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db.history.go.kr/download.do?levelId=hn_019_0070&fileName=hn_019_0070.pdf
* "발해 城址의 조사와 연구 - 송기호" 중 "Ⅳ.지방도시성 - 2. 州 城 - 1) 溫特赫部城" 부분만 가져왔습니다.

온특혁부성(溫特赫部城)
1989년  송기호 
 
온특혁부성(溫特赫城), 고려성(高麗城), 고력성(高力城), 고력성자산성(高力城子土城)으로도 불리는데, 중국 길림성 훈춘현 삼가자향 고성촌(三家子鄕 古城村)안에 자리잡고 있다.81) 이곳은 훈춘하 하류의 충적 평야 끝에 해당하며, 성의 서북쪽 1km 떨어진 곳에는 두만강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간다. 또 성의 북쪽 7.5km 떨어진 곳에는 팔련성이 있다. 이 성의 동쪽에는 요, 금 시대의 고성인 배우성(裴優城)과 인접해 있어, 배우성의 서벽이 바로 온특혁부성의 동벽에 해당한다. 성은 사다리꼴을 하고 있다(그림 12). 흙으로 쌓은 성벽은 전체 길이가 2,269m로서 남, 북벽이 710m, 동벽이 468m, 서벽이 381m 이다. 성벽이 거의 인멸되어 있는데, 옹성(甕城)이나 치(雉)의 흔적은 없고 해자의 흔적만 보인다. 또 《훈춘현지(琿春縣誌)》에 의하면 4벽에 각기 1개씩의 문이 있다고 한다.82)

(그림 12) 온특혁부성과 배우성

이곳에는 여러 종류의 기와 조각들이 다수 발견되었으며, 이 중에는 고
구려시기의 연화문 와당, 발해시기의 연화문 와당, 요, 금83)시기의 수면문(獸面紋) 와당이 포함되어 있어, 이 성이 고구려 시대에 축조되어 후대에까지 계속 사용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 성의 동남쪽 밖에서도 기와 조각들이 발견되고 있어 고구려시기에는 성의 범위가 무척 넓었다가 뒤에 폐기되었고, 발해시기에 들어 성을 수리하여 재사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이건재(李健才)는 동경용원부의 수주(首州), 수현(首縣)인 경주(慶州)와 용원현(龍原縣)은 고구려시기에 두어졌던 것을 발해가 이어받은 것으로 이 성에 두어졌다고 하고, 팔련성은 경주 용원현 부근에 신축한 경성(京城)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서 팔련성 안에서 고구려 유물들이 발견되지 않는 점을 들고 있다.84)


주석

81) 이 성에 대해서는 다음의 글들을 참조하였다.
鳥山喜一·藤田亮策, 《間島省古蹟調査報告》滿洲國 民生部, 1942, pp.54∼5
王俠, 〈琿春的渤海遺迹與日本道〉《學習與探索》1982―4, p. 12
李健才, 〈琿春渤海古城考〉《學習與探索》1985―6, pp. 138∼139
嚴長錄·楊再林, 延邊地區高句麗渤海時期的紋飾板瓦初探 《博物館研究》 198―2, pp.60∼61, pp.58∼59
 
82) 齋藤甚兵衛·山本守, 《琿春·敦化》滿洲事淸案內所, 194, pp. 5∼56
 
83) 온특혁부성이란 명칭은 금시기에 여진 온적흔부(女鎭 温迪痕部)가 살았던 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李健才, 〈琿春渤海古城考〉《學習與探索》1985―6,, p.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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