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facttv.kr/n_news/news/view.html?no=6017

백범 김구, 막 두들겨 패도 되는 존재인가
[정운현 칼럼] 일생을 민족 위해 헌신…그러는 게 아니다
2014/10/23 16:10 입력 

【팩트TV】 백범 김구 선생이 또다시 구설의 도마에 올라 있다. 1949년 6월 26일 정오 경 경교장에서 포병 소위 안두희의 흉탄에 서거한지 65년이 지났다. 백범을 둘러싼 논란은 그간에도 종종 있어 왔다. 한 예로 극우나 뉴라이트 일각에서는 백범을 ‘테러리스트’라거나 더러는 ‘빨갱이’로 치부하기도 했다. 이념의 잣대로만 보자면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의 ‘애국애족적인 삶’에 대해서까지 의문을 제기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는 그마저도 무너지고 있는 듯하다.
 
1947년 12월, 설산 장덕수가 서울 제기동 자택에서 암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수사한 미군 검찰은 이듬해 3월 초 권총·사진 등과 함께 백범이 관련돼 있다는 내용의 '피고인 진술서'를 증거로 제출했다. 그리고는 트루먼 미국 대통령 명의로 3월 12일 법정에 출두하라는 소환장을 백범에게 보냈다. 백범으로서는 억울한 일이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법정에서 그를 추궁한 미 군정청 법무관들은 대위, 소령급으로 이제 겨우 30대였다. 증인신문에 앞서 군법무관이 백범에게 직업이 무엇이냐고 묻자 백범은 한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내 직업은 독립운동이요!”  
 
1876년 ‘병자수호조약’이 체결되던 그해 백범은 황해도 해주에서 몰락 양반가의 자손으로 태어났다. 소싯적엔 과거에도 응시했으나 실패하자 이후 학업을 접었다. 얼마 뒤, 전국에서 동학농민전쟁이 터지자 ‘애기접주’로도 활동했으며, 황해도 일대에서 교육자로 민중계몽운동을 했다. 그러다가 1919년 3·1만세 의거의 성과로 상해임시정부가 구성되자 백범은 임시정부의 ‘문지기’라도 하겠다며 상해로 망명했다. 이후 임시정부에서 국무령, 국무위원, 내무장관 등을 거쳐 1940년 3월부터 임시정부 주석을 맡아 해방 때까지 임시정부를 이끌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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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TTV▲ 해방 후 윤봉길-이봉창-백정기 3의사의 유해를 일본에서 봉환해 와 효창원에 '3의사 묘역'을 조성한 백범(가운데)이 3의사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일생을 통한 항일투쟁 공로로 백범은 정부 차원에서 독립유공자 포상을 처음 실시한 1962년 3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공로훈장 중장(重章), 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등급)을 추서 받았다. 이 훈장의 명칭은 독립유공훈장이 아니다. 분명히 ‘건국공로훈장’이다. 그럼에도 이런 사실을 부인하고 나선 사람이 있다. 바로 이인호 KBS 이사장이다. 이 씨는 22일 오후 KBS에서 열린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백범에 대해 “대한민국 (건국의) 공로자로서 거론하는 건 맞지 않다”고 거듭 밝혔다. 그 이유는 백범이 대한민국 건국에 반대했다는 것이다.
 
이 씨는 이날 국감장에서 “제가 1919년 임시정부를 정신사적으로만 인정하자는 것도 민주공화국으로서 실체적으로 대한민국이 세워져 인정받은 것이 1948년이기 때문”이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식이라고나 할까. 명색이 역사학자를 자칭하는 그가 이런 말을 했다면 이는 자신의 무지를 스스로 드러낸 것밖에 안된다. 구질구질하게 공박하고 싶지도 않지만 사실(fact) 한둘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이런 엉터리 얘기가 역사적 사실로 둔갑해 돌아다니는 것을 막아야겠기에 하는 말이다. 
 
우선 1919년 중국 상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왕정 아니라 공화정이었다. 우선 정부 명칭부터 ‘대한제국’이 아닌 ‘대한민국’이었다. 게다가 3권 분립과 주권재민 정신을 헌법에 담아 민주공화국으로서의 면모를 실지로 갖추고 있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광복 후 환국할 때까지 임시헌법을 제정하고 전후 5차의 임시헌법 개정을 통해 ‘헌장’·‘약법(約法)’·‘헌법’ 및 ‘약헌(約憲)’ 등의 명칭을 사용했다. 한 예로 임시정부 시절 이승만 대통령을 탄핵한 주체는 오늘의 국회 격인 ‘임시의정원’이었다. 그런데도 이 씨가 임시정부를 민주공화국이 아닌 것처럼 말한 것은 옳지 않다.
 
이 씨가 백범을 두고 “대한민국 건국의 공로자가 아니다”고 말한 대목은 논란 차원을 넘어 ‘반국가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 헌법은 그 전문(前文)에서 대한민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백범은 그 임시정부의 버팀목이자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그런데 이 씨는 이를 모두 부인하고 있는 셈이다. 이승만-박정희 정권 시절 진보적인 통일론을 펴거나 독재 권력을 비판했다가 반국가 사범으로 몰리곤 했다. 비단 이런 것만이 반국가 행위가 아니다. 이 씨처럼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하는 행위 역시 예외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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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TTV▲ 백범이 서거한 당일 경교장 마당에 시민들이 몰려와 엎드려 울고 있는 모습. (사진출처-<라이프>지)

나아가 ‘백범이 대한민국 건국에 반대했다’는 이 씨의 말은 궤변일 따름이다. 일제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아 완전한 자주독립국가 건설을 필생의 과업으로 삼았던 백범이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했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새정치연합 이종걸 의원이 22일 자 성명에서 밝혔듯이 백범이 반대한 것은 대한민국 건국 반대가 아니라 ‘분단’을 반대한 것이다. 완전한 자주통일국가 건설을 꿈꿨던 백범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국토분단은 있을 수 없다며 1948년 방북해 남북협상을 결행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이 어찌 대한민국 건국 반대인가? 천벌을 받을 소리다.
 
친일파의 손녀가 조상의 반민족 죄과를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독립투사의 숭고한 항일투쟁 활동을 폄훼, 왜곡하는 행위는 제2의 반민족 행위로 단죄받아 마땅하다 하겠다. 독재자 이승만-박정희 살리기에 혈안이 된 뉴라이트 일파들은 그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우리 민족사마저 난도질하고 있다. 일제 35년 식민통치도 억울한데 그들에 빌붙어 민족을 판 자들, 그리고 이제는 그 후예라는 자들마저 설치는 꼴을 목도하고 있으니 참으로 분통이 터지지 않을 수 없다. 1948년에 수립된 대한민국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란 말인가? 할아버지 없이 아버지가 세상에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백범의 부인 최준례 여사는 둘째 아들을 낳고서 2층집에서 굴러 그것이 화근이 돼 상해에서 별세했다. 그러나 백범은 아내의 임종을 지키지도 못했다. 왜냐하면 최 여사가 입원했던 병원이 프랑스 조계(租界) 밖에 있어서 아내를 만나러 간다면 일경에게 붙잡히는 것을 감수해야만 했다. 1932년 윤봉길 의사 의거 후 피난길에 올라 중경에 도착하기까지 온갖 고난을 겪었으며, 1938년 중국 장사에서는 조선혁명단 소속의 한 불량분자가 쏜 권총을 맞고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적도 있다. (일명 ‘남목청 사건’) 일생을 항일·민족운동에 헌신한 그를 어떤 자들은 ‘테러리스트’라고 하는데 백범은 일생을 통해 불의한 일에 협잡하거나 그런 일로 사람을 죽인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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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TTV▲ 지난 2009년 6월 26일 백범 60주기를 맞아 한 무리의 꼬맹이들이 유치원 선생님을 따라 백범 묘소를 찾아 절을 올리고 있다. (사진 - 팩트TV 정운현 보도국장)

해방 후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의사 등 3의사의 유해를 일본서 봉환해오는 일이었다. 이들은 모두 백범이 상해 임시정부 시절 조직한 ‘한인애국단’ 소속으로 의거 후 모두 순국했다. 비록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이었지만 그래도 그게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후일 자신도 누운 서울 용산구 효창원 언덕에 3의사의 묘소를 마련하고는 ‘유방백세(流芳百世)’ 넉 자를 손수 써서 묘소 받침돌로 바쳤다. 광복된 나라에서 그에게도 ‘기회’가 없진 않았다. 그러나 자리를 위해 몸부림치지는 않았다. 평소 그는 ‘쟁두(爭頭)’, 즉 우두머리가 되려고 다투지 말고 발(낮은 자리)을 두고 다투라고 가르쳤고 또 몸소 실천했다. 적어도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지난 2009년 6월 26일, 백범 서거 60주기를 맞아 필자는 효창원 백범 묘소를 찾았다. 언덕배기 제일 위에 있는 그의 묘소 앞 돌계단을 오르자 묘소가 눈에 들어왔는데 필자 눈에 놀라운 정경 하나가 펼쳐졌다. 예닐곱 살의 꼬마 10여 명이 백범 묘소 앞에 꿇어 엎드려 절을 올리고 있는 게 아닌가. 나중에 알고 보니 인근 유치원에서 교사를 따라 묘소 참배를 온 것이었다. 글줄이나 읽었다는 먹물들이, 학식깨나 있다는 자들이 저 꼬맹이들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념 때문에, 그릇된 역사관 때문에 민족의 스승 백범을 난도질하는 무리배들이여, 제발 그러지 말라. 백범은 당신들이 막 두들겨 패도 되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사람으로서 그러는 게 아니다. 선생 앞에 부끄럽지 않은가.
 

정운현 팩트TV 보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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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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