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500&key=20070817.22016195918

이영식교수의 이야기 가야사 여행 <29> 대가야 왕의 우물
왕궁의 우물 통해 왕권의 신성성과 정통성 강조
국제신문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2007-08-16 20:00:10/ 본지 16면

고령군 고령초등학교 내에 있는 대가야 시대 어정.

지도자와 인민의 계욕제

이제 알터에서 회천을 건너 고령읍내로 들어갑니다. 우리가 건너는 알터 일대의 회천은 지도자와 인민이 함께 목욕재계하며 술잔을 나누던 곳이었습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가 전하는 것과 같은 계욕제(禊浴祭)의 현장이었습니다. 봄의 첫날 3월 1일에 지도자와 마을사람들이 함께 개울에 나와 목욕재계하여 지난해의 부정을 물에 흘려보내는 의식이었습니다. 가락국 수로왕의 등장이 3월 1일의 계욕일에 부쳐진 것은 계욕제가 왕의 탄생이라는 이미지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어렵고 길었던 겨울을 극복하고, 새 생명이 부활하는 봄날에, 지난해의 부정을 흐르는 물에 씻고, 술을 마시면서 새 생명 탄생의 기운을 북돋아 주겠다는 전기가야인의 기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신라 시조 혁거세도 3월 1일에 탄생한 것이고, 동천(東川)에서 목욕시키니 몸에서 광채가 났으며, 그의 신부 알영을 북천(北川)에서 목욕시켰더니 입에 붙었던 닭 부리가 떨어졌다는 신화가 있는 겁니다. '삼국사기' 제사지에 보이는 신라의 사천상제(四川上祭)는 이러한 계욕제가 국가제사로 정착된 결과로 생각됩니다.

임금의 우물, 어정(御井)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인민과 구별되어 왕자(王者)만 사용하는 신성한 물이 따로 마련됩니다. 지금 우리가 찾아가는 고령읍내의 고령초등학교 운동장에 남아 있는 어정(御井)이 그것입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고령현 남쪽 1리에 대가야국의 궁궐터가 있고, 그 옆에 돌우물이 있는데 어정(御井)이다'라고 전하며, 고령현의 북쪽에도 왕후정(王後井)이란 어정이 있었다는 전승이 있습니다. 현재 고령초등학교에 있는 우물은 왕궁 터의 북쪽이기 때문에 후자에 해당하는 것일 테지만, 대가야왕의 우물임은 분명합니다.

1978년 계명대학교박물관의 조사에서 대가야의 토기들과 그릇손잡이 등이 출토되어 가야시대의 우물로 확인되었습니다. 관련의 기록과 전승, 그리고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어정은 대가야왕의 우물이었습니다. 부족연합사회의 지도자인 촌장과 인민이 함께 하던 계욕에서 벗어나, 왕국의 제사에 사용되는 지배자(Ruler)만의 특별한 성수(聖水)가 창출되었던 겁니다. 어정의 탄생은 왕국의 탄생이기도 하였습니다. 같은 물이라도, 전기가야의 집단주술적 계욕의 냇물이, 후기가야에서는 초월적 왕권의 신성한 성수로 되었습니다. 어정의 존재는 인민과 분리된 초월적 왕자(王者)만의 계욕, 정화수, 제사음식의 조리용수 등에 국한되어 사용되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줍니다. 신라 왕권의 나정(蘿井)과 알영정(閼英井)과 같은 우물, 고구려 천(연)개소문(泉蓋蘇文)의 성씨인 샘(泉) 등이 가지는 의미와 같은 것으로, 이러한 의례는 전기가야와는 차원이 전혀 다른 새로운 왕실의 연중행사로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왕궁의 우물과 성수(聖水)

'삼국사기'에는 신라와 백제에서 길흉의 예고로 왕궁의 우물에 나타났던 여러 변화가 특별히 기술되고 있습니다. 금성정(金城井), 궁정(宮井), 동정(東井), 왕도정(王都井) 등으로 기술된 왕궁의 우물에 용이 나타나거나 물이 넘치는 것은 길조였고, 흰 뱀이 마시거나 마르고, 또는 피로 변하는 것은 흉조였습니다. 백제 의자왕 20년 2월조는 멸망의 전조로 왕도의 우물물이 핏빛으로 되었고, 백마강의 물이 피같이 붉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왕궁의 우물은 왕권과 왕실을 상징하는 것이었고, 왕궁의 우물을 통해 왕권의 신성성이 강조되고, 어정의 성수로 행해지는 국가제사로 왕자(王者)의 정통성이 천명되기도 하였습니다. 전기가야 건국 단계의 계욕의 물에 대한 원시적 신앙과 후기가야 왕권의 신성성과 정통성을 보장하는 어정의 물은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전자가 전기 김해 가락국의 해반천과 고령 반로국의 회천에서의 계욕제였다면, 후자는 후기 대가야의 어정(御井)과 성수(聖水)와 같은 상징과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물이라도, 같은 물이 아니게 된 겁니다. 

인제대 역사고고학과 교수·박물관장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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