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500&key=20070302.22017201840

이영식교수의 이야기 가야사 여행 <6> 가야왕궁이 보인다
수로왕릉의 남서쪽 봉황대가 유력한 왕궁터
국제신문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2007-03-01 20:20:55/ 본지 17면

김해 봉황동유적의 토성 내부 주거지 발굴 조사 모습. 이곳에 왕궁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가야사의 수수께끼

지금도 가야사에는 신비나 수수께끼와 같은 수식어들이 곧잘 따라 다닙니다만, 이제부터 풀어나가야 할 중요한 수수께끼의 하나가 가야 왕궁의 소재입니다. 김해의 가락국(금관가야), 함안의 아라국(아라가야), 고령의 가라국(대가야) 그 어디에서도 심증이 가는 곳은 있어도 지금까지 이렇다 할 단서를 발견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고령에는 지산동고분군에서 읍내 쪽으로 다 내려온 연조동 언덕에 대가야 왕궁지로 추정되는 곳이 있고, 함안에는 삼봉산 아래에 남문 선왕동 필동과 같은 왕궁 관련의 지명이 남은 아라 왕궁 추정지가 있으며, 김해에도 두세 군데나 되는 왕궁 후보지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왕궁후보지

김해시내에서 거론되고 있는 왕궁후보지는 수로왕릉 동북쪽의 동상동사무소 앞과 수로왕릉 남서쪽의 봉황대가 있는데, 양쪽 모두에 가락국 왕궁터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다만 북쪽의 동상동사무소 앞보다는 남쪽의 봉황대 쪽이 더 유력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동상동에는 허왕후의 궁궐 또는 분성대(盆城臺)가 있었다는 또 다른 전승도 있지만, 봉황대는 '삼국유사-가락국기'의 기록과 잘 맞아떨어지는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락국기'는 서기 199년 수로왕이 돌아가시고 난 뒤 세웠던 왕릉의 위치를 '대궐의 동북쪽 평지'로 전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왕궁의 위치는 모르지만, 수로왕릉의 위치는 알고 있습니다. 수로왕릉이 왕궁의 동북쪽에 만들어졌다 하니, 반대로 왕궁은 현 수로왕릉의 남서쪽에 있었을 겁니다. 수로왕릉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바로 봉황대입니다.

가락국 왕궁비

봉황대에서 동북쪽으로 수로왕릉을 향해 내려온 곳에 김해김씨 종친회관이 있는데, 이 건물 바로 뒤에는 아주 오래된 은행나무와 비석이 서 있습니다. 비석에는 가락국 시조 왕궁터라는 뜻의 한자가 아주 깊고 두텁게 새겨졌고, 뒷면에는 조선 숙종 6년, 그러니까 지금부터 327년 전인 1680년에 세워졌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500년에 가깝다는 은행나무의 수령과 잘 어울리는 비석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 비석이 세워진 것 역시 가락국이 멸망했던 532년부터 무려 1148년이나 흐른 뒤였습니다. 가야 왕궁 찾기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추정의 범위를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봉황토성

그러나 이 수수께끼가 풀려가기 시작하고, 드디어 가락국 왕궁이 보이기 시작한 것도 같은 자리에서였습니다. 가락국 왕궁터의 비석에서 불과 몇 발자국 나가지 않은 곳에서 가락 왕궁의 성벽이 발견되었습니다. 지난 2003년의 일이었습니다. 김해김씨 종친회관 앞의 소방도로 확장공사에 앞서 경남고고학연구소가 실시했던 발굴조사에서 5세기께의 토성(土城)이 발견되었던 겁니다. 토성의 양쪽 측면은 아래에서 위로 너비를 줄여가면서 모나게 다듬은 돌을 계단식으로 쌓아 올리고, 가운데는 나무 기둥을 박아 넣어 가며 흙을 켜로 다져 쌓아 올렸습니다. 석축 측벽의 하부 너비는 14m, 상부 너비는 7m, 남아있는 토성의 높이가 2.4m 정도 되는 규모였습니다. 성벽 내부에는 수많은 움집형 주거지와 창고형 건물지 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고, 성벽과 비슷한 시기의 가야토기들이 출토되었습니다. 짧은 기간에 짓고 부수고 다시 세우기를 거듭했던 아주 빈번했던 도회 생활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왕성을 찾았다

원래 고고학자는 자신의 조사 결과를 특정의 역사기록과 직결시켜 단정적으로 해석하기를 매우 꺼려하는 분들입니다. 그러나 새로 발견된 봉황토성을 가락왕궁으로 추정하는 데에는 별로 망설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삼국유사-가락국기'는 수로왕이 도읍을 정하면서 길이 1500보의 나성(羅城)을 돌리고 궁궐 관청 무기고 창고 등의 신궁(新宮)을 지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물론 봉황토성은 이로부터 약 400년 후가 되는 유적이지만, 비로소 가야의 왕궁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할 수는 있을 겁니다. 김해시는 올해부터 장기적인 계획 아래 적극적인 왕궁 찾기에 나선다고 합니다. 가야왕궁의 실체가 현실화 될 날도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인제대 역사고고학과 교수·박물관장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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