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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성자성

하고성자성터와 오녀산성

1) 학술 조사

이 성에 대한 조사는 1950년대부터 시작되었으며, 요녕성박물관(遼寧城博物館)이나 길림대학(吉林大學) 등에서 여러 차례 조사하였다. 1978년에는 길림대학 역사과 이춘보(李春圃) 교수가 환인현 문화국(桓仁縣 文化局)의 소장청(蘇長淸)씨와 함께 성을 실측하였고, 1982년에는 요녕성박물관에서 조직적인 발굴을 시행하였다. 1987년 봄에도 성에 대해 전반적으로 조사한 바 있다. 성 내부에서 청동기시대의 석기와 토기를 비롯하여 고구려시기의 토기, 와당, 환두대도, 쇠화살촉, 요금대의 기와와 와당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1998년 서벽의 북단을 발굴했는데, 성벽 아래에서 고구려 시기의 토기편이 포함된 원형재구덩이가 발견되었다.

하고성자고성 평면도

2) 위치와 환경

환인현 육도하자향 하고성자촌(桓仁縣 六道河子鄕 下古城子村)에 위치하였고, 마을 안이 곧 성터이다. 

동남쪽 3km에 환인현성(桓仁縣城), 북쪽 3km에 육도하자향(六道河子鄕)이 있다. 서쪽 2km 떨어진 곳에서 산들이 서쪽 방향을 연이어지며, 서남쪽 조금 먼 곳에 고개가 하나 있다. 

성은 혼강(渾江) 서쪽 평지에 자리잡고 있는데, 혼강이 북쪽에서 흘러와 성터 동편을 지나 남쪽으로 흐른다. 서쪽에는 부근 산골짜기에서 흘러나온 조그마한 개울이 있는데, 1.2km 지점에서 혼강으로 흘러든다. 

성 안에서는 환인현성을 바라볼 수 있고, 혼강을 따라 10km 정도 거슬러 올라가면 오녀산성(五女山城)에 도달한다. 북쪽 1km에 본계-환인(本溪-桓仁) 도로가 지나며, 서쪽 1km 지점에는 관전(寬甸)으로 향하는 도로가 있다. 이곳은 물이 풍부하고 교통이 편리해 예로부터 이상적인 거주지였으며, 오늘날에도 농업생산물이 풍부한 마을을 이루고 있다.

하고성자고성 CORONA 위성사진(1964년)

하고성자 위치도 

3) 유적의 현황과 성곽의 구조

성터는 혼강(渾江) 보다 5m정도, 주위보다 1m정도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성벽은 흙을 층층이 다져 쌓는 판축기법(版築技法)을 이용해 축조하였고, 평면은 방형(方形)에 가까우며 전체 윤곽을 뚜렷이 관찰할 수 있다. 70~80년전 대홍수로 혼강(渾江)이 범람하면서 동벽과 동쪽 부분이 유실되어 흔적을 찾아볼 수 없지만 다른 세 성벽의 기초부는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성벽 길이는 1987년에 측정한 것에 따르면 성벽 전체가 남아 있는 서벽은 264m이고, 일부가 유실된 남벽과 북벽의 현재 길이는 212m와 237m이며, 전체가 유실된 동벽은 226m로 추정된다고 한다. 현재 성벽의 너비는 대략 2m, 높이는 0.5m 전후이다. 보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서북쪽 성벽의 높이는 2m 정도이다. 

성벽의 기초부는 매우 견고하며, 단면이 노출된 곳까지 판축한 항층(夯層-층위)를 명확하게 볼 수 있는데 어떤 곳의 층위는 십 수 층에 달하기도 한다. 성벽 축조에 사용한 흙의 토질은 황토(黃土), 니사토(泥砂土) 등 다양하다.

4) 역사적 성격

성 내부에서 출토된 돌도끼 등 청동기시대 유물은 이곳에 일찍부터 사람이 거주하였음을 보여주며, 고구려 시기 유물이 다량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많은 학자들이 하고성자고성을 한 현도군의 군현성이나 고구려 초기의 평지 도성으로 비정한다. 그렇지만 한대(漢代)의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의 군현성으로 단정하기는 힘들다. 또한 <광개토왕릉비>에 따르면 졸본은 산상 성곽의 동쪽에 위치했다고 하는데, 하고성자고성은 오녀산성의 서남쪽이라는 점에서 평지 도성일 가능성도 희박하다. 다만 혼강 변에 위치한 평지성 이라는 점에서 고구려 중후기에 혼강 수로의 운영이나 이 지역 통치와 관련하여 핵심적인 기능을 수행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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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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