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46845

"전교 2등도 '인'서울 대학 못가" MB가 망쳐놓은 일반고의 비극
[혁신고에 가다①] 고교서열화 탓 일반고 위기... 혁신고, 대안으로 떠올라
14.10.27 11:28 l 최종 업데이트 14.10.28 10:11 l 선대식(sundaisik)

일반 공립고등학교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자율형 사립고(자사고)로 상징되는 이명박 정부의 고교다양화 정책과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이 도입한 고교선택제는 고교서열화를 강화했다. 학생의 선택을 받지 못한 일반고는 '똥통학교'라는 낙인이 찍혔다. 이런 가운데, 일반고 위기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혁신학교로 탈바꿈한 고교에서는 행복한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혁신고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오마이뉴스>는 다섯 차례에 걸쳐 일반고의 위기를 진단하고 그 대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편집자말]

기사 관련 사진
▲ 고딩 체험 나선 조희연 "자는 학생 심정 이해하겠다" 고등학생 체험에 나선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23일 오전 서울 양천구 금옥여고를 찾아 교실 책상에 엎드려 자는 시늉을 하고 있다. ⓒ 유성호

수업중인 2학년 교실에서는 30여명의 학생 중 5~6명이 엎드려 자고 있었다. 수업에 집중하는 학생은 교실 맨 앞자리에 앉은 소수였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한 달도 남겨놓지 않은 3학년 교실은 어떨까. 자율학습이 이뤄지고 있는 한 교실에서는 2~3명의 학생을 빼고는 모두 엎드려 자고 있었다.

지난 20일 오전 서울 서남부 지역에 있는 공립 일반고등학교인 A고의 풍경이다. '일반고의 위기'는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고교다양화 정책 탓이 크다. 자율형 사립고(자사고) 등이 설립되면서, 특목고→자사고→특성화고→일반고로 이어지는 고교서열화 체제가 굳어졌다.

여기에 2009년 공정택 당시 서울시교육감이 도입한 고교선택제로 인해, 일반고 내에서도 학생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비강남권 공립 일반고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원하는 학교에 가지 못하고 일반고에 떠밀려온 학생들은 열패감을 느꼈고, 교사들은 이러한 학생들을 다독거리다 지쳐갔다. '똥통학교'라는 낙인에 학교 구성원들의 가슴엔 피멍이 맺혔다.  

"등교할 때 책·필기도구 챙겨오는 학생은 10%"

A고 3학년은 10개 이상의 학급으로 이뤄져 있다. 한 학급 정원은 30명이다. 하지만 1학년의 경우, 3학년에 비해 2개 학급이 줄었다. 이마저도 몇몇 학급의 학생 수는 25명이다. 올해 입학생이 크게 줄어든 탓이다. 교사도 4명 줄었다. 내년에도 입학생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탓에, 교사 4명이 추가로 줄어든다.

A고가 있는 지역의 인구는 큰 변화가 없다. 인근 사립고의 입학생 숫자도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최아무개 교무부장은 "고교선택제로 인해 강남이나 목동에 있는 학교처럼 학부모와 학생들이 선호하는 학교에는 정원보다 더 많은 학생이 몰린다"면서 "하지만 우리학교에는 학생들이 오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입학생이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입학생 감소만큼 뼈아픈 일은 학력 수준 저하다. 3학년 담임교사인 이아무개씨는 "고교다양화 정책 이후 특성화고(옛 실업계고)에 대한 지원이 늘어나면서, 특성화고에 못가는 최하위권 학생들이 일반고로 밀려났다"면서 "한 반에 대여섯 명은 기초학력 수준 미달 상태로, 수능에 나오는 문제 자체를 이해하지 못 한다"고 전했다. 

이씨는 "예전에는 기초학력 수준 미달 학생들이 여러 학교에 분산됐고, 교사들이 열심히 하면 바뀌는 학생들이 있었다"면서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학생이 공립 일반고에 몰리다보니, 학생들을 지도하는 데에 역부족"이라고 털어놓았다. 심지어 최아무개 교사는 "등교할 때 책이나 필기도구를 제대로 챙겨오는 학생은 10%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최상위권 학생 비율도 줄었다. 자사고 영향이 크다. 이 학교의 5km 반경 내에서 3개의 자사고가 있다. 김아무개 교장은 "3월 첫 출근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중학교 내신 성적 최상위권 입학생 10여명이 요청한 자사고 전학 서류에 사인을 한 것이었다"고 전했다. 

인근의 한 공립고 교장은 "자사고는 신입생 모집 때 일부러 정원을 채우지 않다가, 개학 즈음 일반고 최상위권 학생을 빼온다고 한다"고 귀띔했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올해 자사고에 입학한 중학교 내신성적 상위 10% 최상위권 학생의 비율은 22.5%였다. 반면, 일반고의 최상위권 학생 비율은 8.7%였다. 한 일반고의 경우, 이 비율은 2.6%에 불과했다. 

최 교사는 "지난해 내신 성적 전교 2등을 했던 학생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지 못했다, 이 학생은 '전교 2등인데 왜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느냐'고 하소연했다"고 전했다. A고의 2013학년도 전문대학을 포함한 대학 진학률은 55%에 미치지 못했다. 서울(61.4%)과 전국(78.3%) 평균을 크게 밑도는 수치다.

기사 관련 사진
▲ 조희연 교육감 "넘버원 교육 아니라 온리원 교육 실현" 고등학생 체험에 나선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2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영신고등학교를 찾아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친구들한테도 꿈이 있지만... 학교가 안 도와줘"

이 학교의 3학년생 이아무개군은 올해 서울 강남의 한 자사고에서 A고로 전학을 왔다. 그는 "자사고에는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모여서 면학분위기가 좋다, 학교는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한 필수과목에 대한 공부를 강제로 시킨다"면서 "그게 너무 싫었고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에 일반고에 전학하기로 결심했다"고 전했다. 

A고에 대한 첫 인상은 자사고와 180도 달랐다는 게 이군의 설명이다. 그는 "맨 뒷자리에 앉았는데,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대부분 자거나 딴 짓을 하고 있어 많이 놀랐다"고 말했다. 그런 친구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기자의 선입견을 깨뜨렸다. 그는 "친구들이 꿈을 하나씩 갖고 있는데, 학교에서 도와주는 게 없으니 잠을 자고 딴 짓을 한다"고 밝혔다.

일반고에는 학업 성적과 상관없는 분야로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학생들이 많다. 하지만 일반고는 지금껏 입시기관으로서의 역할만 했다. A고 3학년 4반 학생 30명 가운데, 예체능 쪽의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이 10명이다. 이들을 위해 A고가 해줄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3학년 담임교사 이아무개씨는 "바이올린으로 대학에 가려는 학생이 조퇴하고 레슨을 받으러 간다고 하면, 학교에서는 규정상 '무단 조퇴'라고 기록할 수밖에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체육거점학교 제도를 이용한 3명의 학생 중에서 2명은 학원을 등록했다"면서 "예체능 쪽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들은 학교가 해주는 것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감직 인수위원회에 참여했던 이형빈 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연구원은 "(일반고에는) 대학진학에 뜻이 없는 상당수의 학생들에 대한 교육과정이 사실상 부재하다, 직업학교 위탁 교육과정이 일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나 실제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면서 "입시 위주의 교육 풍토에서 소외된 학생들을 위한 진로교육, 직업교육, 대안교육 지원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지난달 3일 일반고를 살리기 위한 '일반고 전성시대' 기본계획안을 발표했다. 주 내용은 학교운영비를 현재의 평균 5000만 원에서 최대 1억 원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한 공립고 교장은 "일반고의 숨통을 틔우는 계기가 될 것"이라면서도 "고교다양화·고교선택제의 폐지나 개선, 그리고 학교 혁신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백병부 경기도교육연구원 연구위원 등은 일반고 교사·학생·학부모 2만여 명에 대한 설문조사를 분석해 지난 6월에 내놓은 <경기도 일반고 활성화 방안 연구>에서 "학생들의 참여와 흥미를 제고할 수 있는 수업혁신, 학교조직문화 혁신 등은 일반고를 활성화하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Posted by civ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