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blog.naver.com/sycjs/20006863154


한국의 산성(45) : 고구려 고이산성(古爾山城, 신성)  

2004. 10. 27. 15:36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고이산에 있는 고구려 초기의 토성(土城). 성둘레 4㎞, 성벽높이 2∼10m. 성은 주성(主城), 서쪽 외성(外城), 남쪽 외성의 3부분과 남동·북서쪽의 위성(衛城)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성에는 동·남·북쪽에 3개의 문을 냈다. 남문에는 옹성(甕城)을 만들어 방비를 튼튼히 하였으며 양쪽 위성은 성앞의 넓은 들을 감시하도록 지어놓아 북방수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뿐만 아니라 성 안의 서쪽 비탈에서는 연꽃무늬기와막새, 수키와, 노끈무늬가 있는 암키와 등의 건축재료와 쇠활촉·쇠삽·쇠도리깨 등의 다양한 유물이 발굴되어 고구려 철제도구들의 발전수준을 아는 데 가치있는 유적이기도 하다.


단단대령방어선을 지키기 위하여 요하 동쪽 평야지대와 산간지대의 경계선인 무순에 쌓은 고이산성


무순에서는 북관산을 고이산(高爾山)이라고 부르므로 신성을 일명 고이산성이라고도 부른다. 무순(撫順)의 노천 석탄 광산을 지나 찾아간 고이산성(高爾山城)은 토성이다. 이곳은 압록강 중류쪽에서 요동쪽으로 갈 때 반드시 거치지 않을 수 없는 교통의 요지이다. 여기에 쌓은 성은 고구려 때의 신성(新城)으로 비정된다.


고구려의 산업 - 철기생산


고구려의 생산력발전에서 중요한 사실은 철기생산의 발전이다. 고구려 유적에서 나온 철기와 4세기 초의 벽화무덤의 그림들은 당시의 철기 생산수준의 한 면을 보여준다. 철기가 많이 나온 유적은 무순의 고이산성이다. 고이산성에서는 보습, 후치, 도끼, 창끝, 활촉, 말등자, 수레부속, 가마 등 여러가지 철기가 나왔다. 이 시기의 철기제조기술은 현저히 발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철기의 용도에 맞게 주조와 단조 기술이 사용됨으로써 철기의 수명을 보장하기 위한 기술이 이 시기에 이르러 더욱 발전하였다. 보습, 이, 호미, 도끼 등을 단조하였다. 고이산성에서 나온 쇠보습의 크기와 무게는 고구려에서 소로 밭갈이를 하였다는 것을 추축케 한다. 소에 의한 밭갈이는 농업생산성을 높였고 곡식생산을 현저히 높였다


역사기록 -서천왕(西川王)


276년과 288년에는 신성(新城)에 행차하였다.신성은 오늘날의 중국 푸순[撫順] 부근에 있었던 고이산성으로, 모용외(慕容嵬)의 세력을 막아내는 데 전초기지 역할을 하던 고구려의 서북쪽 국경지대였다.


천리장성에서의 고이산성(古爾山城, 신성)


천리장성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없는 데다 장성의 보존상태가 극히 불량하고 사료에 자주 등장하는 요동성은 흔적도 찾을 수 없으므로, 학자들은 석축이나 보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백암성으로 그 특징을 추론한다. 신형식 박사는 영류왕 때 처음으로 축성한 것이 아니라 과거부터 계속하여 중요한 산성을 보완 개축하여 하나의 방어선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신성(무순의 古爾山城) 요동성(요양) 백암성 안시성(해성의 영성자산성) 건안성 비사성(대련의 대흑산성) 등으로 이어지는 방어성이 곧 천리장성의 주축이 된다고 설명했다.


축조의 배경은 기존의 청야전술(淸野戰術)에서 평원전술(平原戰術)로의 변화를 위한 대당 군사방어체제의 일환인 동시에 농경과 유목의 자연경계선을 마련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그러나 천리장성은 중국의 만리장성과 같이 신성에서 비사성까지 하나로 장성이 이어진 것은 아니다. 방어성이 신성-백암성-요동성-안시성-비사성으로 연결되면서 하나의 공동전선을 구축한 것으로, 이들 산성은 각기 독자적인 상호연락망을 통해 방어체제를 유지하면서 대당 전선을 이룩했다. 특히 안시성과 백암성은 남북에서 요동성을 보호했고, 건안성은 수륙 양면의 요충이며, 비사성은 오호도에 건설된 당군의 군량기지를 견제하는 역할을 하는 등 수·당의 수륙 양면작전에 대응하려는 전략의 산물이다.


천리장성은 당의 침략을 저지하려는 고구려인의 단결된 의지의 표현이자 중국에 대한 민족보존의 최후보루였다. 이를 위한 16년간의 땀의 결정은 고구려인의 투철한 애국정신의 결집이었지만 막대한 인원이 투입되는 천리장성의 구축은 결국 민생을 도외시하는 결과를 낳았고, 이를 무력으로 억제하려는 연개소문의 정권이 등장한다. 천리장성 자체는 당의 침략을 효과적으로 막으려는 고구려의 희망이었으나 그 보존에 따른 경제적·군사적 모험으로 수도 방어의 허점이 노출되어 신라와 당의 연합군에게 허망하게 멸망하는 결과를 가져왔음도 간과할 수 없다.


단단대령방어선 


요동왕조(遼東王朝)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방어선으로, 길림에서 무순 방면으로 만주 중앙을 길게 비스듬히 가로 지르는 단단대령(單單大嶺:중국 지도에는 길림합체령으로 적혀 있다)과 천산산맥(千山山脈) 산줄기를 방어선(防禦線)으로 사용한 경우이다. 연개소문은 이곳에 천리장성(千里長城)을 쌓았다. 이 단단대령방어선은 난하방어선이 기능을 발휘하고 있어야 제대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난하방어선이 궤멸되거나 또는 난하유역이 적국의 영역일 때는 단단대령방어선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http://shin-gi.com/gaoguli/gao-03/head/head-07.htm   

http://rose0.knu.ac.kr/~z9909049/war1.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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