도 몰랐는데 막상 와보니 항구의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중국에 올 때마다 놀라는 거지만 정말 중국은 땅덩어리가 넓으니 무엇이든지 큼직큼직하다. 배에서 내려 출국장까지 오는데도 버스로 한 10분은 족히 걸린듯하다. 

고구려 첫 도읍지 ‘환인’천연요새 졸본성과 주몽의 뛰어난 예지

▲ 졸본성(오녀산산성)을 알리는 표지석.

영구 시내 윌슨호텔로 와서 잠시 누웠다가 아침을 먹고 8시쯤 영구를 떠났다. 버스가 좁아 자리가 불편했다. 졸본까지 길도 좋지 않고 운전사도 길을 잘 모르는 눈치였는데 더구나 중간 중간 쉬면서 가는 바람에 4시경에야 환인에 도착했다. 중국의 농산물·식료품 값은 정말 싸다. 버스가 잠깐 쉬는 사이에 복숭아를 사먹기 위해 노점상과 흥정을 했는데 2원에 한 보따리나 준다. 옥수수빵도 완전 무공해 천연 웰빙 유기농인데 맛은 게심심했다. 

고구려 유적을 보겠다고 떠난 지 3일 만인 3일 4시경에 첫 유적지인 환인에 도착했다. 환인은 고구려 첫 도읍지로 주몽이 부여에서 내려와 나라를 세운 곳이다. 

중국 현지음식이 늘 그렇듯 가짓수는 많으나 입에 당기는 음식은 별로 없는 점심을 먹고 오녀산성으로 갔다. 중국에서는 오녀산성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우리는 졸본성이라고 불러야 맞을 것 같다. 어떤 이는 다섯 명의 고구려 처녀가 적을 물리쳤다는 고사에서 나왔다고 하지만 별 근거는 없는 것 같다. 주차장에서 오녀산성 올라가는 버스로 갈아탔다.

날이 흐려 잘 내려다보이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주몽이 쌓은 성, 주몽이 건너 온 비류수, 주몽이 먹던 샘물이라니 재미있었다. 성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했고 높고 컸다. 800m가 넘는 산꼭대기에 1000m나 되는 평지와 숲이 있고 게다가 샘물까지 있는 졸본성은 말 그대로 천연요새였으니 주몽의 뛰어난 예지를 알 수 있었다. 

고구려 2대 유리왕 22년 서기 3년에 졸본에서 ‘집안’ 국내성으로 수도를 옮겼기 때문에 환인에는 졸본성 외에 이렇다 할 고구려 유적이 없었다. 

환인에서 집안으로 가면서 버스 안에서 미리 준비해 간 역사스페셜을 봤다. 그 프로에 의하면 장군총·광개토대왕릉 등 고구려 무덤 양식은 돌을 쌓아놓은 적석총이다. 그런데 부여의 묘제는 토광분이다. 주몽은 부여의 후예인데 어찌하여 부여의 묘제와 고구려의 묘제가 다른가? 적석총은 주몽이 도착하기 전 이미 그 땅에 살고 있던 고구려 토착민들의 묘제이고, 주몽이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어쨌든 적석총이 발견되는 곳이 고구려 영역인데 주몽은 토착민들과 불화하지 않고 나라를 만들어 나간듯하다. 

4시간쯤 버스를 타고 집안에 도착했다. 저녁을 먹고 호텔에 들었더니 열두시가 다 되었다. 중국에 여행 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사지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후략) 

오녀산성 글 목록  http://tadream.tistory.com/5590



 

Posted by civ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