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500&key=20070323.22016202731

이영식교수의 이야기 가야사 여행 <9> 왕릉의 수수께끼 ②
가락국 허왕후 출신지 인도아닌 서북한 추청
국제신문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2007-03-22 20:28:36/ 본지 16면

김해 인도 쌍어문 태양문 비교

신어상과 태양문

수로왕릉에 들어서면 신어상과 태양문이라는 조금은 생소한 문양과 만나게 됩니다. 왕릉 바로 앞에 서 있는 문을 납릉정문(納陵正門)이라 하는데, 문 위 좌우에 석탑 같은 것을 사이에 두고 두 마리의 흰색 물고기가 마주 보고 있는 모습이 있습니다. 신령스런 물고기라 신어상(神魚像)이라 하고, 두 마리의 물고기라 쌍어문(雙魚文)이라고도 부릅니다. 다시 왕릉을 바라보면 왼쪽에 4기의 비석이 있는데, 가운데 2기의 비석 머리에는 바람개비나 태양으로 보이는 문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흔히 태양문(太陽紋)이라 부릅니다.

왜 이러한 문양이 남아 있으며, 닮은 문양이 어째서 인도의 야요디아에서 발견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야요디아에서는 힌두교 사원의 정문 장식에서 경찰모자의 배지까지 같은 문양이 사용되고 있답니다. 더구나 야요디아는 '삼국유사' 가락국기가 수로왕비 허왕후의 고향으로 전하는 아유타국(阿踰國)과 같은 곳입니다. 그래서 수로왕릉의 이러한 문양들이 허왕후가 인도에서 왔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인도공주?

그렇다면 정말로 허왕후는 인도에서 왔을까요? 현재의 대답은 우선 '노'입니다. 그 동안 김해지역에서 무려 2000기 이상의 가야고분이 발굴조사 되었습니다만, 인도와 관련된 유물이 출토된 적은 없습니다. 가까운 국립김해박물관이나 동래복천박물관에 가 보세요. 인도와 관련되는 유물은 단 1점도 없습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는 허왕후가 많은 보물을 가져왔음을 전하고, 그 후예들은 가락국의 왕비족으로서 대를 이어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사용했을 인도의 유물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요? '김수로왕비 허황옥'(조선일보사, 1994)을 쓴 김병모 선생은 한국의 대표 고고학자로 김해지역의 많은 발굴조사에 지도위원을 하셨던 분입니다. 그러나 정작 인도 관련의 자료를 확보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김해 김씨와 허씨가 결혼할 수 없는 기원을 찾아가는 기행으로 쓸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바다의 실크로드

그렇다면 '삼국유사'는 왜 허왕후가 인도에서 왔다는 것일까요? '삼국유사'를 편찬했던 분이 스님이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일연스님의 '삼국유사' 편찬 당시에도 허왕후의 출신지에 대한 전승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바다로부터 오긴 왔는데 어딘지는 모른다. 따라서 신라~고려시대에 서아시아→인도→남중국→한국으로 인간과 문물이 이동하던 '바다의 실크로드'를 무시할 수는 없겠다. 이러한 해상루트에 불교의 이상향인 아유타국이 있다. 그렇다면 해양설화로서 허왕후의 고향을 인도에서 구하는 것도 괜찮겠다. 일연스님은 이렇게 생각하셨고, 수로왕릉의 신어상과 태양문은 '삼국유사'의 기록을 토대로 왕릉을 장식하는 문양으로 채용되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허왕후의 고향

실제로 '삼국유사' 가락국기는 허왕후가 가져온 물건들을 한사잡물(漢肆雜物)이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사잡물이란 한(漢)의 사치스러운 여러 가지 물건이란 뜻입니다. 허왕후는 인도가 아니라, 중국의 문물을 가져왔던 겁니다. 이 때 중국의 선진문물을 가지고 올 수 있었던 곳은 서 북한의 고조선이나 낙랑군과 대방군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이전은 알 수 없으나, 허왕후 집단의 직접적인 출발지는 수로왕과 같이 서북한 지역에서 구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입니다. 최근에 황해도 봉산군의 양동리 5호분에서는 바닥에 쌍어문을 새긴 청동냄비가 출토되었습니다. 2세기후반에서 3세기전반 경에 축조된 것으로 생각되는 연대는 가락국과 어울리는 시기입니다. 어쨌든 간에 여러분들은 인도 여인의 생김새도 아실 거고, 김해 허씨의 얼굴도 아실 겁니다. 너무나 안 닮은 것 같은 데 어떻습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전승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현재로서는 김해지역을 비롯한 한 남부 지역에서 민족 집단의 형성이나 문화적 계통을 생각할 때, 북방 일변도만이 아닌 해양을 통한 인간의 이동이나 문화의 전파도 무시하면 안 될 것이다는 정도로 그쳐두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인제대 역사고고학과 교수·박물관장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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