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500&key=20070622.22016192740

이영식교수의 이야기 가야사 여행 <22> 대성동고분군-중
할아버지 손자 세대 무덤 중복 해석 분분
국제신문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2007-06-21 19:30:21/ 본지 16면

김해 대성동고분 내의 29호분을 파괴하고 들어선 39호분 출토 모습.

새로운 사실들

가락국 왕가의 언덕 대성동고분군에서는 가야사와 고대 한일관계사를 새롭게 밝혀줄 많은 사실들이 확인되었습니다. 29·47호분의 청동 솥 동복(銅), 11·67호분의 호랑이 모양 청동버클 호형대구(虎形帶鉤), 구지로 42호분의 마형대구(馬形帶鉤), 1호분의 말뼈 등은 북방 유목민족의 상징으로 '기마민족설'과 관련되어 주목되었고, 2·13·23·39호분의 바람개비 모양 파형동기(巴形銅器), 1·2·8·11·15·18호분의 통형동기(筒形銅器), 46호분의 옥장식과 13호분의 화살촉 모양 석제품은 일본열도와 관련되기도 하였습니다. 29호분의 판상철부(板狀鐵斧)와 2호분의 철정(鐵鋌) 같은 다량의 덩이쇠, 14호분의 내행화문경(內行花文鏡)과 23호분의 방격규구사신경(方格規矩四神鏡) 같은 중국제 청동거울은 각각 철 생산과 해상왕국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 주었습니다. 처음에 왜(倭) 계통으로 생각되던 통형동기는 과거 100년 동안 일본 전국에서 출토된 40여점에 가까운 수가 대성동과 양동에서 출토되어, 가야 원산지설이 주장되기에 이르렀습니다. 57호분의 여성 인골은 과학적 복원을 통해 고분박물관에서 가야 여인의 모습으로 만나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만, 최근에는 뜻하지 않은 '가야 여전사(女戰士)'의 시비에 휘말리고 있습니다. 다음 주에 따로 얘기해 볼까 합니다.

할아버지 무덤의 파괴?

대성동고분군은 현재 참 좋은 유적공원으로 변신하였습니다. 고분공원에는 조사 내용과 가락국의 역사를 함께 소개하는 고분박물관과 발굴당시의 모습을 재현한 노출전시관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을 찾는 여러분들은 고개를 갸웃거리실 지도 모릅니다. 고분의 위치를 표시한 벽돌 선이나 노출전시관의 무덤들이 서로 뒤엉켜 있기 때문입니다. 고분의 지하공간은 네모가 보통이지만, 노출전시관에는 뒤엉킨 3개의 구덩이가 보일 뿐입니다. 커다란 29호분의 왼쪽을 39호분의 주곽과 부곽이 파괴하고 들어갔습니다. 29호분(3세기후반)과 39호분(4세기후반)은 불과 3세대 정도의 차이인데, 손자 세대의 39호분이 할아버지 세대의 29호분을 파괴하고 쓴 셈입니다. 지금 학계에서는 이런 중복(重複) 현상을 둘러싼 논의가 한창입니다. 지금까지 대체로 세 가지 해석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가야사 연구의 뜨거운 감자

첫째, 새로운 이주 집단이 전대의 권위를 파괴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기존의 무덤자리에 자신들의 무덤을 세웠다는 생각입니다. 3세기 후반 길림시 일원에 있던 부여국(夫餘國)의 일파가 동해를 통해 김해로 들어와 새 왕조를 세웠는데, 그 주인공의 무덤이 29호분이며, 가락국의 시작이었다는 겁니다. 아주 드라마틱한 해석이지만, 여러분이 보시는 대로, 29호분이 다른 고분을 파괴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후대의 39호분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더구나 3세기 후반이란 29호분의 연대는 이전의 토기와 형식적 공통성을 인정하는 데서 얻어진 겁니다. 저 북쪽 만주에서 홀연히 나타난 사람들의 토기는 그때까지 김해에 살고 있었던 토착의 토기와 아주 이질적이었을 것입니다. 부여에서 갈려 나간 고구려와 백제는 건국신화와 왕족의 성씨에 부여라는 강한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만, 부여족의 새 왕국이었을 가락국에는 흔적이 없습니다.

둘째, 묘역론(墓域論)입니다. 무덤 쓰는 자리는 정해져 있고, 500~600여 년 동안 이 좁은 언덕에만 무덤을 썼으니 중복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겁니다. 좀 빽빽하긴 해도 빈 공간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중복을 피할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일리는 있지만, 아직 미진합니다.

셋째, 몇 개의 무리로 나누어지는 중복은 친족집단의 표시라는 해석입니다. 손자나 아들이 죽은 뒤에 조상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 생각으로, 중복된 무리가 하나의 가족이나 친족이라는 해석입니다. 저는 셋째가 좋은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참 29호분에서는 시루도 출토되었습니다. 떡 해먹는 기마민족은 뭔가 좀 이상하지 않을까요?

인제대 역사고고학과 교수·박물관장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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